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랬구나. 할 때는 생고생 하는 것 같아도 돌이켜보면 나름 재밌는 게 학교 행사인데... "
...아닌가. 그냥 생고생으로만 떠오르는 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런 안타까움을 담아서 한 말이었다.
" 아, 편하겠네 이거... 좋다. "
지금 입은 배색과 같긴 하지만 원피스라서 좀 더 편한 느낌이기도 할 테고, 가디건이랑 함께 입는 것도 꽤 맘에 들었다. 취향적중이라는 느낌이라서 이건 꼭 사야지, 하고 소중히 킵해뒀다.
" 필살기라니... 무슨 필살기인 거야. "
미묘한 기분에 손등으로 볼을 문지르다가 탈의실에 들어가서 입는 걸 얌전히 기다렸다. 그리고 다림이의 시착 모습을 보고 나는 필살기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말았다. 요망해! 아니, 이건 다림이가 입어서인가... 아니다! 역시 요망하다! 이 옷이 그럭저럭 요망(?)하고 다림이도 요망하다! 둘 다였다!!
" ...꼭 사야겠다. "
아니, 꼭 내가 입는다는 건 아니다. 누굴 준다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 옷장 속에 쳐박혀 있더라도 사야 할 것 같은 느낌이야... 저건! (가디언칩 잔고: 주인님... 죽여...줘...) ...어디서 환청이. //🛍🛍🛍🛍🛍🛍🛍🛍🛍🛍🛍
"정작 준비할 때에는 같이 하지만 참여는 제대로 못하니까요." 생고생만 하고 참여는 잘 못하는? 어 그렇게 생각하니 영 그렇네요.. 라고 말해봅니다.
"가디건을 벗으면 여름용으로도 괜찮고요.." 가디건이랑 함께면 겨울 빼고는 웬만해선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해봅니다. 킵해두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적당히 추천하는 것들이 꽤 됩니다. 예를 들자면 퍼프 소매의 블라우스라던가.. 깔끔한 커프스다 달린 기사 같은 느낌의 드레스셔츠에 조끼라던가.. 그냥 보는 것도 예쁜 것들을 보여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민소매를 안에 받쳐 입고 상의를 걸치듯 입는 것도 의외로 어깨선이 슬쩍 보이게 하는 등등...
"사비아 언니가 입어도 필살기.. 될걸요." 그 분이 코피 터지기라도 한다면 그건 위험하려나요. 라고 농담처럼 말하면서 좀 더 큰 사이즈로 사야지 언니에게는 좀 맞을 것 같지만요. 라고 말합니다. 하긴. 마네킹에 걸린 걸 다림이가 입었는데 치마 끝이 허벅지 중간까지밖에 안 오는데 비아가 똑같은 걸 입으면.. 위험하지..
"어때요?" 짠. 하고 입어보며(아무래도 좀 은근슬쩍한 것들은 다림이가 먼저 입어봄으로써 중화? 그런 걸 하는 모양입니다) 매우... 요망해보이는... 웃음을 지어보입니다. 머리카락이 길었거나 틀어올렸으면 더했겠군.
또다시 헝클어지는 머리에, 마주 섰는 가쉬의 정강이를 세게 차주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참으면서 그를 쏘아보았다. 두 살이나 어린 남자애에게 머리를 쓰다듬어지는 것은 묘하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이게 뭐라고 의기양양한 미소까지 보이는데. 괜히 얄밉다. 이걸 한 대 때려줄 수도 없고.
"키만 크면 다냐?"
그렇게 크지도 않구만. 하고 퉁명스레 덧붙이며,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흐트러진 앞머리를 정돈했다. 그의 짓궂은 행동에 대해서 뭐라고 좀 더 쏘아붙이고 싶었으나, 이런 걸로 화를 내기도 민망해서 그만두기로 했다. 어린애를 상대로 어른스럽지 못해.
후- 하고 한숨을 내쉬어 화를 삭이고, 가디언 칩의 연락처 화면을 띄워서 그의 눈앞에 내밀어 보였다.
" 운이 안 좋았구나... " 그렇게 해서 마지막에 온 학교는 의념각성자가 되어 가디언 아카데미...인가. 운동회 같은 걸 한다 해도 초고속카메라로 찍어야 하는 운동회 같은게 되버린 지금은 평범하게 즐기긴 힘들텐데. 학교별 대항전이 되어 학교별로 결전병기 선배들을 끌어모아서 출전시키면 했지. 그러고보니 다림이는 왜 전학을 갔던 걸까? 아마 이사 문제─집이 아니라 보호자를 이사했다는 점에선 틀리지 않았다─라던가... 이사를 그렇게 자주 다녔다면 그것도 좀 그렇지만.
" 확실히 겨울엔 너무 추워 보일 것 같아. " 기본적으로 가디언 퀄리티니 한겨울에 사각팬티만 입고 다녀도 추울 일은 없지만, 추워 보이는 건 좀 그러니까. ...연인 사이에선 추워 보이니까 옷을 덮어줄게─라는 닭살 상황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도 있지만, 난 아니다. 음. 음음. 그리고 지금은 점점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봄이다. 퍼프 소매 블라우스나 셔츠에 조끼 같은 걸 보면서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다림아... 너 혹시 여기 알바생이니...? ─아니다. 악의 소굴 몽블랑의 매니저이다.─ 어디선가 가디언칩 잔고의 단말마가 들려오기 시작하는 것 같아서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리고 어깨선이 살짝 보이게 입는다는 거엔 고개를 끄덕거렸다. 상의는 조금 헐렁한 느낌으로 해도 되려나...
" 그-그런가? 에이, 설마... " 농담에 웃지도 울지도 못하면서 손사래를 치다가 큰 사이즈로 사야겠단 말을 긍정했다. 다림이도 키가 작은 편은 아니지만 나보다는 작은 편이고. ─똑같은 걸 입으면 어떻게 될지... 거기까지 생각했으면 진석했을 것이다!!─
" ...정말, 남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인데. " 예쁘게 빚어놓은 얇은 석고 마네킹에 옷을 입혀놓고, 이제는 피그말리온의 눈물을 한 방울 떨어트린 것마냥 요망함을 생기 삼아 움직이는 표정까지 깃든 것 같다. 잘 어울리긴 한다. 하는데. 이거 입고 밖에 나가게 하고 싶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