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고 말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의 손을 잡았다. 벌써 손부터 잡자고? 보기완 다르게 솔직하고 엉큼한 아이네. 하고 생각하는데, 잡은 손이 점점 강해진다. "어, 조금. 아픈.. 아야.." 점점 힘이 강해지더니 그것은 수줍은 애정에서 상대를 제압하려는 의지가 느껴져 왔다. 신체C, B, A 상승합니다! 마치 눈 앞의 적이 엄청난 파워업을 하는 것 같은 장면을 떠올리면서 아직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데 명치를 향해 정면으로 스트레이트가 '퍼억' 소리를 내며, 박혀왔다.
"커헉."
분명 어디에서 맞고 다니지는 않을 터인데. 나는 그대로 깔끔한 클린히트를 당하며 침을 토해냈다. 내가 격투D가 아니었다면 죽..진 않더라도 피를 토해낼 법한 깔끔하고 강력한 펀치였다. 아직 머릿속이 눈 앞의 타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데, 눈 앞의.. 귀여운.. 아니는.. 갑자기 장식용의 거대한 방패를 들더니
"나는 남자야 - !!! 남자 - !! 남자!! 남자! 남자! 남자!!! 남자!!! 남자아아아아 - !!!"
몸이 으스러지는 격통과 동시에 자신이 남자라고 외치는 괴리감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그저 머리 위로 '???' 를 띄우며 쳐맞을 수 밖에 없었다. 나, 남자라고? 그러니까, 저 아이가? 저렇게 귀여운 아이가 남자아일리가 없어! 이 세상은 어떻게 되어먹은거냐! 아니 그것보다 아파! 방패 아파! X나 쎄잖아!
안되겠다. 지금 이 상태에선 죽도 밥도 되기도 전에 내가 시체가 되겠어. 나는 그대로 허둥지둥 꼬리를 말고 카페에서 도망쳐 나왔다. 다시는 가나 봐라 저 카페! 나는 카페에서 나온 뒤에도 날 죽이려 결심하고 따라오지 않을까 두려워 한동안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도망쳤다.
힐끔 힐끔, 나는 토라진 기색으로 하루가 무슨 얘길 하나 계속 들었다. 그녀는 상냥한 목소리로 나를 달랠려고 애쓰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징징거리는 아이를 대하는 듯한 어머니 같아서 모성을 느끼게 하는....
....아니 잠깐, 내가 연상일텐데 왜 아이 달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는거야? 아까는 여자애 취급을 받고, 이번엔 어린아이 취급을 받는 것 같아서, 뭐랄까 이건 이거대로 정말이지 묘한....묘한 분위기다. 그러나 아까에 비해 정말 교묘하게 설계 되어있다. 그녀는 나를 위해서 해주는 말이고, 그 내용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화낼 건덕지는 조금도 없어! 화내고 싶지도 않다.
결국 이 흐름에서 아이취급을 벗어나기 위해선, 어른스럽게. 요컨데 화낸 기색을 풀고 정상적으로 그녀를 대하는 방법 밖에 없다. 이게 다 계산된 행동이라면 실로 무서운 화법이다. 괜히 마성의 여자가 아니다. 생각해보니 카사가 이런식으로 계속 넘어가는 광경을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카사는 눈치조차 못 챘을 것이다...
"그래....알았어. 알았어. 화 안낼테니까."
일단 나는 부동일태세(ver. 삐짐) 을 해제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아까 대답을 피했던 화제로 돌아가서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말했다.
눈 앞의 소년의 이유 없는 배려에 스스로 죽을 날을 기다리는거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만들어왔던 벽이 무너져 내려감을 느꼈다. 7살의 아이가 벽을 만든다면 얼마나 견고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그정도, 였던 것이다. 스스로도 더이상 밀어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옆의 소년이 계속 재잘대며 무얼 말하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보육원의 아이들에게 두들겨 맞을 때와 같이 귀가 점점 멍해지며 현실에서 멀어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정신을 잃을 것 같은게 아닌,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을 소년은 느꼈다.
은후는 그런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무언가를 설명하며 가쉬에게 말해주다, 자신의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접어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 손을 잡아주자, 아직 7살 밖에 되지 않은 소년은.
"으...으...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그 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웃지도, 울지도, 찡그리지도 않던 소년이 눈물을 터트렸다. 스스로 흙을 쌓아 올렸던 댐이, 어떻게 쌓아 올려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감정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상처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쌓아올렸던 담이 더이상 버티지 못했던 것이다.
소년은 그저 종이를 쥐어주려던 은후의 손을 잡고 그저 꺼이꺼이 눈물을 터트렸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꼭꼭 감춰두었던 부분까지 전부. 가쉬는 은후의 잡은 손을 놓지 않고 한동안 울음을 터트렸다. 누군가가 자신의 슬픔을 부정할까봐,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사건이라고 치부해버릴까봐, 더 상처받을까봐 두려웠던 그 모든 감정을 감춰두고 미뤄두었던 만큼 벌을 받듯이. 그것이 모두 눈물이 되어 쏟아져 내리듯이.
오케이, 진화군도 이걸로 넘어가주는 모양이에요. 하루는 마음속으로 기쁜 미소를 지어보였고, 겉으로도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기쁜 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역시 악의가 없는 말은 삐져버린 사람의 마음도 녹여버리는 모양이에요, 하는 아주 좋은 경험을 한번 더 마음 속에 새겨넣은 하루는 입을 열어 대답을 이어나간다.
" 다행이에요, 진화군 기분이 풀린 것 같아서. 기분 망치려고 했던 말은 아니니까요 . "
친구랑 싸우는 건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하루는 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역시 친구랑 대판 싸우는 것은 에릭의 일로 족하다는 생각이 강해진 하루였다. 물론 또 그럴 일이 있다면 그렇게 움직이겠지만 어지간하면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으니까.
" .... 그건 되게 의외네요. 진화군이 때릴 줄은 몰랐어요. "
방패로 때려서 쫓아냈다는 말을 들은 하루는 놀란 듯 눈이 커진다. 확실히 진화가 누구를 때렸단 말을 듣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하루였다.
" 그... 뭔가 그 분이 좀 더 쓸데없는 말을 덧붙였던 모양이네요... 진화군이 폭력을 쓸 정도면 어마어마하게 화가 났다는건데.. 그렇게 충격이 크셨구나.."
급 아련해진 눈으로 잠시 진화를 바라보던 하루는 이내 다독이는 듯한 손길로 어깨를 토닥여준다.
" 그래도 그렇게 쫓겨난 후에 뭔가 찾아오거나 하지 않는거 보면 무난하게 지나간 것 같네요, 그쵸? 뭐.. 기억엔 오래오래 남아버리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