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을 하나밖에 못 쓴다는게 아쉬운 부분이었다. 의외로 만지지도 못할정도로 뜨거울 줄 알았으나 그렇진 않았다는게 신기하다는 점 정도일까. 부적에 대한 이야기와 부리에 대한 이야기를 귀담아 들은 레오는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고 가만히 머리나, 가슴털이나, 날개 따위의 부분을 쓰다듬었다.
" ...안녕? "
수줍다면 수줍게 건넨 인사. 더 오래 있고 싶었으나 이런 몸으로 사람이 몰리는 곳은 무리다. 레오는 인상을 살짝 찡그리고 '야, 비켜' 하고 말하며 인파를 헤치고 제 자리로 돌아와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아마 당분간은 계속 이럴텐데 힘들겠다는 생각만이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새의 감촉은 평범했다. 화기(火氣)와 관련된 새이니 뜨겁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 이 정도로도 넋나간 상태를 조금이나마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동물을 쓰다듬는 건 꽤 마음에 평온을 가져다줘서……. 그렇지만 혜향의 설명을 듣고 조금 만지는 정도로만 끝내기로 했다. 다르게 말하면 부적이 떨어졌을 땐 공격할 수도 있다는 소리다.
"불을 내는 것 외에 다른 능력은 없나요?"
그냥 라쉬나 마음껏 만져야지…. 그는 몰려든 학생들에게 적당히 자리 비켜줄 타이밍을 재기 시작했다.
뒷사람의 딸리는 이해력을 이해해주길. 필방이 부적 그 자체로 쓰이는 줄 알았던 것이다. 주양은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니까. 얌전히 억제시켜놓는다는 그런 뜻이겠구나.
"오호라~ 그럼. 안심해도 괜찮겠네요! 우리 필방씨는~ 깃털도 참 고와~?"
부리에 손만 대지 않으면 괜찮을것이라는 교수님의 말에 주양은 기다렸다는 듯 머리부터 슬슬 쓸어주었다. 제 패밀리어도 새였으니 새 다루는 건 간단한 일.. 이라고 생각하고, 청을 다루듯 쓰다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손가락으로 턱을 긁긁해주듯이 얼굴 아래의 깃털도 매만지고. 등도 쓰다듬어주고. 날개도 한번씩 들춰보고. 슬쩍 끌어안기도 해 보고. 순수한 호기심을 여과 없이 드러내면서 주양은 절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오. 이거 청 쓰다듬을때랑은 좀 다르네~ 외다리 신사님, 맨날 한쪽 다리로만 서 있으면 안 불편.. 푸흐흨ㅋ..."
그렇게 필방에게 꽂아넣던 시선을 살짝 돌린 주양은 반사적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맙소사. 왜 저 새는 단짝의 머리위에 올라가서 저렇게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단 말인가. 뭔가,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지는것만 같았다.
생각이 많으니 눈에 새들을 만지는 학생들이 보여도 그다지 인식되지 않는다. 몇몇 유별난, 아니, 알고 있는 면면들은 스치듯 알아보기는 했다. 선배 셋에 동급생 한명, 그리고... 인식은 한 순간이다. 한명 한명 시선으로 스친 뒤에는 다시 시선을 돌려 필방을 유심히 응시하고 있었다. 잠깐이지만 관심이 갔던게 필방이었으니.
혼자서는 답을 구할 수 없는 물음을 계속 굴려가던 중 들려온 그의 목소리에 시선을 돌려 그를 보았다. 한순간 그의 물음이 뭘 가리키는 걸까 싶었지만, 곧 그것이 가리키는게 하나라는 걸 깨닫는다. 직전에 그가 했던 말. 소리없이 눈을 휘어 웃음지은 그녀는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그야 궁금하죠. 안 들었으면 모를까."
주변에 들리진 않으면서 그에겐 들릴만한 소리로 말하고 태연한 척 한다. 그러다 유가 단태의 머리 위에서 특이한 포즈를 취했을 때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단태의 표정이 당혹스러운 것도 제법 눈에 띄었으니까.
"으흐흥, 그렇지만 우리 달링들~ 이야기하는 것도 그렇고 타이밍도 그렇고 너~무 잘 맞아서 굉장히 친해보이는걸? 왜 그런 말도 있잖아? 미운 정도 정이라구~"
단태는 이어지는 것처럼 대화하는 레오와 주양을 보다가 느물느물한 목소리로 능청스럽게 중얼거린다. 낄낄- 하는 웃음소리가 목소리의 뒤를 이었다. 둘이 아무리 부정한다고 하더라도 단태의 눈에는 그 모습이 사이가 좋은 친구 사이로 보이는 모습이다. 미움에서 시작되는 것도 정임은 분명했다. 정말로 그게 맞다고 생각하는 건가. "싫은 게 아니라면 이 호칭도 자주 써줄게. 허니버니~"
한명은 호적수라고 하고, 또 한명은 아파서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얼굴로 가감없이 험한 말로 상대를 지칭한다. 이게- 라이벌이라는 건가. 그래도 사이는 정말 좋아보이는데. 한번만 더 그런 이야기를 하면 볼을 꼬집어버리겠다는 주양의 말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단태가 입을 딱 다문 뒤 고개를 좌우로 저어보였다. 그 바람에 기대고 있던 고개가 흔들리고 단태는 주양의 어깨에 뺨을 문지르게 된다. 곧 흔들던 고개를 들고 레오를 물끄러미 바라봤지만.
"달링, 자기야~ 레오. 정신차려. 조금만 더 가면 되니까 정신을 잃어버리면 안돼? 많이 아프고 힘들겠지만 조금만 참을까. 우리 레오?"
오래 버티기 힘들다는 말과 병동과의 거리가 꽤 되기 때문인지 주단태는 주양에게 매달리듯이 끌어안고 있던 팔을 풀고 옆으로 돌아가더니 주양에게 눈짓을 해보였다. "미안하다면 병동까지만 정신 차리고 있자." 그 모습이 꼭, 어린 아이에게 하는 것과 똑같았다. 어르고, 달래고. 익숙하다는 듯이 주양에게 안겨 있는 레오의 뺨을 몇번 보듬어주는 행동 모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