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트롤인가. MA님은 전의 그 게도 그렇고, 이번의 유리병 사건도 그렇고 장난을 좋아하시는 걸까. 준비를 마친 단태는 트롤이 나타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크네?"
보통 트롤이 저렇게 컸나. 단태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정도 크기의 트롤을 학원 앞까지 나오게 한 MA님의 장난은 역시 심하다고 생각하며 지팡이를 들어서 첫 주문을 외웠다. 첫 주문은, 봄바르다 막시마로 몽둥이를 휘두르는 트롤의 다리를 노렸다.
폭발이 일어났고 단태는 위협적으로 휘둘러지는 몽둥이를 피해 냉큼 머리를 확 숙였을 것이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게 시원하면서도 조금 오싹한 기분이었기 때문에 지팡이를 트롤이 든 몽둥이에 겨냥하고 두번째 주문을 외웠다. 저거 맞았다가는 뼈가 부러지는 정도로 끝나지는 않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누구라도 데려와서- 거기까지 생각하던 단태는 곧 히죽-웃는다. 그래도 탈들을 상대할 때보다는 별거 아닐지도.
"리덕토."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단태는 곧바로 다시 주문을 이어서 외웠다. 언제부턴가 자신이 곧잘 사용하고 있는 주문이었다.
그게 보기 위해서 노력하면 되는 일이던가. 너는 그럼에도 순진무구하게 믿고 한치의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너는 아무것도 모르던 백지였기에, 그 사람이 이렇다고 주장하면 곧이 곧대로 믿었기 때문이다. 너는 수업을 들으며 활짝 웃었다. 길찾기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고 한다. 후부키에 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피냄새는 잘 모르겠다. 앞으로 세스트랄을 만날 때는 손바닥을 지팡이로 찌르면 될까 싶다.
"아- 먹었어요! 아하하, 간지러워."
기가 막히게 목 쪽으로 머리를 댄다. 나는 입술을 달싹였다. "아무것도 없어." 하고 작게 청년의 목소리로 중얼거리곤 다시 눈을 휜다. 뒤로 물러나는 모습마저 경이로웠다. 너는 교수님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가끔 보러 와주면 좋아할 것이라는 건, 점점 더 친해져서 친구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지금은 니플러와 다람쥐, 뱀 정도만 나의 친구인데 여기 숲의 다른 동물들도 친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는가.
"응! 꼭 보러 갈게요. 이노리 세스트랄 친구 좋아요?"
보려는 것이 목적이었나? 너는 잠시 과거를 더듬는다. 그러니까..그러니까..아! 너는 잠시 입술을 우물거리다 딱 그 나이대의 아이처럼 바람 빠지는 작은 웃음 소리를 냈다.
"꼬리털 받고 싶었는데, 후부키도 가보고 싶었는데.. 이노리 더 친해지면 할래요. 처음부터 받으면 무례한 일이야. 친구사이에 부탁만 있으면 안 된댔어요? 그리고 냉큼 후부키에 가버리면 교칙 위반일지도 몰라요?"
너는 교수님을 잠시 빤히 쳐다본다. "아니면- 교수님이 이노리랑 후부키 가줄래요?" 하고 묻는건 순수했지만 그 안의 장난기는 마치 청궁의 학생이 장난의 시동을 걸듯 전혀 순수해보이지 않았다.
세스트랄((개정에서는 세스트럴이죠..?))을 보는 조건은 조데굴 여사님께서 죽음을 수용하고 이해하며 내면화한다...라고 하셨는데 정말 지성체 한정일지 궁금해지네요. 🤔 제 뇌피셜인데 세스트럴은 보기 어려운 동물인 만큼 애지중지 하던 반려동물 내지 곤충이 죽는 것 같은,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제법 흔한 상황에서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인간의 죽음이 가장 대표적인 이유도 세스트럴을 만날 조건이 희소하다는 것을 부각하기 위한 그런 것이 아닐까 싶고요. 🙄
너는 마땅히 같이 갈 친구가 없다. 대다수 너와 놀아주기는 하지만 금지된 숲에 같이 가줄 정도로 담력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같이 세스트랄을 볼 수 있는 사람을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아랫 입술을 비죽 내밀고 불만을 표하던 너는 기숙사 점수라는 말에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숙사 점수를 300점이나 모으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차근차근 하다보면 후부키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가서 가장 먼저 할 일이 무엇이냐면…….
나는 교수님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갈곳을 잃은 망자처럼 초점조차 없는 눈동자가 교수님을 한참동안 응시하더니, 이윽고 입술의 양 끝이 올라간다. 말 그대로 작위적으로 올라가기만 했지 감정을 내포하지는 못했다. 색실반지를 한번 만지작대니 귀에 있는 노리개 귀걸이가 신경쓰였다. 그럼에도 언제는 안 그랬냐는 양 또 어디선가 듣지 못했던 차분한 청년의 목소리로 입술을 달싹이는 것이다.
"……그러게요. 저는 의중을 끝까지 알 수가 없을 거예요." 돌아가셨으니까. 나는 앞으로도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유령으로 남아있더라면 소리라도 지르셨을까. 품에서 가면을 꺼내 다시 쓴다. 달각거리는 소리와 방울의 짤랑거리는 소리가 잠시 숲에 으스스하게 퍼지더니 입술만이 빙그레 다시 휘었다. "으응. 알았어요. 안 돌아가면 이노리 점수 위험해요? 칼 교수님도 이노리가 이리오너라 했다고 점수 깎으려 했어요. 치사해-" 하고 불만을 한번 표시하고는 빙글 돌았다.
"교수님 패밀리어는 어디 있을까요. 꼭 찾길 바라요? 이노리한테도 나중에 소개시켜주기야? 이노리는 동물 친구는 누구든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