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계열의 붉은 빛 머리와 연한 분홍빛의 눈. 귀엽다고 하면 귀엽지만 여간 사내답지 않은 행동과 귀염성 없는 태도가 인상적인 아이였다. 한 달 동안 일 할 때도 그녀는 묵묵하게 망치를 두드리고, 그라인더로 갈고, 무거운 것도 별 불만 없이 옮기는 모습이 인상에 남아 있었다. 장난스레 머리를 헝크러트리자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본다. 그래, 저 눈이지. 제철소에서도 가끔 장난치면 저런 눈으로 죽일 듯이 쏘아보곤 했으니까. 등 뒤가 따끔따끔 해오는게 보통 스릴 있는게 아니라니까. 이내 그녀가 주먹을 쥐고 옆구리를 쿡 찌르자 "아야야야야." 하고 아픈척을 하며 오버된 행동으로 옆으로 넘어졌다가 오뚜기처럼 다시 돌아온다.
"헤헤. 그렇게 평가해주시니 고맙구만."
잘생겼다는 이야기는 순수하게 기분이 좋다. 짜릿해. 늘 새로워.
"나도. 뭐, 그 땐 의념 각성도 하지 못했던 때고."
학원도 바깥에서 알던 사람을 또 학원도에서 만난다는 것은 꽤나 각별하다. 은후도 그런 경우지만 은후는 어릴적부터 알아온 친구니 예외이고. 그녀는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홱 고개를 돌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진 모르겠지만, 늘 저런 식이었으니까.
"뭐. 그럭저럭. 어찌됐든 죽지 않고 살아있다. 아, 그래. 소장님은 잘 계시고? 아직도 일 할 때 호통치시고 그러냐? 상상만 해도 귀가, 머릿속이 아주 쩌렁쩌렁 울린다. 가쉬! 허리 힘을 쓰라고 했지, 허리 힘을! 사내놈이 말라 비틀어져가지곤!"
어쩐지 미나즈키는 석연찮은 기색이었지만 납득하려는 기색이 강했다. 나도 어쩐지 씁쓸해진 속을 달래기 위해 애써 달콤한 음료와 과자를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생각해보면 여기에 넘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청월에서 지내던 긴 시간에 비해 정말 많은 인연을 쌓고 달라지고 있음을 떠올려 뭐라고 해야할까 기쁘면서도 복잡한 기분이 들긴 했던 것이다.
"응. 그래준다면 고맙고."
여태까지 대해주었던 태도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나야 기쁘다. 갑자기 '뭐야. 이제 청월도 아니야? 퉷.' 같은 발언이 나오거나 했다면 아무리 그래도 마음에 큰 흉터가 생겼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어쨌거나 나는 그가 공부하는 것을 흘끔 지켜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기로 했다. 시험을 알려줄 순 없겠지만, 그래도....
"시험이 끝난 직후인데 곧바로 공부라니, 열심히 하네. 의뢰는 잘 다니고 있어? 실기도 중요한 편이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나도 얼마전 경호부 부장님에게 큰 실례를 끼쳤던 적이 있었던게 떠올라서, 쓴 웃음을 지었다. 그걸 달래기 위해 상점가에 가서 곰돌이 인형을 사서 선물해줬던 흐름까지 생각해보면, 인간 관계라는게 확실히 그리 녹록치는 않다. 의도가 좋아도 상대를 불쾌하게 만드는 일 같은건 얼마든지 있고, 기계가 아닌 이상 관심에서 멀어지면 거리도 벌어지는게 관계인 것이다. 나는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도, 그녀의 얼굴에 홍조가 도는걸 조금이나마 귀엽다고 생각했다. 더 부추기는건 너무 짗궃다고 생각했음으로 웃으면서도 모른체 넘어가기로 했지만 말이다.
"흐음.......그렇게 말하니까 어쩐지 다림이에게서 반말을 들어보고 싶네."
아까전 마법소녀와 비슷하게, 평소의 인물이 그렇게 행동하는게 잘 상상이 안가는 것을 하면 그 격차로 인해 신선한 느낌을 주게 된다. 내가 알기로 다림이는 거의 대부분의 인물에게 정중하게 존댓말을 하는 인물이었으니....반말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얼마전에 찾아갔을 땐 친한사람이라고 해줬으니, 조건은 충족하고 있는거 아니야?"
조금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 때 기세로 뭔가 부끄러운 내기를 했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런걸 한 이상 그녀에게서 드물게도 반말을 들을 자격은 충분해진게 아닐까??? 나는 그런 논리를 펼쳐보는 것이다. 물론 별로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으니, 아무래도 좋은 일이지만.
마지막으로 갔던 의뢰가 뭐였지? 미나즈키는 여태 공부한다고 바빴던 탓에 최근 의뢰를 단 한 건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수업을 듣고, 검도부 활동을 하고, 공부하고, 교무실에 가보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지훈과 대련하고, 가끔 우동을 먹거나 카페에서 차도 마시고. 의뢰의 ㅇ자도 안 보이는 생활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가디언이 아니라 그냥 UGN 사무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자, 미나즈키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진화를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