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오늘도 당과점에서 부인이 시켜두었던 초콜릿을 들고 올 시간이다. 달콤하고 맛있는 초콜릿. 몰래 하나 쏙 빼먹어버린다면 분명 신뢰도가 깎이고 말겠지. 그럼에도 은근슬쩍 집어먹고 싶어지는 것은, 그저 가벼운 장난기 탓이었다. 주양은 고개를 세게 저으며 잡생각을 떨쳐버렸다. 전에 애 울음소리 듣고 홀려서 숲으로 들어간것의 후유증이 아직 남아있나. 가끔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날이 있었다. 물론 언제는 안 그랬겠냐만은.
>>348 끄아아악 그치만 나도 마지막을.. 마지막 체력을 불태우던 중이었...! (파르르)(추욱)(?) 어나더 레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그냥 잠이 심하게 없는것에 가까운 쪽이라서 어나더 레벨이라기엔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싶고..! :p 후후 아무튼 두려움에 떨어라 렝주~! (???)
더위는 죽기보다 싫은 그녀가 다시 물을 얻으러 현궁으로 가는데는 큰 이유가 없었다. 그냥 마땅히 할게 없으니까, 였다. 별궁에 틀어박혀 역사서를 뒤적이거나 그를 찾아가 놀아달라 하는 선택지도 있긴 했지만. 그 전에 좀 움직이고 싶어서 말이다. 몸이 살짝 뻐근하달까 뻑뻑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기에.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현궁까지 찾아간 건 좋은데 이번엔 기타도 안 들고 왔고 뭘 해야겠지 모르겠단 거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 현궁의 후원으로 장소를 옮겨달라 말한다. 가는 길에 한가해보이는 현궁 학생 하나를 붙잡아 도우미로 데려와, 후원 한쪽 끝에 그 학생을 세워두고 손을 아래로 해서 도움닫기를 부탁한다.
"자, 그럼."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심호흡을 한 뒤 묘기를 선보인다. 핸드스프링, 일명 덤블링을 휙 하고 세바퀴를 돌아 손받침을 하고 있던 학생의 앞까지 가서, 그 손을 사뿐 딛고 공중 백덤블링으로 한바퀴 돈 뒤 안정적인 자세로 착지한다. 마법사가 아니라 전문 체조인 같은 묘기를 선보인 뒤 깔끔하게 인사까지 하고 웃으며 말한다.
오늘의 초콜릿 상자는 한 박스. 그렇다는 것은 부인에게 좀 더 빠르게 가져다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전처럼 맨 위에 있던 초콜릿 박스가 행여 떨어지기라도 할 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니까. 당과점 밖으로 나갈 때 까지는 여유를 유지하던 주양은, 이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고 학교를 향해 전력질주하기 시작했다. 바람을 가르며 내달리는 기분은 언제 느껴도 상쾌한 것이었다.
"짜잔~ 부인. 오늘도 요청하신 초콜릿 가져왔답니다! 늘 신속하고 정확한 주양퀵을 이용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데헷. 하며 한쪽 다리를 살짝 접어들고 마찬가지로 팔도 살짝 접어서 든 채로, 선으로 브이자를 만들어 눈 옆에 가져다대며 세상 발랄한 포즈를 내보였다. 아. 이 엉성하면서도 의미없는 머글 따라하기. 의외로 재미있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말이 끝나고 이어지는 주양과 레오의 말을 따라 단태의 눈이 슬그머니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생각해왔는데 이 둘은 사이가 좋은걸까. 좋지 않은걸까. 말하는 걸 보니 사이가 나쁜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지? 친한건가? "-저런, 여보야." 이리저리 움직이던 눈이 주양에게 향했고 단태는 느물느물한 특유의 목소리로 능청스럽게 낯간지러운 호칭을 뱉었다.
"기껏해야 멍이 든 것 뿐인걸? 병동까지 가는 건 지나친 처사라고 생각해? 이 정도는 반나절 푹 자고 일어나면 멀쩡해질거라구?"
재잘재잘. 능글맞고 능청스럽게 대꾸하면서 단태는 레오의 눈 앞에서 흔들어보이던 두개의 손가락을 거둬들인다. "좋아. 자기야~ 다행히도 눈을 다친 것 같지는 않네. 예쁜 눈이 다치기라도 했으면 내 마음이 많이 아팠을거야." 기계적인 대답에도 불구하고 꽤 만족스러운 기색을 한껏 드러내며 단태의 손이 레오의 머리를 쓰다듬던 걸 멈추고 흉터가 있는 눈 부근을 쓸어주고는 떨어졌다. 임페리우스 저주에 당한 기억이 나질 않는 단태는 주양이 자신을 어떻게 도발했는지, 레오가 자신의 앞을 막아서자마자 그 목을 어떤 식으로 쥐었는지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그냥 단태에게는 심하게 다친 친구와 그 친구를 부축하고 있는 또다른 친구만이 보일 뿐이었다. 주양이 걸음을 멈추자 단태도 같이 걸음을 멈춘 건 필연적이였다. 어정쩡한 자세로 재잘재잘 떠들며 부축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팔로 번쩍 레오를 안아드는 모습을 보고 단태가 헤죽 웃었다. 세상에, 자기 멋져. 라는 말은 덤이었다. 자신도 이 둘을 병동으로 데려갈 때 그랬었다는 건 아예 기억 너머로 사라지다못해 소멸된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 Kitty, 나까지 안고 가면 너무 힘들테니까 지금은 그냥- 이렇게 하고 갈게."
어깨에 둘렀던 팔에 힘이 들어가며 단태는 주양의 등에 매달리는 것처럼 위치를 바꿨다. 그 사이 레오에게서 비명이 터져나왔고 암적색 눈동자는 그 비명에 반응이라도 하는 것마냥 옮겨졌다. 주양에게 팔을 두르고 매달려 있던 단태가 그 어깨에 턱을 대고 레오를 말끄러미 응시하다가 샐쭉- 가늘게 떴다. "레오." 단태는 덮듯이 레오의 머리 위에 다시 손을 올리려하며 꽤 다정다감하게 이름을 불렀다. 주양에게 안아들려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레오, 주단태의 목소리는 레오의 목소리와 다르게 정반대의 느낌이었다.
"그건 안된다는 거, 스스로도 잘 알고 있잖아. 위로라도 해주고 싶은데 내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 말이야."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모습을 목전에 둔 사람의 태도라고 할 수 없었다. 걱정도 아니고 위로는 더더욱 아닌 말을 재잘재잘거리며 주양의 어깨에 올린 고개를 슬그머니 기울여서 레오를 바라보는 주단태의 행동은 그러했다. 애초에 위로는 생각도 없었다는 양 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