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시지 않으셔도 알아요, 교수님들. 그런 느낌의 미소를 한껏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상이 교수든 아니든, 그리고 깐깐하든 유하든 일단 이렇게 걸고 넘어질만한 거리가 하나 생긴다면 주양은 절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지금 역시 포함되는 상황이었다.
"오호라...?"
패트로누스를 부른다는 말에 학구열에 불타 환호를 외치려던 주양의 기세가 한 풀 꺾였다. 행복한 상상? 즐거운 상상? 그런 게 있던가. 남의 기준에서 바라봤을 때. 자신에게는 남들이 행복이라고 표할 만한 감정 표현이 더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 덧없는 일을 쫓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잖아? 그래서 주양은 조금 더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했다. 제 입장에서. 충분히 행복하며 즐거운 일. 그런 일들이라면...
주양의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걸렸다. 어딘가 뒤틀리고 부자연스러운 미소였으나, 그것을 알아챌만한 사람은 없을테니 마음 놓고. 지금껏 제 입장에서 즐거운 일은 충분히 많았다. 허나. 역시 제일 짜릿하고 행복했으며 즐거웠던 일이라고 한다면 그 범위는 더더욱 좁혀지기 마련이다. 지팡이를 든 손으로 부드럽게 허공을 갈랐다. 그때의 그 전율을 다시 떠올리면서.
윤, 그의 옆으로 가자 조금 전까지 불만으로 뚱해진 표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풀어진다. 누가 참관을 하든 말든 그 한명만 있으면 전부 상관없어졌다. 그녀를 보며 지어주는 미소에 같은 미소로 화답하고 옆에 있으려는데 오늘은 왠일인지 먼저 손을 내밀어준다. 거기에 듣는 것만으로도 귀가 간질거리는 호칭까지. 기분이 좋아짐과 동시에 옆에서 떨어지지 말란 말이 일말의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겉으론 태연하게 그의 손을 잡곤 충격받은 백설을 향해 혀끝을 내밀었다 집어넣는다. 봐, 니가 백날 삑삑대봐야 이기는 건 나라구.
"선배 옆이 제 자린데, 어딜 가겠어요."
태연한 척 했지만 귀끝이 살짝 붉어진게 과연 보였을까. 싱긋 웃으며 말하고 잡은 손을 좀더 꼭 쥔다. 들은 말도 있고 하니 오늘은 무모하게 나서거나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오늘 수업 내용을 들으니 그 다짐은 더욱 확고해졌다. 패트로누스. 어둠과 죽음을 내쫓는 마법. 이 숲에서 이런 걸 한다는 건 뭔가 준비했다는 의미가 분명하다. 그리고 그건...
"......"
그녀는 잠시 교수진을 응시하다가 지팡이를 들었다. 일단 수업에 집중하는게 좋을 거 같았으니까. 뭐 그래도, 행복한 상상은 따로 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 그와 손을 잡고 있는 이 순간 자체가 행복인데 다른 무슨 상상을 한단 말인가. 그러니 그녀는 조용히 웃으며 주문을 읊었다.
"익스펙토패트로눔."
매끄러운 발음으로 나온 주문에 반응하듯 지팡이 끝에서 푸르스름한 연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안개처럼 사방으로 퍼지려던 그것은 꾸물거리며 형체를 이룬다. 그녀의 패밀리어를 닮은 고양이 같은 모습으로. 하지만 한바퀴 공중제비를 도는가 싶더니 크기도 모습도 바뀐다. 제법 큰 몸집에 날렵한 귀와 폭신한 꼬리를 가진, 그래, 한마리 여우였다. 그것은.
약간 불안정해 보이는 여우 패트로누스는 몇번 폴짝이다가 그녀의 어깨로 올라가 도도한 포즈를 잡는다. 그녀는 그걸 보고 키득거렸다. 마음에 든다는 듯이.
대다수의 학생들이 연기만 나오거나 실패하는 상황이었으니 그의 지팡이에서도 아무것도 안 나오는게 전혀 이상하진 않았다. 그녀가 만든 패트로누스도 금방 형체를 잃고 흐트러졌으니. 첫 시도에 이만큼 성공인게 운이 좋았던거지. 패트로누스가 사라진 뒤, 옆에서 어색하게 웃으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그를 보며 괜찮다는 듯 말해준다.
"잘 안 될 수도 있죠. 다시 해봐요. 선배."
다시 해본들 나오지 않으리란 걸 알면서,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어쩌면 되길 바라는 일말의 기대 같은게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찌되었든 그렇게 말하고 그녀 자신도 다시 주문을 읊었다.
"익스펙토 패트로눔."
좀전보다 자신감 담긴 주문에 이번엔 단박에 여우 패트로누스가 형성된다. 귀와 꼬리 끝이 살짝 흩날리는 걸 제외하면 완벽에 가까운 형상이다. 날렵하게 생긴 여우 패트로누스는 다시 공중을 폴짝폴짝 뛰어 그녀의 어깨에 앉는다. 쓰다듬어 달라는 듯 고개를 숙이기에 지팡이를 든 손끝으로 턱을 간질여주고, 주변을 힐끔 돌아본다. 과연 이번엔 어떨까.
그래도 자신만 실패한건 아니라는 점이 위안이 되어주었다. 하나하나 차근차근해보자. 레오는 눈을 감고 행복했던 기억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오래된 상자 속에서 보물을 꺼내듯 하나하나 꺼내 늘어놓으면서 이건 언제였고 저건 언제였고 하면서 하나하나 정리해나가고 있었다. 다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기억하는 것 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지는 기억들. 이정도면 충분하겠지.
" 익스펙토 - 패트로눔 - "
지팡이 끝에서 푸른 연기가 피어난다. 더, 더 집중하자. 레오는 행복했던 기억이라는 것을 다시 떠올렸다. 여기에 집착하게 되면 변질되어 버리니 그저 한 발자국 떨어져서 영화를 본다는 느낌으로. 입꼬리가 올라가고 푸른 연기는 푸르스름한 한 마리의 표범으로 변했다. 애니마구스인 자신과 똑닮은 그런녀석.
" 하하! 그래! 바로 이거지! 어때 새끼들아, 너네랑 급이 다르잖냐. 그치? "
금새 기고만장해진 레오는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큰 소리로 웃으며 자신이 만들어낸 패트로누스를 바라보았다. 패트로누스끼리 싸움 붙이면 어떻게 되려나.
"와, 우와! 저는 이번에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이걸 이렇게 깎으신단 말예요....?! 좋아요!"
차마 각오하는 게 좋을거라는 이야기는 꺼내지 못한 채 칼 교수님을 바라보았다. 이건 칼 교수님이 먼저 시작한 일이자, 먼저 내린 선전포고다. 자신이 한 말은 생각도 안 하고 그렇게 생각하며 주양은 에반스 교수님을 바라보며 눈을 찡긋였다. 겁 많은 우리 에반스 교수님은 안됐지만.. 다시 기숙사 점수를 복구해주진 않으셨으니. 방관자도 공동 타겟이다. 오늘부로 두 교수님과 전쟁을 선포한다. 소노루스 마법. 앞으로 열심히 연습해둬야지. 그렇게 혼자 쓸데없는 경쟁심을 붙이고 주양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한 손으로 입가를 슥 가렸다.
"후후.... 감히 제게 선전포고를 하시다니... 각오하시는게 좋을거예요, 교수님~!"
앞으로는 연애 대신 알려드립니다 같은 느낌의 인간 확성기가 될 생각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고개를 척 들었다. 어차피 자신에게 쌓아둔 기숙사 점수는 많았으니, 이렇게 된 이상 소모전을 치르는 수밖에. 누구 하나가 먼저 백기를 들지 않는 한 끝을 보지 않을 생각이었다. 다시 분위기도 딱 잡고. 지팡이를 가볍게 휘두르며 주문을 외웠다. 묘하게 목소리에 악바리가 담겨 있었다.
"익스펙토 패트로늄..!"
스멀스멀. 다시 연기가 피어오르나 싶더니, 지팡이 너머로 큼지막한 뭔가 소환되었다. 덩치가 큰 귀상어의 형상을 한 채. 지팡이 끝을 빠져나와 유유히 허공을 바닷물 속을 가르듯 유영하며, 제 머리 위에서 그 큰 몸체를 한 바퀴 휘감듯 헤엄치고는 다시 옆으로 내려앉는 것이다. 배틀크루저 준비 완료.. 가 아니고. 드디어 패트로누스 소환에 성공한 주양. 꽤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와.. 이. 이게 내 패트로누스..?"
눈으로 봐도 믿기지가 않았다. 이런 덩치가 소환될 줄은 몰랐는데. 놀라움 이후 드는 생각은 으쓱함이었다. 그래. 명색이 학생대표니까, 이런 상위 포식자는 뽑아줘야 제 맛이지. 그렇고 말고!
이건 권력남용이잖아요. 단태는 칼 교수님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항의하듯 중얼거리다가 이내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너무해 진짜. 중얼거리던 단태는 무기 선생님을 바라보다가 눈을 깜빡인 뒤 헤죽- 웃어보였다. "네 묻었네요. 잘생김이 묻으셨어요. 선생님~" 하는 뻔뻔하고 능청스러운 말을 재잘거리며 찡긋 윙크를 해보이고는 지팡이를 쥐었던 손을 잠깐 풀었다가 다시 고쳐쥐었다.
다시 해보자는 말에 하늘을 한번 바라보던 암적색 눈동자가 헛헛하고 건조하게 말라버렸지만 명확하게도 단태의 얼굴에는 능글맞은 웃음이 머물렀다. "익스펙토패트로눔." 단태는 속삭이는 것처럼 주문을 다시 외웠고 푸르스름한 안개가 퍼져나가다가 이내 하나의 형체를 만들어낸다. 훅, 하고 달려드는 것처럼 안개에서 순식간에 형체를 이룬 것이 바닥에 착지했다. 단태의 다리 근처를 한바퀴 돌던 그것은 곧 멈춰서서 어금니를 드러냈다.
머리와 몸체는 완벽했지만 뒷다리와 꼬리는 여전히 불안정하게 안개로 흩어지는 푸른 이리가 단태의 주변을 서성거린다.
첫 시도에서 성공할 것이라고는 당연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무엇이 문제일까. 행복하고 즐거운 상상은, 결국 상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인 걸까. 스베타는 눈을 감고서 지팡이를 다시 잡아 쥐었다. 숨을 고르고서, 천천히 떠올린다. 검은 필름 뒤편에 있는 자신의 기억을.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서. 스베타는 이내 입을 열고서 주문을 왼다.
표범으로 변신해서 이 패트로누스와 함께 달린다면 그것만한 장관이 없겠지. 레오는 그렇게 생각하며 배시시 미소를 짓고는 잣느이 패트로누스를 바라보았다. 불만이라면 자신의 패트로누스가 자신의 라이벌의 것보다 크기가 작았다는 점이었다. 뭔가 자존심이 상해 레오는 일부러 등을 돌리고 자기 패트로누스를 동물 다루듯 만지작거렸다.
" 좋~아! 실전이다 이거지. 가라! 그러니까.. 패트로.. 음... "
멋진 이름을 붙여주고싶은데. 레오는 지팡이로 척 가리키고는 음.. 음.. 하고 중얼거리다가 뭔가 생각났다는듯이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단태는 자신을 바라보는 현궁의 6학년 학생대표인 발렌타인의 시선을 느꼈는지 이내 그쪽에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서 외면했다. 난 잘못한 거 없는걸 하는 태도였다. 곧, 더 차감되고 싶냐는 칼 교수님의 말에 "악마.."하고 중얼거리며 혀를 쯧 하고 차고는 자신의 다리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이리를 바라봤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행복한 상상으로 만들어낼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지. 단태의 시선이 에반스 교수님에게 향했다. 왜 놀라시는거지? 이리를 처음 보시는 건가. 늑대와 비슷하지만 늑대와는 다른 맹수가 이리었다. 그리고 단태는 늑대보다 이리를 더 선호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어금니를 드러내고 소리없이 으르렁거리는 이리를 보던 단태의 시선이 다시 움직였다. 여전히 건조한 눈빛이다.
"깜짝이야."
가방에서 툭 튀어나온 생물체의 모습에 단태는 푸른 이리의 머리에 손을 잠시 얹었다가 "하고 싶은대로 해라." 툭 던지듯 담담하게 중얼거리며 손을 떼어냈다.
"으으...! 제. 제가 어떻게 나와도 감당하실 수 있.. 다면요 라고 하진 않을게요! 좋아요 좋아. 여기까지..! 점수 차감 멈춰~!!"
자고로 저런 사람들이 제일 심심하면서도 무서운 법이다. 어떤 감정 동요도 내비치지 않은 채로 딱딱 자신이 할 말만을 하는 사람. 그런 부류의 사람은 이야기는 이어갈수 있을지언정 자신이 어떻게 이겨먹기 꽤 어렵고 곤란하다. 그렇다면 일단은 물러서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학생대표라고는 해도 자신이 교수님을 이길 수 없었다. 괜한 투쟁심은 접어두도록 할까.
"힝. 나중에 곤 사감님한테 다 일러바쳐야지.."
입이 방정이다, 입이. 더 이야기를 했다면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것까지 다 떠벌리고 다니겠다며 선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르나 거기까지 갔다간 자신의 기숙사 점수가 마치 월마다 빠져나가는 무언가처럼 착실히 깎여나가게 될 것만 같았다. 일단 지금은 패트로누스에게 신경쓰기로 할까.
제 옆에 배를 깔고 내려온 커다란 귀상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여유만만한 웃음을 흘리고. 급이 다르다고 호언장담하는 제 숙적을 향해서도 가소롭다는 듯 헹 하고 코웃음을 흘리곤 가방 속에서 나온 무언가에게 시선이 꽂혔다. 맙소사. 저게 대체 뭐람.
"와~.. 겁 먹을리가 없죠! 가서 단번에 씹어 동강내버리렴!"
마치 머글 세계에서 고급 외제차 한 대를 뽑은 차주의 기분이 되어서는 자신있게 지팡이를 홱 휘둘러 지시를 내렸다. 아아. 짜릿하다. 이런 쾌감은 늘 기분 좋게 다가오기 마련인 법이다.
재시도는 성공적이었는지, 이번엔 다들 성공해서 각자의 패트로누스가 옆에 생겨났다. 늑대, 아니 다른건가. 저기는 상어, 또 저기는...개에 표범. 그녀의 눈에 드는 것은 역시나 안면이 있는 사람의 것 뿐이다. 그 끝에 드는 이는 손을 잡은 그 였지만, 그녀의 눈에 비치는 건 여전히 아무것도 만들지 못한 그 뿐이었다.
"괜찮아요. 선배. 제가 있으니까."
없다고 한들 걱정할 필요 없겠지만.
이후 그녀는 에반스 교수의 지시에 혜향 교수가 꺼낸 생물을 향해 패트로누스를 보냈다.
"Go. 리키."
그새 이름까지 지어준 걸 보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보다. 그녀의 신호를 받은 여우가 잽싸게 앞으로 튀어나간다.
칼 교수는 냉담했다. 분홍색은 따뜻하다고들 하지만 그의 눈은 아주 차가웠다. 진정서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에반스 교수의 제지를 보고 그는 이번만 넘어가기로 했다. 저 교수가 기절한다면 더 큰 문제가 불거진다. 그건 몹시 귀찮은 일이다. 그의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지팡이를 쥔다. 그리고 잠금쇠가
뭘 보고 겁을 먹으면 안 된다는 건지 모르겠다. 도롱이를 뒤집어 쓴 외발의 생물. 그는 생물을 빤히 바라보다 지팡이를 겨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