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한 소리에 단태는 지팡이를 손아귀에서 빙글 돌리고 다른 손으로는 귀를 틀어막았다. 그림자에게는 빛이 효과적이라는 건 가장 간단한 규칙이었고 다시 공격을 하기 위해 지팡이를 치켜들었을 때 패트로누스의 등장에 단태가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패트로누스에게 물어뜯기고 부적에 의해 괴상망측한 비명을 지르며 사라지는 그림자의 모습은 지팡이를 거두기 충분했다.
나오지 말아야할 것이 나왔고 단태는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시선을 움직였다. 무기 선생님의 절규는 시선을 그쪽으로 돌리기에 충분했고 단태는 돌아가는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파악하기를 멈췄다. 뿔이 없는 기린이 그곳에 있었다. "인간이 아니었나." 환상이 보여줬던 게 사실이었고 단태는 그것에 반응하지 못한 채 익숙한 주문이 들려오는 것에 웃음기를 없앴다.
"저번에도 그렇고, 저저번에도 그렇고."
이상하리만치 어른들만 공격하네. 얼굴을 한번 꾹 싸쥐었던 주단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암적색 눈동자가 선비탈을 쓴 현성이라는 남학생을 바라봤다.
"그래도 네 말에 동의는 한다. 너희 탈들만 아니면 아무 일 없이 졸업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제."
뚝, 하고 한번 더 끊어지는 것 같았다. 얼굴을 싸쥔 채로 단태는 몇번 더 험악한 욕설들을 짓씹어뱉다가 선비탈을 향해 지팡이를 휘둘렀다.
기세 좋게 웃던것도 잠시. 곧 그것의 기괴한 변화에 주양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갑자기 저게 왜 저래? 자신을 향한 시선에 비명마저 목 너머로 들어가버린 채. 그저 지팡이를 꾹 쥐고 반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섹튬셈프라에 의해서 공격할 기세가 꺾였다는 것과 혜향 교수와 무기 사감의 공격이 저 그림자를 완전히 소멸시켰다는 것.. 정도라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 아니. 잠깐만..."
이윽고 터져 나오는 상황들은 제정신을 부여잡기 힘들 만큼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우선. 차례대로, 주양의 시선은 먼저 무기 사감을 향했다. 보지 말라고 하면 더 보고싶어지는 게 인간의 본성.. 인 건 둘째치고, 처음부터 알게 모르게 줄곧 신경쓰고 있었으니까. 전에 그것과 나누었던 대화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빠른 시일이라는 게. 바로 오늘을 뜻하는 것이었어?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 이제서야 더더욱 실감이 된 채. 벙찐 시선은.. 크루시오를 읊은 쪽으로 스륵 돌아갔다.
같은 교복. 백궁 학생대표도 아는 사람. 그리고 그 학생이 꺼낸 건... 다름아닌 탈이었다. 크루시오를 쓴 건. 역시 저 학생인가. 말하는것으로 봐선 임페리오를 맞고 횡설수설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주인님의 명. 졸업할 땐 얌전히 있고 싶었는데. 그런 이야기들을 듣다 보니. 주양의 입꼬리가 점점 기이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 아아- 뭐부터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나...? 조용히 있고 싶었다면... 탈 따위. 빠개버리지 그랬어?!"
탈에게는 공격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지난 번. 한껏 느꼈던 치욕과 미처 다하지 못한 공격 마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설령 그때의 그 탈은 아니라고 해도, 탈들을 전부 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지금만큼은. 처음 보는 탈에게도 자비란 없었다. 그래. 지금이 바로 기회일지니. 침착하게 한숨을 내쉬고, 그와 정반대로 심하게 떨리는 지팡이를 쥔 손을 곧장 선비탈에게 겨누었다.
고막이 찢어질 것 같다. 그는 백정의 귀를 막아주곤 인상을 찌푸렸다. 그슨새는 혜향 교수의 작품이 아니고, 여기는 산이 아니라서 나올 리가 없다는 주장이 들렸다. 그러면 가능성은 한가지다. 또 탈의 소행인 것이다. 그는 다른 단말마에 고개를 돌렸다. 무기 사감의 몸에 금이 간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 무기 사감은 신수가 됐고, 고문 저주가 날아든다.
"뭐하자는 거지? 아즈카반에 가고 싶어서 안달이 났나?"
현궁의 학생이다! 그가 아주 잘 아는 학생이다. 목에 있던 로켓과 백정, 흰 머리카락을 가진 남성… 그는 당신을 보며 날카롭게 코웃음을 쳤다. 저 이기적인 녀석들! 누구는 졸업할 때까지 평화롭지 않길 바란 줄 아나보다!
"…양심이 있소?"
이렇게 나서면 이득이 되는 상황은 없다. 그는 생각에 잠긴다. 아즈카반도 솔직히 뒷배가 있으니 이렇게 나서는 것 아닌가. 어디까지 탈과 매구의 손이 뻗쳐있는 건가.
"자네, 누구는 졸업까지 무사하지 않길 바란 줄 아나보오? 그놈의 주인, 주인. 주인...대체 왜 주인이니 뭐니 하는 게요? 아직도 시대에 따라가지 못한게요? 전쟁에서 사라졌다면 암묵적인 패자. 살아있다면 도망친 겁쟁이 아니오?"
그는 선비탈을 쓰는 학생에게 지팡이를 겨누려다 거뒀다. 입가에 지팡이의 끝이 지그시 눌렸다. 매구와 그의 추종자는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처절한 사투를 본 가문은 인간을 신뢰하지 않고 환멸을 느꼈다. 그래서 문을 닫았다. 그는 인간을 다시 믿기로 했다. 그래서 문을 다시 열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 사람만 챙기면 될 것 같다! 그는 선비탈을 빤히 바라봤다.
"순혈만을 위한 세상은 무슨, 헛소리. 운 좋게 품종교배가 잘 된 머저리들이 모여서 으스대기는. 운도 실력이라 하게? 그럼 전쟁에선 운이 지지리도 안 따랐나보군. 좋은 품종이라도 운이 따르는 건 아닌가보오. 감히 의견을 내보오. 당신의 주인은 전쟁이 두려워 학생을 괴롭히는 것에 안달이 난 소인배 같소."
따르는 것도 이해가 안 되고 말이오. 내 말이 틀린가? 그는 지팡이를 겨눴다.
"툭하면 학생이나 교수를 건드리다 이번에는 물러난다, 이럴 줄은 몰랐다 나불대고 사라지지 않나. 전쟁을 일으키긴 두렵고, 학생은 만만하니 그러는 것 같소. 내 말이 틀렸다면 정당한 이유를 대보게. 매구가 굳이 왜 여기서 발악하지?"
공격하지 말래도 이미 해버렸는데. 뒤늦게 들려오는 말에 작게 중얼거리며 뒤를 보자 거대한 무언가가 휙 지나간다. 푸르스름한 빛을 띄고 있었으니 패트로누스였겠지. 그것이 지나가고 꽤나 큰 소리가 난 듯 싶다. 그림자로 보이는 무언가의 비명인가, 괴성인가. 그 소리를 뒤로 하고 그녀는 물러섰다. 한걸음, 두걸음. 조용히 물러나 주변을 살폈다.
방금 패트로누스의 주인인 혜향 교수 같고, 이게 의도한 상황이 아니란 것도 알겠고, 교수들의 얘기는 잘 모르겠고. 굴러가던 시선이 잠시 한 곳에 멈춘다. 비명을 지르는 무기 사감에게.
"아닐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런 모습일 줄은.
입학식 날 보았던 린을 닮은 신수의 모습에 잠시 눈길을 주다가 학생들 쪽을 본다. 그녀 외에는 별 일 없었나보다. 그녀도 멀쩡했지만.
그 직후 저주 주문이 들려 그 소리의 진원지로 고개를 돌리자 하늘색 머리의 남학생이 보였다. 아, 잘 알지는 못 하지만 그의 지인이라는 건 아는 사람이다. 그래. 저 학생도 수족이었구나. 옆에서 그가 학생의 이름을 부르는 걸 들으며 손아귀의 지팡이를 한바퀴 휙 돌린다.
"그슨대 따위에게 먹히기엔 현재가 너무 아쉬워서요.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네요."
현성이라 불린 학생을 향해 싱긋 웃으며 말하고 윤의 옆으로 가, 한 손에 잡혀있는 그의 손을 더 꼭 쥔다. 그리고 지팡이는 현성에게 향한 채 짧고 간결한 주문을 읊었다.
"봄바르다."
절단 주문은 아무래도 자신과 안 맞는 듯 하니 말이다. 시험삼아, 라는 느낌으로 날려보고 태연히 앞을 보고 있었지만.
다들 고생하셨어요..😭 누군가를 상처입히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정말이에요. 변명을 하자면 최근 진행을 쭉 훑어보면서 벨의 시점에서도 상황을 판단해봤어요. 윤이가 매구인 사실도 모르고, 보기에는 목적이 없는 것처럼 학원을 집요하게 노리면서 계속 위협을 가하니까 따졌을 것 같네요. 본인도 순혈이긴 하지만 순전히 운이 좋아서 됐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순혈주의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뿐더러 자신의 혈통을 오히려 저주스럽게 생각하다 보니 더 과격한 반응을 보였던 것 같아요. 혹시라도 상처 받았더라면 다시 한 번 사과드릴게요.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