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으로 가는 결정은 접어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자기야. 지금- 호랑이가 눈 앞에 나타났거든."
필연적으로 단태는 현궁의 키가 큰 남학생 엘로프와 같은 자리에 있었고, 엘로프의 질문에 대해 답을 내려줄 수 있었다. 그의 지팡이가 영 엉뚱한 곳으로 향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암암리에 가라앉은 암적색 눈동자로 각시탈이 짐승의 입마개를 푸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며 예의 느물느물거리는 목소리로 능청스레 중얼거린 단태가 지팡이를 쥔 엘로프의 손 아래에 자신의 손을 받치면서 각시탈과 양반탈이 있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준다. 이쪽- 이라고 알려주는 것처럼. "아마 숲으로 가기 전에 저 호랑이가 자기를 향해 달려들 것 같은걸. 나도 자신은 없지만 방향은 잡아줄게. 달링." 주단태의 목소리가 평소처럼 느물거렸다. 뻔뻔하리만치 능청스럽고 능글맞은 목소리로 속삭이고 단태는 주변을 둘러본다. 내가 아무리 주문을 못 맞춘다고 해도 이건 좀 너무 심하잖아. 이번에도 못맞추면 저 인간을 먹어치우는 저 짐승이랑 같이 뒹굴던지 해야겠다.
"이번에 안맞으면 짐승은 짐승으로 상대해야겠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예쁜 자기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하고 덧붙히는 말 뒤에 낄낄거리는 웃음이 따라붙으며 단태는 지팡이를 각시탈에게 겨냥했다.
말이 막혔다. 무어라고 말을 하고 싶었는데 말이 나오지 않는다. 혀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더 정확하려나.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어 움직이지 않는 답답한 느낌이다. 토할것같아. 몸이 그렇게 된 와중에도 레오의 머리는 제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주변 상황을 확실히 인지하고 확실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일단은 안심되는건 사실이었다. 누군가가 붙어주었으니까. 그리고 눈을 잠깐 감았다 떴을때 레오는 보았다. 자신을 노리고 날아오는 짐승을.
" !!! ...!!!! "
알려줘야하는데. 말이 나오지 않아. 레오는 있는 힘껏 발렌타인을 밀쳐냈다. 나도 나쁜 사람은 못되는걸까. 그리고 두 눈을 뜨고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도망쳐야하는데, 너무 늦은데다가 몸이 제대로 움직이질 않아서. 그래서 레오는 가만히 두 눈을 뜨고 멍청하다면 멍청하게 또 당하고 말았다. 날카로운 발톱에 채이는 느낌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르겠지. 앞판이 갈려나가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크게 한 번을 채이고 뒤로 날아가 몇 번을 굴렀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제야 자기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가까이 왔으니 그 점은 좋은것일지도.
" ...... "
아직도 말이 나오지 않아. 마법의 영향인지, 아니면 말할 힘마저도 남아있지 않은건지 모르겠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힘이 없다.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추웠다. 왜인지 모르게 너무도 추웠다. 레오는 가만히 누워 눈을 내려 자기 몸을 내려다보았다. 난장판이네. 정말 난장판이야. 앞판 뿐만 아니라 등이 따가운 것을 보면 뒷쪽도 제대로 긁힌 모양이다. 레오는 툭, 하고 편하다면 편하게 누웠다. 말도 할 수 없고 몸을 움직일 힘도 없다. 눈물이 난다. 이제 그만두고 싶어.
썩 맘에 들지 않는 상황이다. 빗맞고. 막히고. 지팡이에 마가 끼었나? 그렇다고 가까이서 대들기에는 애매한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왠 이상한 짐승까지 끼어들었다. 놓았던 이성이 어느정도 제자리를 찾고 주양은 입맛을 다셨다. 이대로 간다면 분명 큰 손해인데. 조금이나마 손해를 덜 보려면 피하는게 좋을까?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피하기는 싫었다.
그리고 주양의 시선이 그제서야 양반에게서 벗어나 각시탈을 향했다. 보자. 지금은 저쪽도 만만치 않게 귀찮을 것 같은데. 마냥 한 쪽에만 고정포대마냥 주문을 사격하며 시간을 낭비하는건 비효율적이다. 그렇다면 한번. 지금을 틈타서.
"아비스."
한 마리. 그리고 여러 마리. 마법으로 소환한 새떼를 적당히 모아서 마치 전선 앞 지휘관마냥 정갈한 몸짓으로 양반을 향하려던 지팡이를 각시에게 향하는 페이크를 선보였다.
영 알 수 없는 상황에 고개를 돌려 탈들과 학생들을 번갈아보다가 본 적 없는 동물을 하나 발견한다. 그리고 그때서야 주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에 들어온다. 아, 이것 참 난리도 아니네. 앞만 보지 말고 뒤도 봤어야 하나, 싶지만 내가 왜? 라는 생각이 뒤를 잇는다. 일개 개인인 자신이 할 수 있는게 뭐 그리 많겠느냔 말이다. 그러니 이제 슬슬빠져볼까 싶었다. 때마침 이상한 짐승이 이쪽에도 등장했으니 말이다.
"실력에 자신이 없으니까 펫도 데려온 거에요? 오, 이런, 이름값 못 하는 분들."
킥! 강렬한 도발성 어조가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오고 금방이라도 도망갈 듯 몸을 뒤로 물린다. 그러나 그건 페이크였는지 몸을 무른 만큼 앞으로 달려들어 들어 메치기를 시전한다. 대상은 양반탈이었다.
"천인공노할 죄인 씨. 이름이 멜리스셨군요. 멜리스-리델. 잘 기억해드릴게요."
.dice 1 2. = 1
타격의 성공 여부는 따지지 않고 뒤로 훌쩍 뛰어 곡예라도 하듯 탈들에게서 멀어진다. 그대로 사뿐히 뛰어 그의 곁으로 돌아가 그를 끌어안고 흐흥, 하고 웃는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와, 어딜 가도 망하겠네. 그래도 여기가 정신 차린 사람이 많으니까 덜 망할 것 같긴 해."
따지고 보면 나이 성년으로 먹은 범죄자들이 14~19살 청소년들을 금지된 마법과 불법(으로 추정되는) 마법생물을 데리고 진심으로 상대하려는 상황이 더 어이없는 거 아니냐, 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는 아직 제 목숨이 귀했다. 속으로 바득바득 화를 참으며 침착하려 한다. 불안이 속을 차고 올라온다. 눈앞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한 공포와, 동시에 무지로 인한 미지가 모순적인 안도감을 가져다준다. 그나마 가벼이 농이라도 던지려니 조금이나마 기분이 나아진 것만 같다. 이런 건 참 알고 싶지 않았는데.
잠시 뭔가에 세게 얻어맞은 감각과 동시에 어지러운 기운이 감돈다. 그러고보니 저번에 뭐시기랑 이상한 저주 때문에 약을 한사발 들이킨 감각을 느꼈었나. 그는 아직도 얼얼한 머리에 감각에 이를 바드득바드득 갈아제끼면서 지팡이를 집어들었다. 아, 그래도 촉각은 남아있구나? 그런데 주먹을 쓰기에는 내 눈이 지금 좀 뒤집힌 감각이 남아있어서..... 일단은.....
"오푸그노 징크스(Oppugno Jinx)"
이거 맞지? 그는 주변에 있던 아직 잠들지 않은 수리부엉이 3마리를 끌어들이는데 성공한다. 아 그래도 아직 주문정도는 외울수 있다, 이거지? 그래, 그래. 아직은 괜찮아 아직은, 그는 일단은 감각을 어느정도 보완하기 위해 한마리는 자신의 주변을 맴돌게 하는 한편 나머지 두마리는 각시탈을 쓴 사람을 향해 발톱을 휘두르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