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둠의 마법 방어술인가. 단태는 수업 일정에 적혀있는 수업을 보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이라고 하면 역시 전에 했던 금지된 저주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이번에는 실습이 있나보다. 흐응- 하는 소리를 내며 주단태는 걸음을 옮겼다. 지금까지 학원에 있던 일들을 알고 있을텐데도 나주 본가에서는 그 어떤 편지도 오지 않고 있었다. 며칠 전에 왔던 내용은 천성과 본성을 가로지르는 규칙.이라는 문장만 있을 뿐이었다.
그 내용에 단태는 썩,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럴듯하게 숨기고 금지된 숲에 도착해서 에반스 교수님과 칼 교수님, 무기 선생님, 혜향 교수님까지 있는 모습에 눈썹 한쪽을 휙- 하고 치켜올렸다. 실습인 것치고는 무기 선생님까지 있는 게 의외라고 생각했다. 아니 일단은 전에 혜향 교수님하고 금지된 숲으로 갔을 때도 무기 선생님이 동행했었지? 혜향 교수님을 힐끗 바라보던 붉은 암적색 눈동자가 참관이라는 무기 선생님, 칼 교수님을 번갈아 응시했을 것이다. "참관이요?" 하고 단태는 느물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늘 수업이 어둠의 마법 방어술, 그것도 또 지정인 걸 보고 몇몇 학생들이 투덜대는 소리가 들린다. 이럴거면 처음부터 지정 수업으로 하지 뭐하러 그랬냐는 말도 나온다. 그녀도 그 의견엔 동의한다. 수업을 골라 듣는다는 장점이 하나 박살난 셈이었으니까. 그러나 불만은 속으로만 삼키고, 천천히 걸어 금지된 숲으로 간다. 일개 학생이 투덜거려봐야 학원은 바뀌지 않는다. 학생인 이상 따르지 않으면 자신에게 손해일 뿐이었다.
한 손에 지팡이를 들고 장난감마냥 달랑달랑 흔들면서 숲으로 가는 길, 시선을 슥 굴리자 이제 익숙한 면면들이 여럿 보였다. 잿빛 학생들 사이에서 선명히 자신의 색을 내고 있는 그들은 최소 한번은 마주쳤거나 대화를 나눈 이들이다. 그게 여러번 반복되다보니 한번 훑는 걸로도 제법 눈에 띄게 되었다. 흑, 청, 적 등등 갖은 색들이 스며든 전경은 덜 맞춘 퍼즐 같다. 틀을 엎어 전부 잿빛으로 만들면 어떨까 싶은.
상념 몇가닥을 주워넘기다보니 어느새 금지된 숲에 다다랐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윤의 옆으로 가려다가 좀 많은 교수진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어쩐지, 그런 소릴 하더라니. 칼 교수가 참관이라며 무기 사감과 함께 있었다. 거기다 에반스 교수 옆엔 혜향 교수까지. 칫! 불쾌함이 담아 혀를 차곤 윤을 찾아 그 옆으로 간다.
서늘한 밤공기. 뭔가 오늘은 이래저래 쎄한 느낌이었다. 전에 들었던 신탁도 있고. 그동안 듣고 본 것도 있고. 주양의 시선이 에반스 교수님에게서 벗어나 잠시 칼 교수와 무기 사감님을 향했다.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곧 시선을 거두었으나.. 역시. 무기 사감님을 볼 때는 괜히 불안한 감정이 스쳐지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실습이라~ 역시 실습이 좋죠! 음음~ 근데! 에반스 교수님이랑 칼 교수님~ 조금 더. 좀 더 가까이! 떨어져있기만 하면 그림이 안 좋다구요~?"
이윽고 불안함을 떨쳐내기 위해 자연스럽게 웃으며 시선을 에반스 교수님쪽으로 향하게 했다. 이쯤 되면 의심이 아닌 확신 단계다. 걀혼 반지. 칼 교수님에게도 있고 에반스 교수님에게도 있지. 그렇다는 건 불보듯 뻔한 일이다.
둘은 참관. 허나. 수업을 지켜보기만 하는 입장은 아니겠지. 혜향 교수님이야 수업 도움을 위해 오셨다고는 해도.. 역시 단순한 참관만 하진 않을 것 같았다. 오늘은 뭔가 있다. 허나, 아직 그것이 뭔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추측만을 남긴 채 조용히 입을 닫았다.
하루에 수업 하나. 비효율적이다. 여러가지를 듣는 다른 학교와 달리 제한이 있다는 건 명백한 단점이었다. 그는 이 단점을 두고 툴툴거리곤 했지만, 여타 다른 커리큘럼과 달리 원하는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 작은 위안을 얻곤 했다. 하지만 그 위안도 오늘처럼 강제적인 수업이 있다는 것에 산산조각이 났다.
"말도 안돼."
비효율적이다. 오늘은 미루고 미루던 머글 연구 수업을 들을까 했는데 그마저도 할 수가 없다. 그는 팔을 뻗었다. 달링은 본 척도 하지 않고 지렁이 젤리에 열중한다. 오늘 그가 깃털을 빗어주다 실수로 한 가닥을 뽑았기 때문이다. 그가 손을 조금 더 가까이 들이밀자 아예 고개를 돌려버린다.
"오, 제발." "Nope!" "어쩜 이리 똑똑하기도 한지. 화가 풀리면 금지된 숲 근처로 날아오거라. 알겠지?" "Nope!"
우리 달링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천사같으며 아름다운 까마귀다. 그는 팔을 다른 쪽으로 뻗으며 손을 내밀었다.
"아가, 같이 갈 건가?"
거절한다면 그는 순순히 지팡이를 들고 기숙사 밖으로 나갈 것이다. 문을 열자 오늘의 밤공기는 서늘하다. 꼭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다. 불길한 예감은 늘 현실이 된다.
무기 사감, 혜향 교수, 칼 교수다. 그는 혜향 교수를 보곤 눈웃음을 짓는다. 어림짐작한 정체도 그렇지만, 이렇게 많은 교사진이 있는 걸 보니 오늘 수업은 위험한 것이겠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생각이 들었다.
"위험한 수업인가봅니다."
실습에 도움, 거기다 참관까지 한다니. 오늘은 비효율적인 수업은 아니라는 점이 한줄기 위안이 되는 것 같다.
MA라는 단어에 붉은 암적색 눈동자가 무기 선생님에게 향했다. 아니 향한 게 아니라 꽂히듯이 갖다 박혔다. 유리병이 만들어낸 환상들이 밀어닥치는 파도에서 봤던 환상 중 하나가 떠올랐다. "그런거라면야-" 데굴, 단태는 시선을 굴렸고 이번에는 칼 교수님과 에반스 교수님에게 향했다.
"걱정이시라면 누굴..."
단짝의 질문이 던져지고 단태의 말은 안으로 쏙 들어갔다. 두 교수님의 반응을 보아하니 칼 교수님이 누굴 걱정한건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런거구나? 샐쭉하고 단태의 눈이 가늘어졌다. 요즘 학원에 핑크빛이 감돌고 있는 것 같다니까. 나주 본가의 사람들이 듣는다면 기함을 토하다 못해, 경악할 만한 생각을 하면서 단태는 에반스 교수님의 말대로 자신의 지팡이를 꺼냈다.
"부럽다~ 에반스 교수님~"
하는 말은 덤이었다. 수업은 패트로누스를 부르는 수업이었다. 디멘터와 사람을 죽이는 위험한 생물을 내쫒는 주문. 단태는 잠시 지팡이를 쥐고 뛰어다니는 푸른 토끼를 보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자신의 지팡이를 보다가 끌어올려서 팔찌를 응시한다.
행복하고 즐거운 상상을 하라고? 주문을 쉽게 뱉을 수 없는지 단태는 몇번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줬다가 빼기를 반복한다. 뿌드득,하고 지팡이의 단단한 몸체를 쥔 손 안에서 금방이라도 지팡이가 부러질 기세였다. 무슨 상상을 해야할까. 행복하고 즐거운 상상이라니. 너무 포괄적이라서 콕 찝어서 할수가 없었다.
아즈카반에 있다는 그 녀석들이지. 행복한 기억을 빨아먹어 사람을 살아있는 시체로 만들어버린다는 녀석들. 악명이라면 익히 들어 알고있다. 그 디멘터의 키스라는 것을 받게되면 점차 기력이 빠지고 멍하게 되어 심할 경우 죽게된다는 것. 그런 녀석들이 지키고 있는 아즈카반이라면 어떤 곳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다음에 버니를 만나게 되면 물어보던가 해야지.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레오는 지팡이를 꺼내들고서서 주문을 외웠다.
" 행복한 기억.. 행복한 기억..... 행복했던 기억이라... "
한 두개가 아닌데. 레오는 머릿속에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집에서의 생일파티,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던 일,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날, 애니마구스가 되어 동물로 변신할 수 있게 된 날, 저녁을 먹으려고 가족이 다 같이 둘러앉았던 일, 사랑하는 어머니의 맛있었던 요리와 항상 즐거웠던 아버지의 농담까지. 피식, 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혜향 교수는 시선을 피한다. 역시 예상이 들어맞는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교직에 앉을 정도면 신임이 되는 사람이란 건데, 대체 왜 매구를 추종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오."
디멘터를 상대하는 마법이다! 거기다 위험한 생물까지. 그만큼 까다로운 마법이다. 조건을 듣던 그가 가볍게 몸을 떨었다. 행복하고 즐거운 상상을 하라니. 처음부터 난관이다. 그는 눈을 바닥에 고정하고 생각에 잠겼다.
행복했던 기억이라.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불행한 삶을 살진 않았지만 행복함을 상상하면 그 이후의 필연적일 불행함을 떠올리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엉클 톰과의 추억을 떠올리다 그가 아즈카반에 끌려가는 생각이 들었다. 생일을 떠올린다. 죽어라 일만 한 기억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떠올렸다. 그는 어깨 위의 백정을 한 번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