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답답했다. 남들의 기대를 받으면 흠뻑 젖어 몸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힘들어서 주저앉으면 다들 나에게 말했다. 왜 멈췄어? 네가 바라는 것이었잖아. 그들의 기대가 나의 꿈을 무겁게 했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여전히 그 눈에는 나에 대한 관심이 가득했다. 나는 그런 기대를 견디기 위해 몸을 부풀렸다. 작은 틀에 갖혀, 그저 비루하게 몸을 불린 내가 되었다. 어느 날 내가 거울을 보았을 때. 그 곳에는 거대한 살덩이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내 눈과, 코와, 입을 달고 있었다. 한때는 흠뻑 젖어있던 기대의 물들이 빠져버리고 꿈이라는 옷을 잃어버린 뒤에야 나는 지금의 나를 볼 수 있었다.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비루해진 내 몸뚱이에 눌리면서도 힘겹게 나를 받히고 있었을 뿐. 그것을 거부한 채 몸이 무거워 살덩이를 늘린 것은 나였을 뿐이다. 나아가야만 했다.
비아가 알려줄 생각이 없어보이자 살짝 삐뚜름히 입을 내민다. 토라짐의 표정이다. 비아에게는 그마저도 항의가 아니라 그냥 귀엽게 보일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름 항의였다.
" 그럼 그 이외의 것 정도는 들어줄게. 아니, 내게 줘. 내가 널 존중하니, 그정도는 나를 존중해줄 수 있지? "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그정도는 존중해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짐은 나눠들고 싶었다. 그 권리를 받아내고 싶어, 억지를 부려버렸다. 이러면 안 되긴 하지만... 어느정도는 이해해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단호한 표정이 살짝 흐려지자 미소를 유지하며 비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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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은 비아를 빤히 바라보며 숨을 내쉬었다. 느린 숨이었다. 어느정도는 납득할 수 있었지만, 어느정도는 납득가지 않았으니까. 아니, 납득가지 않는다기보단 그저 부정하고 싶은 것에 가까웠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이란 원래 그런 거였으니까.
" ...응. 알았어. "
그럼에도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납득하는 감정도, 납득하지 못 하는 감정도 묻어두고, 그가 가장 잘하는 무표정으로. 그 이유는 거절당하지도 수락받지도 않았기에.
단순히 감정에 휩쓸리면 안 되는 걸까. 우린 아직 어리잖아. 같은 말은 묻어둘 뿐이었다. 자신은 비아를 존중했다. 그렇다면 그녀의 방식 또한 존중하고 싶었다. 그 말 또한 무표정 뒤에 숨겼다.
가면 아닌 가면. 그 표정 뒤에, 수많은 말과 감정을 숨기고선,
첫 사랑에 대한 감정마저 숨기고선,
" 좋아. "
늘 그랬듯이 어렵게나마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다.
지훈은 이마를 맞대고선 눈을 감는다. 부드럽고, 기분 좋은 온기가 느껴졌다.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비아를 향해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