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내가 후부키의 숲에 있을 적 있던 일이다. 우리 둘은 날적부터 신비한 동물의 곁에서 살았고 덕분에 많은 동물과 함께 공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 한가지 너와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유니콘의 유무가 아니겠는가. 그 긴 뿔이 달린 말이 내게는 잔뜩 경계를 하더니 네게는 아주 잘 오는 것이다. 아마 내 본성을 알아차려 그런것이 아닌가 싶었다. 유니콘은 네 뺨에 주둥이를 비비며 눈을 감곤 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네가 참 부럽곤 했다. 너는 무조건적인 신뢰를 받는 존재이지 않은가. 나도 신뢰를 받긴 하지만 유니콘만은 마음을 열어주지 않아 속상했다. 그래서 친해져보고 싶었다. 네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내가 각설탕을 들고 다가간 날이었다. 내 모습을 보고 잔뜩 경계하던 그 빌어먹을 말새끼는 내게 무자비하게 앞발을 굴렀고 나는 넘어지고 만다. 내가 깔리기 직전의 순간, 아직 마법도 못쓰던 나이의 너는 칼을 들고 뛰쳐나와 유니콘의 목을 내리찍었다. 고통에 겨운 말의 울부짖과 발작 뒤로 네가 몇차례고 더 칼을 내지르자 기어이 그륵거리는 기묘한 숨소리 사이로 유니콘이 숨을 거둔다. 너는 유니콘이 쓰러지자 고개를 돌려 나를 봤고, 나는 피투성이인 너를 올려다봤다. 평소에는 널 보면 나와 별 다를게 없어서 심통이 났거늘, 오늘은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 너는 이제 나와 다를 바 하나 없는 존재기 때문이다. 네가 앞서는 일이 이제는 영영 없다. 우리는 서로의 삶을 반씩 나눠가진 존재고, 그 무슨 일이 있어도 달라져서는 안 됐다. 하지만 너는 그날 공교롭게도 유니콘의 피가 입에 튀었고 그 저주가 효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 너도 마찬가지다. 내 앞에서 너는 결국 죽었다. 죽지 못하게 하려고 디터니 원액을 쓰려 했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날의 참상은 참 우습게도 단란한 저녁식사 당시 일어난 것이다. 나는 지팡이를 휘두르던 순간을 기억한다. 마마는 왜 그러냐며 그만 두라고 붙들었지만 저기 밥상 옆에서 몸이 양단이 났고 파파는 고함을 내지르다 아바다 케다브라 마법에 목숨이 사라진지 오래다. 너도 용감하게 달려들었지만 일전의 유니콘과 같이 목을 베여 숨을 거뒀다. 너는 그래도 부모에 비해서 꽤 오래 살았다. 섹튬셈프라는 네 목을 양단할듯 매섭게 스쳐 지나갔는데도 말이다. 나는 네가 내 이름을 연신 부르며 몸이 발작하듯 꿈틀대는 것을 봤다. 경동맥이 잘리지 않아서 너는 꺽꺽대며 고통스러워 했다. 그리고 너는 뭐라고 몇번 뻐끔거리다 손을 바닥에 떨궜다. 살고 싶다는게 유언이었다. 고작 삶을 부르짖고 끝나버린 것이다. 네 손은 아직 따뜻한데도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된 날이었다. 나는 그날부로 기어이 미치고야 만다. 네가 달라져서는 안 되는데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라온에서 당신을 본다. 월식 주막에서 나와 마주앉은 당신은 발렌타인 샬럿 언더테이커로, 6년 전 네가 죽고나서 네 죽음의 흔적을 모두 덮어가려준 정이 있는 사이다. 그렇지만 당신은 6년동안 참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말랐던 몸이 보기좋게 변하고 머리는 이미 절반이나 하얗게 새어있다. 꼭 너와 나의 어린날을 섞어둔 것 같은 색이다. 당신은 밭은 기침을 몇번 하고는 나를 내려다본다. 나는 주변을 몇 번 살피고는 당신에게 물었다.
"여긴 왜 왔지?"
당신은 잠시 말을 고르다 내 모습을 보고 웃는다. 나는 당신의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지팡이를 만지작댔다. 당신의 웃음은 늘 불길함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 날카로운 지팡이의 끝단이 손가락을 찌르고 파고들 때 당신이 가느다란 손가락에 깍지를 끼고 모은다. 중지에 못보던 반지가 보인다. 당신이 지팡이를 휘두르자 머플리아토 마법이 걸렸다. 비밀 얘기를 하겠다는 건가보다. 당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내게 발언권을 주는 것 자체가 미친짓임을 아는데도 늘 대화의 시작을 내게 준다. 당신은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었다. 대뜸 와서 변함없는 머리를 괜히 잘라주지를 않나 이렇게 식사를 하질 않나. 그마저도 당신은 반절도 먹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가 아무말 없이 있자 당신이 손을 올려 하얀 머리카락을 만지작댄다. 나는 불쾌한 시선으로 당신을 쳐다본다. 한참의 침묵 뒤에 지고 만다.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무슨 일인데." "못 본 사이 말이 거칠어졌군 그래. 어디에요? 하던 자네는 뒤졌나보군?" "한 번만 더 말대답으로 개지랄 떨면 내가 너 죽여버려요." "무섭군. 울 뻔했어." "표정 보니까 즐기는 것 같은데." "벌써 들켰나? 눈치도 빨라졌어." "너 진짜 짜증나요. 용건이나 말해." "그렇게 말한다면야."
당신이 들어올린 병에서 붉은 액체가 찰랑거린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을 뻗어 당신의 목을 기어이 한 손으로 쥐고 말았다. 저게 뭔지 알기 때문이다. 유니콘이 쓰러졌던 순간이 겹친다. 그때도 저런 피가 보였다. 네가 죽던 날도 떠오른다. 다 당신 때문이다. 이대로 힘을 주면 당신은 고통스럽게 바둥댈 것이다. 손등에 힘줄이 돋아날 무렵 시선이 몰렸다. 싸움 나려나봐. 하고 수군거리는 목소리에 나는 슬슬 자리에 앉았다. 괜한 파문을 일으켜 자극적인 소문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은 얄밉게 이죽였다.
"자네 하는 짓을 봐서 필요할 것 같아서. 슬슬 끝물이지 않나." "네가 어떻게 알아." "가면도 안 챙겨왔으면 답은 뻔하지. 내 친히 보존 마법으로 싱싱하게 보관하고 있었으니 걱정 말게."
날선 손톱으로 금방이라도 뺨이라도 치고싶은 심정이지만 지금 상황으로 보아 당신은 내 구세주다. 당신의 말대로 학기의 끝물이라 내 정신도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1년 뒤면 나는 후부키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겪어야 할 시련이 아주 많다. 나는 이를 바득바득 갈다가 당신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손을 쭉 뻗자 당신은 병을 쥔 손을 뒤로 한다. 나는 팔을 쭉 올리다 내려버리곤 있는대로 성질을 냈다. 테이블을 쿵 내리친 것이다.
"뭘 원해?"
당신은 내 모습에 아랑곳 하지 않고 머리카락을 한타래 쥐어 입을 맞춰주고는 속삭인다. "글쎄, 왈츠 한 곡 어떤가. 그렇다면 내 친히 주도록 하지." 하는 당신의 표정은 조롱이 가득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날카로운 손톱으로 당신의 뺨을 두어번 쓸고 눈을 내리깔아 당신을 내려다본다. 짜증이 치밀어오르지만 내 본성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유일한 생존자를 경히 대할 수 없다. 나는 테이블 위에 식사의 값을 올려두고 당신의 뺨을 쓸어내리며 그 흉흉한 안광과 함께 당신을 이끌어 밖으로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