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에요. 응." 하고 스베타는 말했을 것이다. 당신이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여긴다 해서, 아닌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당신이 그리 여기고 싶다면야, 더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그런 마음은 영원하지 않을 테니까. 당신과는 오늘 밤이 첫 만남이었으니 시간이 지나면, 이해 못 할 당신의 그 믿음은 분명 변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럴만해요. 다들 부끄럼쟁이거든요. 그리고...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는 그랬다고 들었어요."
스베타는 고개를 저으며 당신의 호기심에 답한다. 부끄럼쟁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농담이었지만. 결국 이유는 보는 눈 때문이었다. 지금의 당신처럼, 한 명의 관심은 가볍지만. 그 수가 많고 지속적이게 된다면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입학식 때 기린궁 학생들이 보이지 않았던 이유도 그 때문이라는걸. 기린궁에 들어오고 나서야 이해 하고, 알 수 있었다. 스베타는 두 팔로 감싼 무릎에 제 턱을 얹고 당신을 건너다보다, 당신의 학년을 듣고선 놀란 얼굴로 눈을 깜빡인다.
악몽을 꾼 날은 어쩐지 몸이 무겁고 묘하게 나른해서 움직이기 싫어지지만 그래도 수업은 들으러 가야 했다. 거기다 오늘은 간만에 지정 수업이 아닌 날이다. 한번에 모이는게 아니라 윤과 같이 있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듣고 싶은 걸 고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아쉬움이 덜하다. 딱 5분 더 누워있고 싶은 몸을 꾸역꾸역 일으켜 수업 들으러 갈 준비를 한다. 머리 손질을 대충 했더니 여기저기 뻗쳐서 보기에 썩 좋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오늘은 그냥 가기로 한다. 귀찮으니까.
"......"
설렁설렁 수업표가 있는 곳으로 가 오늘의 수업을 보니 빠진 것도 있고 새로 보이는 것도 있다. 어느 쪽이든 들을 생각은 없었으니 한번 슥 보고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실로 향한다. 걸으며 발을 끄는게 좋지 못한 행동인 건 알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다리가 무거워 저절로 걸음이 끌린다. 지익지익. 다소 듣기 좋지 않은 소리를 내며 교실로 들어가 안을 한번 둘러보고 적당히 빈 자리에 앉는다.
하긴. 정말 이 미래 저 미래 가리지 않고 죄다 볼수 있었다면, 그리고 해석이 다 한결같다면 그땐 다른거 필요 없이 너도나도 찻잔 점성술 보면서 미래에 미리 대비하는 성실한 사람이 되어있지 않았을까. 주양은 마냥 키득거렸다. 꽤 재미있는 상황이었을지도 모를텐데, 조금은 아쉬웠기도 하니까.
"음? 단추나 개 모양은 어째서 열외인가요 교수님~ 그건 다른 모양들처럼 딱 떨어지는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닌가요?"
의문을 가지며, 주양은 제 찻잔을 들기 전 먼저 교수님의 찻잔으로 잔뜩 시선을 주었다. 과연 설녀는 이 찻잔 점에서 무엇을 떠올렸을까.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그것들이 꽤나 궁금했던 나머지 제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몸을 곧게 펴서 그렇게 떠 한참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제 찻잔도 뒤집었을까.
"미래일까, 과거일까~ 그리고 과연 길조일까 흉조일까~"
자. 지금부터 확인 들어가겠습니다. 괜히 쿵짝짝 쿵짝짝 하고 입브금을 넣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간단한 흥얼거림과 함께 찻잔을 열었다.
발 끄는 소리에 놀라다니, 저 교수님은 대체 어떻게 이 수업의 교수가 됐는지 의문이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 비뚜름한 자세로 오늘도 심약한 에반스 교수를 보았다. 무슨 수업을 할지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교수가 어떤 서류 가방을 꺼냈고, 달각거리는 소리에 왠지 무슨 수업인지 알거 같았다.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다.
"......"
에반스 교수의 말을 들으며 그녀는 지난번 보았던 백호 패트로누스를 떠올렸다. 그 패트로누스도 말을 했었지. 한마디 뿐인게 별거 아닌 거 같기도 하지만 위급한 상황에선 꽤나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숙달해서 나쁠 건 없겠다고 생각하며 책상에 턱을 괸다.
시전자의 심리에 따라 변한다... 그녀는 처음 패트로누스를 불러냈을 때의 현상을 떠올렸다. 푸른 안개가 분명 고양이에 가까운 형체를 띄다가 돌연 여우로 변했던 것을. 그렇게 신기한 현상도 아니었다. 그녀의 남매들 역시 바뀌었다고 들었으니까. 다만 그녀처럼 처음부터 바뀐 건 아니었다. 뭐, 어디까지나 그렇다는 얘기다.
"......"
외형으로 시비, 까지는 아니지만 넷째의 패트로누스가 라쿤인가 랫서팬더인가 그래서 놀림감이 됬던 적은 있었다. 누구에게 무슨 영향을 받아야 그렇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
디멘터, 그슨새, 그슨대... 적당히 깃펜을 들어 끄적이며 다음을 기다린다. 오늘은 특별히 떠오르는 질문이 없기에 마냥 조용히 듣고만 있는다.
개가 죽음이라니. 상상했던 것과 조금은 다른 내용을 듣고 주양은 눈을 깜빡거렸다. 그렇게 위험한 느낌인줄은 몰랐는데. 앞으로 개는 멀리해야지.. 라고 할 뻔. 당신의 키가 커진것은 그저 기분탓으로 느껴지는 것만은 아닐 터였기에. 한참 시선을 올려 당신을 멀뚱 바라보다가 곧 미소를 걸쳤다.
"오오, 교수님 센스 짱이시네요! 음흠, 미래의 안정이라..."
지렁이젤리, 한가득 사드린 보람이 있었어! 그런 느낌으로 주양은 눈을 반짝 빛냈다. 썩 놀라운 해석이 아닐 수 없었다. 언제인지 모른다면, 그것이 당장 찾아올 미래가 될 수도 있으며, 어쩌면 먼 훗날의 일이 될수도 있었다. 표정이 제법 의기양양해진 것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안정을 확신했기 때문이었지. 물론, 이 점 하나만으로 모든걸 바라보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아직 확신을 하기는 이르다.
"오호라.. 각각 그렇게 읽히는거군요. 신기하네요! 넹, 다시 한번 더 해볼게요! 감사합니다~"
수건으로 깔끔하게 닦고, 주양은 다시 차를 원샷한 다음 잔을 엎고 들어보았다. 과연 이번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가만히 듣고 있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패트로누스를 부르는 기억의 기준은, 본인이 기쁘고 즐거운 것이 기준이 아니라 기억의 내용이 기준이 되는 걸까. 아니면 본인이 아무리 즐겁고 기쁘게 느꼈어도 그 감정이 온전하지 않기 때문인걸까. 깃펜으로 양피지를 톡톡 두드리며 이걸 물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교수의 부름을 우선시하기로 했다.
"네에."
걸음만큼이나 늘어지는 대답을 하고 일어나 앞으로 나간다. 허리춤에서 지팡이를 꺼내 까딱까딱 흔들다가, 이내 똑바로 들고서 주문을 읊었다.
"익스펙토 패트로눔."
그러자 지팡이 끝에서 푸른 안개가 장난치듯 스멀스멀 흘러나오다가 곧 여우의 형태를 이룬다. 아직은 귀끝이나 꼬리끝이 안개처럼 흩날리지만 대략적인 형태는 갖추고서, 공중제비를 휙 돌더니 그녀의 어깨에 착 내려선다. 패트로누스를 한번 쓰다듬어주고 이제 뭘 하면 되냐는 눈으로 에반스 교수를 본다.
교실로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풍경에 단태는 움찔,하고 걸음을 멈추고 암적색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며 바라봤다. 일단 건 선생님이 여기에 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기는 했다. 그런데, 대체 왜 교탁에 드러누워 계시는 걸까. 날씨가 너무 더워서 교탁 위가 시원해서? 잠시 놀란 것같은 표정을 짓던 단태는 히죽-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교탁 위, 많이 시원하세요. 선생님?" 하고 능글맞은 뻔뻔한 어조로 재잘재잘거리고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너무 앞자리도 아니고, 너무 뒷자리도 아닌 적당한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