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한 번 헤어진 사람은 다시 만나기 힘든 법이잖아. 특히,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어쩔 수 없는 거지…. 어쩔 수 없는 거지만, 되짚어보면 슬프고…."
어제 헤어진 사람들 다시 볼 수도 없는 세계. 다림의 시선이 허공을 향해 옮겨간 것을 보고, 자신 또한 시선을 먼발치로 넘겼다. 오늘은, 절대 적지 않은 비가 내리고 있고….
"그건 너뿐만이 아니라, 다들 그럴 거야. 누구라도 그러니까, 너무 자조적인 이야기는 하지 마."
이별은 준비한다고 해도 익숙해질 수 없다. 그것이 예정된 이별이던, 갑작스러운 이별이던. 그렇기에 청년은, 돌려 말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렇게 딱 잘라 말한 것이다. 누구라도 다 그런 법이라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진 모르겠지만, 모두 너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그게 사람이라고.
"그래? 나도 그래. 너랑 다시 만나서 기쁜 것도, 너도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도." //12
"그랬지요." 덤덤하게 받으며 만난 달팽이들을 초록색의 널따란 이파리와 땅의 경계 위에 내려주려 합니다. 땅으로 내려갈 거면 내려가도 좋고, 이파리 위로 위험천만히 올라간다 해도 그것은 선택일 겁니다.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조금 더 크게 남는 것 같기도 하네요." 그냥 떠나가서 연락이 지속될 수 있었다면야 점차 뜸해지다가 큰 반향 없이 조용히 끊길 수도 있었겠지만, 사람들이 헤어짐을 크게 느끼는 세상인걸요. 언제 게이트가 열릴지 모르는 그런 것도 있지요. 다들 그럴 거란 말에 그렇다면. 그렇겠지요. 라는 말을 하지만 겉으로는 하지 않는다 하여도.. 속에 담는 걸 그만두진 않을 거에요.
"누구라도 그렇겠다.. 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남는 이유는 있겠지만. 그것을 티내지 않은 채 미소짓습니다.
"그렇다니 다행일까요?" 기쁘다. 라는 것은 별 거 아닌 것처럼 넘기며 그저 기쁘다는 것으로 여기겠지만. 만일 만난 것이 기쁘지 않다거나. 원망스러웠거나 그랬다 한들 다림은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을 겁니다.
말없이, 다가오는 모래상어를 바라보던 정훈은 상어가 충분히 다가왔다는 생각이 들자 곧바로 화살을 쥐고 있던 손을 놓아 화살을 쏘아보냅니다. 곧 화살은 등지느러미와 맞닿은 모래를 뚫고 그 속에 박혔고 다가오던 상어는 괴성과 함께 모습을 잠시 보여주곤 모래 속으로 더 깊숙히 숨어들어갑니다.
" ...그러니까 맥스씨한테 좀 잘해주세요. " " 모래 안쪽을 공격할 방법이요? 아까처럼 바닥에 가까이 붙어있다면 화살로도 뚫을 수 있겠지만.. 깊숙히 들어간 상태면 솔직히 답이 없는데요. "
땅 속에 깊숙히 파고든 다음, 치솟아 오르며 공격한다면 브루터메니스가 버텨주길 기도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은데.. 영성을 모아야 한다는 말에 정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심을 하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손가락을 튕기며 활기찬 목소리로 말합니다.
릴리는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에 삶이 한 바탕 꿈이고, 기억이 영사기의 필름처럼 한 통에 들어간 무의미한 정보의 나열에 불과하다면…… 방금 있었던 일은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샐러드 속의 피클처럼 불거져 나오는 존재요, 수식의 아름다운 증명을 방해하는 돌부리 같은 상수였다. 의미를 지니지 않은 가족 사이에서 태어나 의미를 지니지 않은 원대한 꿈을 노리고 의미가 없는 죽음으로 향해 가는 것이 삶이라고 한다면, 방금 릴리가 겪은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 떨리는 입술과 땀에 젖은 이마 사이의 진동에서 릴리는 그 해를 구해 내었다. 이것은 삶의 유의미성에 대한 존재증명이다. 인생은 그렇게까지 허망한 것은 아니라고, 신이건 우주건 섭리건 아무튼 대단한 존재가 있다면 그가 미물들에게 친히 베풀어 주는 강의인 것이다. 그 사실을 가쉬는 인지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릴리는, 처음으로 알아내었다. 그리고,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언제나 대발견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 가족 말고 누구한테 뽀뽀한 건 처음이니까…… 영광스럽게…… 여기도록 해.”
그런 대발견에 지불하는 값으로 이 정도라면 싸게 먹힌 것이다. 연금술사들에게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자산이 바로 삶에 대한 확신이니까.
하지만, 어쩌다가……!
‘어쩌다가 나는 이런 미소년한테 반해서 스스로 책임도 못 질 짓을 벌이고 있는 거냐!’ 릴리는 속으로 절규했다. 팔짱(연인들은 대부분 당연히 한다고 생각했던 그 행위)을 하고 레스토랑에 입장했을 때까지만 해도 아직은 괜찮았다! 하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1호 뽀뽀는 아주 귀중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 사회의 통념이다. 그런데 만약 가쉬에게 아무런 마음이 없어서 당초 생각했던 것처럼 흘러 지나가는 짝사랑이 된다면, 릴리 자신의 소중한 기회와 사회적 평판은 어찌 될 것인가? 보나마나, 보나마나마나마나 얼레리꼴레리라는 말을 듣고 살게 되겠지! 초등학생 때 같은 학년의 예쁜 아이에게 기습적으로 뽀뽀했던 아이가 그 일의 여파로 지금은 헌터로 활동 중이라는 소식이 생각났다. 그것만은 죽어도 안 돼!
내적 갈등 덕분에 릴리는 배고픔을 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었다. 지금은 식사든 건축이든 방정식의 증명이든 뭐든지 해서 이 복잡한 감정을 해소해야만 했다. 가쉬는 더 이상 피자는커녕 물 한 방울도 안 들어갈 듯해 보였다. 얼른 식권을 받아 도망치고 싶었다. 릴리는 남아 있는 피자를 모조리 돌돌 말아 사다새처럼 식도에 꽂아넣고 꿀꺽 삼켰다. 그 결과, 61분 만에 완식이었다.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얼굴을 감싸쥐고 자기의 앞머리를 마구 부벼 헝클었다.
생각해 보면 그날부터 꼬였던 것이다. 고독하고 멋진 연금술 연구가라는 사회적 평판은. 애초에 그런 것이 있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 같은 벤치에 앉아 엉엉 울며 매달려 있는데 릴리만 곱게 빠져나갈 수 있는 그림이 나올 리가 없었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과 연구서들, 논문들이 릴리를 책망하는 듯한 환청이 들려 왔다. ‘학문과 결혼했다면서, 오렐리, 실망이야.’
‘아니야……! 중혼을 안 하겠다고 한 적은 없단 말이야!’
이제는 지쳤다. 릴리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아직도 입술이 불타는 철판에 닿은 듯이 뜨거웠다. 한쪽 눈만 뜨고, 맞은편의 그를 바라보면서 이 내적 갈등의 늪에서 빼내 줄 어느 말이라도 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볍게 스텝을 밟고, 손에 든 롱소드를 한바퀴 돌린다. 중요한건 집중, 그리고 이미지. 의념을 통해 강화한 감각을 통해서 모래로 부터 흘러들어온 진동을 느낀다.
아무리 숙련된 사냥꾼이라도 먹잇감을 잡았다고 생각한 그 순간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오래된 가르침이다. 하지만 오래된 만큼 틀린적은 없었다. 이렇게
" 잘 봐둬, 분명 너에게 도움이 될거니까 "
팡 소리와 함께 모래를 뚫고 올라온 놈에게, 나는 양손으로 쥔 검을 휘두르며 의념을 폭발시키듯 터트렸다. 의념발화를 사용하면서 날아든 검이 모래상어의 이빨에 부딫히며 철이 휘어지는 듯한 기괴한 소음과 함께 모래상어가 그 육중한 몸으로 나를 내려찍지 못하고 허공에 채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