" 파이팅. " 하고 작게 말하면서 똑같이 양손을 쥐었다. 신체 B도 약한 건 아니니까... 누가 이상한 짓 하려 하면 신체 B로 한 대 쳐버려! 라고 말하고 싶다. 한방... 하루도 의념발화가 있으면 좋을텐데. 청월이 아니니 어쩔 수 없지.
" 그래, 일이 나쁘네. 앞으로도 이렇게 만나면, 자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 가상의 적(?) 일거리를 향해 화내는 하루를 웃으며 지켜본다. 그리고 부끄럼 타는 모습을 보고서는
" 맞는 말 듣고 부끄러워하면 어떡해. 당당해져야지. " 하고 드물게 한쪽 눈을 찡긋하면서 윙크 비슷한 걸 해보려 하지 않았을까. 그 모습이 조금 어색하긴 했겠지만. 애플파이를 추가로 주문하는 것에 역시 센스 좋네-라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 뭐, 이런저런 일 하면서 지냈지. 옷을 사러 간다던가, 간단한 의뢰를 맡았는데 누굴 오해해서 완전 큰일이었다던가... " 하고 테이블에 팔을 올려 손등 위로 턱을 괴었다. 예의 없게 보일 수도 있는 제스처지만, 편하다는 뜻도 되니까. 이 정도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약간 한숨을 내쉬는 시선 옆 창문이 밝다. 그것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닐 일은 아니다.
나는 미심쩍은 얼굴로 가쉬의 얼굴을 계속 봤다. 저기서 스쳐지나가는 감정들은 뭐라고 해야할까. 그래....내가 은후와 정훈이 사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이스티를 홀짝이기전에 수 많은 생각을 거쳐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요즘 같은 세상이잖아.' 라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데....이 녀석은 어떻게 해서도 날 여자로 생각하고 싶은 모양이다. 이쯤되니 그의 방어기제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살짝 안타까워지려다가, 그래도 여자취급 받으니 화가 났다.
그래, 최소한 춘심이가 계속 남자 취급 받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그가 요란하게 커피를 뿜는 것을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보면서도 일단 들고 있던 방패를 내려뒀다. 쓴걸 잘 못 먹는구나. 막상 심술을 부린건 나지만, 저 정도로 괴로워하는걸 보니 조금 미안해져선 그의 커피잔을 '잠시 줘봐.' 라고 말하면서 가져와선 시럽을 몇번 펌핑해서 넣어 돌려주었던 것이다.
"음......"
별로 적의가 느껴지진 않았기에 말해줘도 상관 없지 않을까 싶었다. 누구와 사귀는지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닐 것도 아니지만....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성격을 보건데 혹시 춘심이에게도 나와 비슷하게 작업을 걸지 않을까....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연인의 어깨에 손을 올린 그를 보니 무언가 속에서 부글부글 답지 않게 끓어오르는 느낌이라, 나는 그의 의심을 불식시킬겸, 그리고 또 경고할 겸 밝히기로 했다.
비아의 내면에서 무슨 생각이 떠오르고 있는지 알지 못한 체, 그저 기분 좋게 양갈래 머리를 살랑이며 힘껏 고개를 몇번 끄덕여 보이는 하루였다. 그저 좋아하는 언니가 자신을 보며 파이팅을 해주는게 좋은 모양이었다.
" 자주 만나면 좀 더 서로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도 있고... 그리고 못 보면 멀어진다는 말이 있잖아. 물론 비아 언니랑 나랑 그런 걸로 멀어질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왠지 멀어지면 슬플 것 같으니까."
하루는 자신을 보며 미소를 지어보이는 비아에게 자신은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는 듯 장난스런 울상을 지어보이며 말한다. 물론 오랫동안 보지 못한다고 해서 자신이 비아를 싫어하거나 멀리하게 될 일은 없지만, 고작 못 본다는 것으로 멀어지는 것은 바라지도 않고, 겪고 싶지도 않았다.
" 왠지 칭찬을 받는 건 익숙치 않아서.. 게다가 언니 칭찬이면 더욱 더 그렇지.. "
하루는 몸을 베베 꼬다, 비아의 윙크에 숨이 멈춰 뒤로 넘어가려는 시늉을 해보이더니 맑은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을 돌려준다. 정말이지, 치명적인 언니구나. 하루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 헤에.. 언니도 고생이 많았구나... "
비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을 하던 하루는 고생했다는 듯 장난스럽게 턱을 괸 비아의 팔을 주먹으로 콩콩 두드려주는 시늉을 하며 대답을 돌려준다.
" 나는 사실 검술을... 배우게 되서 그것 때문에 게이트에 가서 고생 좀 하고.. 혼자 의료파견으로 중국으로 가서 다친 사람들을 돕기도 하고 했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가 이제 좀 정신이 있다니까. 게다가 언니를 만나니까 기분도 업되는거 있지? "
주인을 만난 대형견이 꼬리를 흔드는 것처럼 몸을 살짝 좌우로 흔드는 통에 살랑이는 양갈래 머리를 한 체 하루가 기쁨을 맘껏 뿜어낸다. 마침 하루의 말이 끝날 즈음엔 주문한 메뉴들도 나왔다.
커피를 뿜은 뒤, 그녀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그 검은 커피에 무언가 젤리 비스무리한 것을 넣어주었다. 저게 그 시럽인가? 알기론 저걸 넣으면 커피가 좀 달콤해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음, 솔직히 여기서 뭘 넣는다고 맛이 구제될 것 같은 기분이 들진 않는데. 나는 진화가 시럽을 넣어준 커피를 작은 봉으로 슬슬 저은 후, "으으." 하고 약을 먹는 표정으로 한 모금 마셔보았다.
"우웩."
아까처럼 커피를 뿜진 않았지만, 그래도 맛이 이상하긴 하다. 단맛이 나긴 하는데 여전히 쓴맛이 너무 강해. 거기에 이런 단맛이 아냐. 난 부드러운 단맛이 좋다고!
이어 그녀는 무언가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름을 말해주었다. 어디의 누구? 내가 찾아가서.. 아니, 아니지. 음?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다. 아니 들어본 정도가 아니라..
"춘심? 그 백춘심? 선머슴 백춘심?"
믿을 수 없었다. 그 대장부 백춘심이 연애라니! 그것도 이렇게 귀여운.. 여자아이와! 불공평해! 겉으론 강철과 망치만 있으면 아무것도 필요 없을 것 같이 굴더니! - 물론 그렇게까지 하진 않았지만 - 무언가 끓어오르는 배신감과 믿을 수 없음에 나는 손에 쥔 커피잔을 부르르 떨다
"믿을 수 없어어어어엇!"
하고 남은 커피를 그대로, 원샷 해버렸다.
꿀꺽 꿀꺽 꿀꺽
"우읍..."
역시, 해서는 안 되는 행위였다. 어느정도 식었다곤 하나 아직 뜨거움이 남아있는 커피를, 그것도 괴상한 쓴맛과 신맛. 그리고 애매한 단맛이 느껴지는 구정물과도 같은 것을 한 입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