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질을 멈추고 팔짱을 낀 채 이야기를 듣던 릴리는, 가만히 테이블 위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침묵했다. 릴리의 정신은 기억의 궁전에 있었다. 방금 들은 일들이 담겨 있는 파일을 든 채였다. 이 파일을 사건 목록에 추가해 놓는다면 릴리는 두뇌의 일부를 다치지 않는 한 그 정보를 결코 잊을 수 없게 된다.
…… 하지만 릴리는 그 파일을 세로로 찢어 바람에 날려 버렸다. 날아간 파일들은 궁전에 내리쬐는 햇빛에 반짝이더니, 새하얀 그대로 구름의 일부가 되듯 사라졌다. 기억해 두지 않기로 한 것이다.
하루가 이 일을 릴리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서만 감당하려 했다는 것은, 자기 고통을 오롯이 스스로 감내하기 위한 것. 그리고 릴리에게는 그 사건에 관여할 권리도, 하루의 삶에 참견할 자격도 없었다는 것. 생각해 보면 당연하게도, 릴리는 하루에게 있어 ‘남’이었다. 고로 더 이상 그들의 관계에 얽히려고 해서도 안 됐다. 그게 『예절』이니까다.
“…… 씁쓸하지만 잘된 일이군.”
이것은 그 사건이 아니라, 릴리가 방금 내린 결정에 대한 코멘트였다.
“말에는 무게가 1그램도 없지. 하지만 말을 빼앗긴 인간은 사나워지니까 조심해. 언젠가 악착같이 벌어 모은 돈으로 역습할지도 모르니까 주의를 기울이라는 말이야.”
"연애 고수라는 소문이 돌아서, 그 사람을 영입해 상담 이벤트를 하자는 것 까진 나도 동의 했는데...."
스카웃 방법이랍시고 불러 낸뒤에 워리어 둘이서 습격한 다음 기절시키고 자루에 담아오자고 말했을 땐 기겁을 했다고 나는 덧붙였다. 심지어 더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가 하나미치야라는 여우귀 소녀와 사귄 직후에 제안한 아이디어라는 부분이다. 연인을 사귄 직후에 다른 소녀를 폭력적으로 납치해오자니, 사고하는 세계가 다르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릴리는 내 이야기를 듣곤 무언가 고민하는 기색을 품었다가, 이내 씁쓸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아까부터 하루가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반복적으로 얘기하는데, 하루와 친분이 있었던 걸까. 그게, 지금 여기서 점장이 어떤 인물인지를 묻는 계기 중 하나가 된걸까. 지금 씁쓸한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무언가 그 계기와 모종의 연관이 있는걸까. 머릿속에선 여러 의문들이 들었지만, 나는 그걸 캐묻기 보단 어딘가 처연해보이는 그녀에게 달콤한 과자 몇개를 좀 더 서비스로 건네기로 했다. 호기심으로 그런 일을 캐묻는 것은 좋지 않다. 내 일관된 신조였다.
"확실히.....잘 새겨둘게. 그런데 에릭이 그 만큼 철두철미한 녀석처럼 느껴지지는 않네."
사실 그런 짓을 저지를만한 녀석이었으면, 애초부터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적당히 웃었다.
그렇게 해서 연애 상담 이후에 이어진 커플에게는 추가적으로 서비스도 주는 이벤트가 있다~ 라던가. 그런 얘기를 하면서도, 나는 무언가 이상하다는걸 직감했다. 연애 상담에 반응하는 그녀의 반응이.....어쩐지, 굉장히 흥미가 있다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마치 내가 앞에 있다는 것조차 잊은 듯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나 또한 그걸 보며 속으로 무언가를 고민했다.
어라라? 이거.....설마....이 반응은........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이벤트는 현재 진행형이야!"
이용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나는 설마 설마 하면서도 그 물음을 기다렸기 때문에 마치 미끼를 던지자마자 물어올린 물고기처럼 서둘러 대답하는 것이다. 실제로 에릭에게 전해 듣기로 에미야에게 납치가 아닌 건전한 방법으로 영입을 성공했다고, 곧 출근할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그런데, 이 반응은....역시....나는 이 시점에서 설마설마 했던 가정을 거의 확실시 했다.
"......연애에 대한 고민이라도 있는거야?"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굉장히 의외다.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흥미롭다. 설마 사귀고 있는 상대가 있는 것인가? 아니, 그런 분위기는 아닌데....그렇지만 적어도 연애 상담에 흥미가 있다는 것은, 호의적으로 마음에 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겠지. 어쩐지 두근두근해지는 마음으로 나는 조심스럽게 그릇을 치우며 물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