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하게 음료를 거절한뒤 창가 자리로 가서 팔짱을 끼고 근엄하게 생각하는 그녀는, 뭐라고 할까 학자로써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물론 외견상 귀여움이 느껴지는 것은 여전했지만....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금 궁금해지네. 부디 저 진지한 분위기로 고려하는 대상이 우리 카페에 대한 처벌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나는 서빙 한 뒤에 잠깐 자리를 떠나지 않고, 쟁반을 공손하게 든체로 그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어쩐지 엄격한 분위기와 각오를 풍기는 그녀가 어떠한 맛 평가를 내릴지, 솔직히 말해 엄청나게 신경쓰였기 때문이다. '이런 요리를 대접한 녀석은 누구냐 - !!' 하고 그릇을 뒤집어 엎기라도 한다면, 바로 옆에서 빠르게 무릎을 꿇을 각오를 해두던 참이었으나.....
다행히도, 합격이라는 것 같다. 무슨 시험이 있던 건진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위기를 넘긴 것 같아 한시름 놓은 나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긴장을 풀었다.
"그런가? 그럴지도....다만 그 애는 엄연히 말하자면 탐욕적인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해. 그냥 마음이 여리고, 서툴러서, 애써 허세를 부리며 잘해보려고 하지만 헛발을 짚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가 정말 사악하고 탐욕적인 성격이었으면, 솔직히 말해서 이런 카페에 정을 붙이고 일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와 함께 지내면서 느낀 점은....뭐랄까 자신만만하고 오만해보이는 첫 인상과는 다르게, 실제론 상당히 어리숙한 놈이라는 점이랄까.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본인도 그런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뭔가를 필사적으로 해보려는 그 허세가, 어쩐지 발버둥치며 노력하는 나를 보는 것 같아 친근감이 간다. 나는 쓰게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글러먹은 점이, 몇몇 사람들에겐 챙겨주고 싶어지는 걸지도 모르지."
여자친구인 하나미치야씨가 그를 좋아하는데에는, 그런 이유도 아마 적지 않게 들어가있지 않을까.
눈을 감은 채 파르페를 입에서 우물거리다가, 한 쪽 눈을 떠서 엉거주춤 서 있는 진화의 모습을 살폈다.
‘…… 왜 저렇게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거지?’
뭐, 자기와 관계 없는 일이니까. 하고 릴리는 맛을 느끼는 데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앗, 파르페 사이에 오는 당근 마카롱의 은은한 단맛이 펀치를 날려 주고 있어. 특이한 풍미 덕분에 파르페의 강렬한 단맛에도 지지 않는군.
“그런가……. 보물을 찾겠다며 의욕에 불탈 때는 그렇게 보이지 않기는 했지만.”
가까운 사람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릴리는 의욕이라는 것을 나쁘게 평가하지 않는다. 설령 정말로 천박한 것을 목적으로 하더라도, 목적이 없는 인간보다는 낫다. 하물며 돈쯤이야.
“…… 그래서 하루 씨도 빚을 갚겠다고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건가. 아니, 그건 그냥 그이가 워낙에 심성이 착해서인가.”
파르페 잔 깊이 숟가락을 꽂고 퍼올리자 크림과 시럽과 딸기가 뒤섞인 호화로운 한 숟갈이 되었다. 릴리는 곧바로 그걸 입에 넣는다. 릴리가 아는 카페 몽블랑의 사장의 모습은, 보물지도를 해독하고 나서 엄청나게 들떠하던 모습이나 바로 며칠 뒤 숙청기사가 되어 있었던 모습뿐이니까, 증언이 곧 그의 몽타주를 만들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탐욕스러운 놈인건 맞는 것 같다. 내가 너무 우호적으로 여겨주고 있었단걸 자각하면서, 나는 빠르게 평가를 수정 했다. 카페에 쓸 돈이 부족하다고 월급을 최대한 깎아먹으려는 주제에 그 돈으로 자신의 장난감을 구매한다거나, 새로운 인재를 원한다면서 일단 납치로 데려올 생각을 하는걸 보면 글러먹은 놈인건 확실하다.
"하루는 뭐.....착하기도 하고. 둘이 서로 친하기도 친한 것 같더라고."
하루도 사실 에릭에게 나름대로 마음의 빚이 있긴 하겠지. 자신이 자해 했던 사진이 한 때 에릭이 그녀를 다치게 한 것 마냥 퍼져 카페에도 그에게도 안좋은 소문이 돌게 했으니까. 다만 이런 사정을 남에게 함부로 퍼트리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적당히 얼머부렸다. 어쨌거나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네.
"..........응? 어.....나도 아까 말한 '챙겨주고 싶어진 사람' 중에 하나라서?"
놀라하면서 따지는 그녀를 보고, 나는 역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되묻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일하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 격렬한 반응에 오히려 내가 더 의아 해졌다.
역시는 역시다. 하루 씨를 노동착취하는 그 인간이 정상일 리가 없어. 세 번 불지옥 물약을 꺼낼 가능성이 약소하게나마 올라갔다. 물론 파르페를 한 숟가락씩 더 떠먹을 때마다 그 확률은 도로 낮아졌다.
“……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말이지…….”
자신이 미처 찾아보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켕기는 듯했다. 하루 자체도 릴리에게 이런저런 일들을 숨기고 있는 눈치였고. 숨긴다는 말은 곧 알려지기 싫다는 말이니 릴리도 관심을 품지는 않고 있었지만, 분명히 무언가가 있다는 것만큼은 심증으로 짐작하고 있기는 하였다.
그래도…… 신경써 무엇하랴. 릴리는 두 뺨 가득 파르페를 채우고 우물거리는 데 바빴다. 한참을 우물거리고 나서야 파르페가 목을 타고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크흠, 크흠, 실례……. 아니, 가디언이잖아?! 혹시 당신도 착취당하고 있거나 그런 거 아니야?”
꽤나 큰 목소리이긴 했지만 걱정이 제법 묻어나오는 말투였다. 아무래도, 사장에 대한 불신의 골이 상당히 깊은 것이겠지……. 무엇보다 그 너구리도 있고! 중국 요리하는 너구리!
그 때를 떠올리니 기가 막혀선 나는 드물게도 분노에 찬 목소리로 항의 했다. 본인 말로는 공격적 사업 개발 이라는데, 진짜 물리적으로 상대를 공격하면 어쩌자는 것인가. 나는 분명 에릭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옹호하는 발언도 많이 하지만, 결국 끝엔 이런 부분에 분을 터트리게 되는 것 같다.
"뭐어, 둘의 사이는 복잡한 것 같더라구. 더 정확히는....카사 알아? 하루의 여자친구. 에릭이 그 애와 깊은 관계거든."
어쩐지 내켜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왠지 속이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고민해 하다가.....말해도 괜찮을 것 같은 범위에서 조심스럽게 좀 더 정보를 제공했다. 에릭과 하루가 실컷 싸우고 치고 받은 원인은, 솔직히 말하자면 당사자들 외엔 아마도 내가 가장 잘 이해하고 있을 테니까. 둘의 관계도에는 카사라는 늑대와도 같은 여자애가 아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둘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든 지난번에 사태는, 그녀를 두고 공통분모가 겹친 두 사람의 다툼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학업에 지장가지 않는 선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매니저도 마찬가지로 학생이야? 점장도 학생이고. 그리고....착취....당할 뻔 한 적은 있지만."
팔짱을 끼곤 주변을 둘러보고, 요 근래 카페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생각해 본다음. 고개를 기울인다.
"이제와선 날 착취랍시고 괴롭게 할만큼의 권력이 점장에겐 없어. 수 많은 사고를 친 끝에, 내가 발언권을 압수해버렸거든."
솔직하게 말하자면 요 근래 카페 일하는 비중을 보건데 나, 다림씨, 춘덕이 셋 중 한명이라도 빠지면 이 카페는 망할 것이다. 그리고 슬슬 익숙해져서, 점장이 월급 감봉이니 뭐니 헛소리를 하면 방패로 후려쳐 정신차리게 만드는 노하우를 익혔다.
숟가락질을 멈추고 팔짱을 낀 채 이야기를 듣던 릴리는, 가만히 테이블 위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침묵했다. 릴리의 정신은 기억의 궁전에 있었다. 방금 들은 일들이 담겨 있는 파일을 든 채였다. 이 파일을 사건 목록에 추가해 놓는다면 릴리는 두뇌의 일부를 다치지 않는 한 그 정보를 결코 잊을 수 없게 된다.
…… 하지만 릴리는 그 파일을 세로로 찢어 바람에 날려 버렸다. 날아간 파일들은 궁전에 내리쬐는 햇빛에 반짝이더니, 새하얀 그대로 구름의 일부가 되듯 사라졌다. 기억해 두지 않기로 한 것이다.
하루가 이 일을 릴리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서만 감당하려 했다는 것은, 자기 고통을 오롯이 스스로 감내하기 위한 것. 그리고 릴리에게는 그 사건에 관여할 권리도, 하루의 삶에 참견할 자격도 없었다는 것. 생각해 보면 당연하게도, 릴리는 하루에게 있어 ‘남’이었다. 고로 더 이상 그들의 관계에 얽히려고 해서도 안 됐다. 그게 『예절』이니까다.
“…… 씁쓸하지만 잘된 일이군.”
이것은 그 사건이 아니라, 릴리가 방금 내린 결정에 대한 코멘트였다.
“말에는 무게가 1그램도 없지. 하지만 말을 빼앗긴 인간은 사나워지니까 조심해. 언젠가 악착같이 벌어 모은 돈으로 역습할지도 모르니까 주의를 기울이라는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