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공부를 하면서 여러가지를 정리하고 사연을 읽어보던 와중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처음에는 착각이겠거니 하고 조용히 무시하고 있었는데 어느순간부터 갑자기 그 급박한 소리에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갑자기 아기 울음소리라니 어딘가 부자연스러웠지만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방문을 나섰다.
누굴까. 이렇게 급하게 나를 부르는 귀여운 갓난아이는?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평소의 자신이 아닌것만 같은 붕 뜬 기분 속. 이성이 배제된 몸뚱아리는 본능만이 남아 맴돌고 있었다. 늘상 한결같은. 더워 보이는 그 옷차림을 유지하고 마스크를 써 얼굴을 덮으며, 청을 어깨에 올린 채 주양은 기숙사를 나섰다. 중간에 불길함을 감지한 청이 먼저 푸드득 날아가 기숙사로 돌아가 버렸으나. 주양은 청을 다시 부르지 않고, 그저 청이 날아간 자리만 바라보다 히죽 눈웃음을 지었다. 몹쓸 새대가리. 나지막한 욕설이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 자, 아가야~ 어디 있니? 울지만 말고 한번 나와보렴~"
웃어야지, 나처럼? 마스크를 쓴 채라 미소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저 본능대로, 나오는 대로 말을 내뱉으며 울음소리를 뒤쫓아 갈 뿐이었다.
처음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든 생각은 무섭다거나 무슨 소리일까 하는 호기심보다는 짜증이었다. 저렇게 울고있는데 가만히 두고있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고 주변에 분명 누군가 있을텐데 아무런 케어도 해주지 않는다는 것도 짜증이 일었다. 그도 그럴게, 레오는 오늘도 몰래 기숙사를 빠져나와 용서받을 수 없는 저주를 연습했으니까. 확실히, 날이 갈수록 실력이 느는 느낌이었다. 레오는 집중도 안돼고 하니 기숙사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 다들 어디가는거야? "
무언가에 홀린듯 밖으로 나가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았고 붙잡아 세워도 무시하고 걸어나갔다. 뭔가에 홀린듯한 느낌. 레오는 고개를 한 차례 갸웃했다. 나도 모르는사이에 무슨 이벤트라도 하는걸까 아니면 수업의 일환인걸까. 레오는 지나가던 학생의 어깨를 잡고 붙잡아 세웠다.
" 야, 어디가는거냐고 묻잖아. "
대답을 듣지도 못했는데 레오는 뒤에서 걸어나오는 이들에게 채여 넘어지고 말았다.
" 이런 씨.. 어떤 새끼야!! 야! 너! 사람을 쳤으면.. 아, 또! 이 새끼들이 단체로 쳐돌았나 야! 이리와! 쳐죽여줄테니까 이리오라고!! "
당연히 시비가 걸리는 것이라고, 당연히 무시당한 거라고 생각한 레오는 달려들어 온 몸으로 들이받고 주먹을 내리꽂으려했다. '네가 자초한 일이니 맞고 정신차려' 라고 말하면서. 그리고 주먹이 꽂히기 전에 주변을 보았고 단순히 수업이라기엔 너무 많은 학생들이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저 방향은. 금지된 숲이잖아. 레오는 순간 자신까지 멍해져 내리꽂던 주먹을 거뒀고 툭 하고 밀쳐나 주저앉았다.
" Scheiße.... "
잡아야한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이라도. 잡아세우는게 불가능 하다면 억지로라도 못가게 만들어야지. 레오는 지팡이를 꺼내들곤 걸어가는 이들을 향해 닥치는대로 마법을 난사했다.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까.
편지를 읽을 시간이었다. 그는 환장할 표정을 짓는다. 산넘어 산이고, 고통 넘어 고통이다. 오늘은 과연 어떤 편지로 내 속을 뒤집어 놓으실까! 기숙사 방에서 불 붙이지 못하는 담배를 입에 물고 이리굴리고 저리굴리기만 반복하던 그의 고개가 순간 툭, 하고 꺾였다. 울음 소리 때문이다. 그의 탁한 경계가 더 탁해질 찰나 높은 매 울음과 함께 고통이 스몄다. 손등이 쪼여 얕은 생채기가 나고, 정신이 맑아졌다. 그는 백정을 한 번 보고는 편지를 아무렇지 않게 던져둔다. 쓸데없이 빠른 눈치가 빛을 발한다. 개수작이군. 그가 씹어뱉고 창문을 본다.
오. 오늘은 어떤 일이 나를 만성 위염과 편두통으로 인도할까. 그는 지팡이를 챙기고 팔을 든다. 기숙사 문을 열어 밖으로 향한다.
"이리 온, 아가. 그리고 달링, 내 피앙세. 편지는 내 라온에서 사람을 쓰마. 오늘은 본가로 가서 잔뜩 예쁨 받고 오려무나."
달링이 먼저 저 멀리 날아가버린다. 음, 배은망덕한 내 사랑. 그는 차라리 달링이 가버려서 안심이라 생각했다. 오늘은 뭔가 좋지 않은 일이 가득할 것 같았기에.
지독하게 들려오는 그건 마치 부르는 소리와 같았다. 착각할 뻔했다. 조카는 저렇게 울지 않는데. 그리고 아이의 울음 소리가 그쳤다. 그제서야, 작게 욕설을 중얼거리면서 주변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편지를 보내기 위해 꺼냈던 양피지가 엉망이 되어 있는 걸 발견하고 그걸 양손으로 뭉개낸 거지만. 서럽고, 급하게 찾는 그 울음 소리가 그치자 주단태는 아직 먹먹하게 귓바퀴 안에서 울려대는 것 같은 착각에 구겼던 양피지를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손바닥 전체로 귀를 문지르면서 펼쳐져 있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암적색 눈동자가 샐쭉하게 가늘어진다. 판단하기 전에 현궁에서 나가려는 학생 하나를 향해 주문을 외운다. "스투페파이." 기절 주문을 망설임 없이 외웠다.
"이건 또 무슨 일이람?"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으니, 어쩔 수가 있나. 그 사이를 못참고 자신을 지나쳐서 가려는 현궁 학생의 뒷덜미를 홱 낚아채듯이 잡아 붙들었을 것이다. 방향은.. 숲인가. 전부터 느끼는 건데 저 숲에는 뭐가 단단히 낀 것 같다니까.
…학원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릴 일이 있나? 자연스럽게 일상의 순간을 파고들기 시작한 괴이한 소리에 그는 다른 무엇보다 불길함을 먼저 느꼈다. 이미 앞으로 일어날 '어떤 일'을 경계하고 있어왔던 참이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이 앞으로 시작될 고난의 첫걸음이 되라라는 것을 직감했다.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오래 기다려도 안 돌아오면 시끄럽게 울고 물건 부숴도 돼. 어떻게든 사람을 불러. 아니면 문을 박살내서라도 나가서 도와줄 사람을 찾아줘."
그 말을 남기고 그는 라쉬를 남기고 문을 닫아버렸다. 불운이 그득그득 낀 유언 같은 소리에 닫힌 문 저편에서 발톱 긁는 소리가 들렸지만, "콜로포터스." 잠금 마법까지 건 문을 쉽게 열지는 못하리라. 유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으니 유사시엔 열 수 있겠지. 함께 휘말리는 건 지난번의 크루시오 사건만으로 족했다.
이제 문제는 수상한 일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다. 당장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부터가 문제였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미 밖으로 나온 학생들은 상태가 좋지 않은 듯했다. 불러도 묵묵부답, 단지 앞으로만 걸어가니……. 때마침 잘 된 일인가? 그는 제 곁을 지나가는 학생 하나를 붙잡은 채 그들이 향하는 방향을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