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다가오는 모래상어를 바라보던 정훈은 상어가 충분히 다가왔다는 생각이 들자 곧바로 화살을 쥐고 있던 손을 놓아 화살을 쏘아보냅니다. 곧 화살은 등지느러미와 맞닿은 모래를 뚫고 그 속에 박혔고 다가오던 상어는 괴성과 함께 모습을 잠시 보여주곤 모래 속으로 더 깊숙히 숨어들어갑니다.
" ...그러니까 맥스씨한테 좀 잘해주세요. " " 모래 안쪽을 공격할 방법이요? 아까처럼 바닥에 가까이 붙어있다면 화살로도 뚫을 수 있겠지만.. 깊숙히 들어간 상태면 솔직히 답이 없는데요. "
땅 속에 깊숙히 파고든 다음, 치솟아 오르며 공격한다면 브루터메니스가 버텨주길 기도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은데.. 영성을 모아야 한다는 말에 정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심을 하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손가락을 튕기며 활기찬 목소리로 말합니다.
릴리는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에 삶이 한 바탕 꿈이고, 기억이 영사기의 필름처럼 한 통에 들어간 무의미한 정보의 나열에 불과하다면…… 방금 있었던 일은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샐러드 속의 피클처럼 불거져 나오는 존재요, 수식의 아름다운 증명을 방해하는 돌부리 같은 상수였다. 의미를 지니지 않은 가족 사이에서 태어나 의미를 지니지 않은 원대한 꿈을 노리고 의미가 없는 죽음으로 향해 가는 것이 삶이라고 한다면, 방금 릴리가 겪은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 떨리는 입술과 땀에 젖은 이마 사이의 진동에서 릴리는 그 해를 구해 내었다. 이것은 삶의 유의미성에 대한 존재증명이다. 인생은 그렇게까지 허망한 것은 아니라고, 신이건 우주건 섭리건 아무튼 대단한 존재가 있다면 그가 미물들에게 친히 베풀어 주는 강의인 것이다. 그 사실을 가쉬는 인지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릴리는, 처음으로 알아내었다. 그리고,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언제나 대발견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 가족 말고 누구한테 뽀뽀한 건 처음이니까…… 영광스럽게…… 여기도록 해.”
그런 대발견에 지불하는 값으로 이 정도라면 싸게 먹힌 것이다. 연금술사들에게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자산이 바로 삶에 대한 확신이니까.
하지만, 어쩌다가……!
‘어쩌다가 나는 이런 미소년한테 반해서 스스로 책임도 못 질 짓을 벌이고 있는 거냐!’ 릴리는 속으로 절규했다. 팔짱(연인들은 대부분 당연히 한다고 생각했던 그 행위)을 하고 레스토랑에 입장했을 때까지만 해도 아직은 괜찮았다! 하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1호 뽀뽀는 아주 귀중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 사회의 통념이다. 그런데 만약 가쉬에게 아무런 마음이 없어서 당초 생각했던 것처럼 흘러 지나가는 짝사랑이 된다면, 릴리 자신의 소중한 기회와 사회적 평판은 어찌 될 것인가? 보나마나, 보나마나마나마나 얼레리꼴레리라는 말을 듣고 살게 되겠지! 초등학생 때 같은 학년의 예쁜 아이에게 기습적으로 뽀뽀했던 아이가 그 일의 여파로 지금은 헌터로 활동 중이라는 소식이 생각났다. 그것만은 죽어도 안 돼!
내적 갈등 덕분에 릴리는 배고픔을 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었다. 지금은 식사든 건축이든 방정식의 증명이든 뭐든지 해서 이 복잡한 감정을 해소해야만 했다. 가쉬는 더 이상 피자는커녕 물 한 방울도 안 들어갈 듯해 보였다. 얼른 식권을 받아 도망치고 싶었다. 릴리는 남아 있는 피자를 모조리 돌돌 말아 사다새처럼 식도에 꽂아넣고 꿀꺽 삼켰다. 그 결과, 61분 만에 완식이었다.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얼굴을 감싸쥐고 자기의 앞머리를 마구 부벼 헝클었다.
생각해 보면 그날부터 꼬였던 것이다. 고독하고 멋진 연금술 연구가라는 사회적 평판은. 애초에 그런 것이 있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 같은 벤치에 앉아 엉엉 울며 매달려 있는데 릴리만 곱게 빠져나갈 수 있는 그림이 나올 리가 없었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과 연구서들, 논문들이 릴리를 책망하는 듯한 환청이 들려 왔다. ‘학문과 결혼했다면서, 오렐리, 실망이야.’
‘아니야……! 중혼을 안 하겠다고 한 적은 없단 말이야!’
이제는 지쳤다. 릴리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아직도 입술이 불타는 철판에 닿은 듯이 뜨거웠다. 한쪽 눈만 뜨고, 맞은편의 그를 바라보면서 이 내적 갈등의 늪에서 빼내 줄 어느 말이라도 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볍게 스텝을 밟고, 손에 든 롱소드를 한바퀴 돌린다. 중요한건 집중, 그리고 이미지. 의념을 통해 강화한 감각을 통해서 모래로 부터 흘러들어온 진동을 느낀다.
아무리 숙련된 사냥꾼이라도 먹잇감을 잡았다고 생각한 그 순간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오래된 가르침이다. 하지만 오래된 만큼 틀린적은 없었다. 이렇게
" 잘 봐둬, 분명 너에게 도움이 될거니까 "
팡 소리와 함께 모래를 뚫고 올라온 놈에게, 나는 양손으로 쥔 검을 휘두르며 의념을 폭발시키듯 터트렸다. 의념발화를 사용하면서 날아든 검이 모래상어의 이빨에 부딫히며 철이 휘어지는 듯한 기괴한 소음과 함께 모래상어가 그 육중한 몸으로 나를 내려찍지 못하고 허공에 채류한다.
"맞장구를 치는 걸 잘 못하시는 거 치고는 잘 들어주신 것 같지만요?" 라고 말하다가 도와준다는 말을 할 수 없다는 은후를 물끄러미 말은 없이 바라봅니다. 도와주는 것은 할 수 없는 걸까. 그렇다면 그럴 뿐입니다. 그러지 못한다고 해서 책임을 돌리거나. 원망하는 그런 건 아니니까요. 그게 다림이지요? 그저... 내재된 것을 둘 뿐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런...그렇군요" 사과할 필요는 없다는 말에 잠깐 멈칫하고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정말로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해도 갈등은 사라지지 않은 채 미미한 부채감으로 남을지도 모르지만요. 미안한 게 자신이라는 은후의 말에 뭐라고 말을 할 수 없다는 듯 조용합니다.
"달팽이는 귀여웠어요." "은후 씨께서 잘 들어가시길 바랄 뿐이에요." 덤덤하게 다림은 말을 끝맺었습니다. 다림은 저도 들어가봐야겠다는 말과 함께 일어서서 느리게 손을 흔들었을까요?
농담이라는 말에 지훈의 입꼬리가 살짝 내려가 무표정하게 바뀌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비아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단정지을 수 있냐는 물음. 그 이후의 잠시간의 침묵. 지훈은 그렇게 비아를 바라보다가, 다시 한번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리고는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보았을까.
" 아직도 키고 자진 않지만 책상에 둔 상태니까. 귀엽거든 그거. "
무드등이라는 것을 키고 잘 날이 그렇게 많진 않으니까. 다만 어딘가에 넣어두고 보관하기만 하는 것은 선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기에 책상에 여전히 놔두던 상태였다. 물론 귀여웠기 때문도 있지만.... 사실 이쪽이 진짜 이유에 가까웠을까.
" 평범하게 놀러다니는 건 싫어? "
괜히 농담을 하며 장난스럽게 삐죽 튀어나온 입술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두드리려고 시도한다. 비아가 싫어한다면 그대로 피할 수 있었으려나. 비아가 승낙하자 기분 좋아졌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아의 소매를 다시 잡고는 이끌기 시작했지.
산책로를 따라 길을 걷다보면 해변가로 이어졌을까. 해변가를 따라 걸으며 인적이 드문 곳으로 비아를 이끌어가던 지훈은, 자리에서 멈춰서더니 무언가를 찾듯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내 찾았다는 듯 작게 탄성을 지르며 비아를 이끈 곳은, 불쑥 튀어나온 해변 끝에 자리잡은 전망대였다. 아무도 찾지 않은지 꽤 되었는지 조금 낡고, 녹이 슬었던.
" 여기. 이곳에 꼭 누군가를 데려와보고 싶었어. "
평소 산책하다가 높이 서있는 건물을 먼 발치에서 보았고, 그것을 향해 계속 걷다보니 우연히 발견했던가. 자물쇠가 이미 끊어져있던 문을 익숙하다는 듯이 열고선 전망대를 올라가자, 바다의 전경과 함께 저 멀리에 아카데미가 저 멀리서 보이고 있었다. 지훈은 난간에 기대어 소금기가 섞인 바닷바람을 한껏 들이마시더니, 느릿하게 숨을 뱉으며 비아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