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그가 움직이자 무게중심을 잃을뻔 했다는 것인지 그가 아주 잠깐 휘청인다. 하지만 원체 갈고닦은 몸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그는 금새 무게 중심을 잡으면서 자신의 등을 적시는 뜨뜻미지근한 액체가 굳어가는 느낌에 인상을 찡그린다. 피가 몸을 더럽혀서가 아니었다. 피는 굳는 속도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데 이미 자신의 몸에 묻은 피가 굳어간다는 건 그만큼 시간이 지났다는 것, 그 상황을 인지하자마자 사태가 심각하다는걸 떠올린다. 하지만 그 말속에 담긴 뼈가 담긴 것을 아는걸까, 제정신이 아닌 그였기에 그 속내가 전부 나옴을 알고 있는걸까.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한다.
"결국은 모두 선택이니까요, 저희 가문의 황금천칭은 언제나 그 무게를 재기 위함이지만, 그렇기엔 저는 반푼이니까요. 아직까지도 무엇이 그릇된 것이고 무엇이 제대로 된 것이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저는 그저 아버지를 동경하는 반푼이, 철딱서니 없는 어리석은 인간입니다."
하지만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다. 시궁창에 굴러떨어져 쥐가 파먹어버려 시체를 남기지 못하더라도, 누군가가 정성스레 수의로 감싸 자신의 장례를 치르더라도, 그 무게는 모두 똑같았다. 그 무게를 잘 알기에 그는 그저 발렌타인의 즐거운 웃음소리에 작게 미소를 지어보일 뿐이었다. 어차피 자신이라는 인간은 그러한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그런 그의 한기어린 찬사에 그는 천천히 입을 연다.
"아무리 자기 본성을 숨기고 살아가려고 해도.... 저는 제가 생각해도 웃음이 나올 정도의 어린 아이입니다. 과대 평가는 감사합니다만.... 그런 찬사를 들을 정도로 제가 가치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너라고 부르면 되겠다는 말에 알겠다고 대답하면서도 속으로 조금 생각해본다. 사람 부르는 말만 반말로 바꾸고 나머지는 그대로 존대하면…… 영 이상하지 않나. 세간에는 반존대 말투라는 게 있다지만 그는 그런 속성을 절로 깨달을만큼 취향에 밝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초면부터 대뜸 반말을 쓰기엔 그는 제 쪽에서 다가가는 거리감을 좁히는 데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는 결심했다. 여태까지 했던 것처럼 최대한 지칭을 피하고 말해보자고. 서로의 존심과 난감함이 비장하게 얽혀 아무런 결과도 나오지 않은 셈이었지만 둘 모두 그것을 알 길이 없었다.
"얘가 이래보여도 의젓해서 괜찮아요. 혼자 방방거리는 건 이렇게 풀어줄 때만 그렇고, 제가 잡고 있을 때는 참거든요. 가끔 떼쓰거나 장난칠 때도 있지만 강아지가 그럴 수도 있는 거죠. 너무 심한 것도 아니고, 잘못한 게 있으면 스스로 반성도 해요."
그리고 성격도 좋고 착하고 사람 좋아하고 똑똑하고 얌전하고 건강하고 밥도 잘 먹고 알아서 다 잘하고… 주절주절… 왱알왱알……. 그 이후로 이어진 말들을 요약하면 이랬다. 조곤조곤 차분하게 말해서 그렇지 대충 들어봐도 주책맞을 정도로 칭찬 일색이다. 이쯤되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지점이 되었을 것이다. 이 인간… 콩깍지가 제대로 씌인 게 아닐까? 관심 좋아하는 라쉬마저도 자기 칭찬을 듣다 못해 끔벅끔벅 눈을 감기 시작했다. 라쉬가 주양에게 흘끗 눈짓했다.
'멈춰….'
그런 의미에서 때마침 이어진 주양의 리액션은 적절했다. 그가 웃으며 라쉬를 놓아주고, 라쉬는 잔뜩 흥분했던 기운이 조금 빠진 기색으로 슬슬 걸어서 주양의 옆에 휙 기대 드러누웠다. 북실북실한 털이 드러난 맨살을 마구 간지럽힌다.
"저도 더 했다간 무리하게 될 것 같으니까 그만하는 걸로 해요, 그럼."
그도 멋없이 웃고는 앉은 자세에 조금 더 힘을 뺀다. 무릎을 당겨 올리고 그 위에 팔을 가볍게 걸쳐둔다. 몰아쳤던 시작에 비해 싱거운 결말이었지만 둘 모두 만족하니 된 일이었다. 그래, 일단은 쉬러 나온 날이었으니. ……일단은 그랬지. 애초에 그 계기부터도 좋지 못했지만 말이다. 장난질로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현실의 고난이 뒤늦게 그의 뒤통수를 열렬하게 때렸다. 그는 앉은 자세에서 한쪽 팔로 머리를 괴고는, 주양이 있을 곳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갑자기 목소리가 영 맥빠진다.
당신은 휘청이고 그것은 무엇이 재밌는지 깔깔 웃는다. 낭랑한 웃음소리를 낼 줄도 아는 자였나? 언제부터 이리 웃지 못하였는 지는 침묵하도록 한다. 깊이 들어가 무엇이 좋겠는가. 피가 굳어 부스러기가 조금씩 떨어진다. 발렌타인의 가면을 잃고 언더테이커 가문의 가주라는 얼굴을 드러낸 그것이 이 상황을 즐겼다. 어쩌면 죽음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기뻐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것은 당신에게 다시금 속삭였다. 그것이 참이니?
"죽기 직전까지 자신에 대해 깨닫지도 못한 자가 아주 많은데 너는 깨달았지 않니. 으응, 그래. 아가야. 그것만으로도 너는 다른 것이란다. 훨씬 관속의 모습이 기대되는 것."
과연 어떨까. 사람들은 경륜이 지혜이며 세월이 지혜일것이라 입이 닳도록 떠들어댄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초연히 굴다 무릎을 꿇는다. 제발 살려달라고. 어리석게도 자신을 깨닫지 못하고 오만방자히 살다 죽는 자를 숱하게 봤다. 그런데 이 눈앞에, 깨달은 자가 있지 않나. 과연 오를 수 있을 것인가? 죽음 앞에서 당신은 빌지 않고 안온히 관에 안치될 것인가? 오! 그것은 다시금 뺨을 부빈다. 업혀있기 때문에 당신의 어깨에 뺨을 한 번 부비고 목덜미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나직히 웃었다.
"나의 찬사를 듣는 것이 어디 쉬운줄 아느냐. 겸허히 받아들이렴. 너처럼 겸손한 척 굴다 겸손에 잡아먹힌 아이가 아주 많단다. 가끔은 오만을 벗으로 삼아도 아주 좋단다."
겸손 말고 다른것에 먼저 먹히기 싫으면 얌전히 받아들이렴. 그것이 피로 축여졌던 입술을 가볍게 당신의 목가에 대었다 떼려 한다. "음, 역겨운 맥동과 삶이란. 정말 싫어라." 하며 푸스스 웃는 것이 진정한 미치광이가 아니겠는가. 절제하는 삶, 고요한 현궁의 사신. 그 속의 방탕하고, 오만하며, 향락을 추구하고, 죽음을 숭상하는 까마귀. 시들기 전 가장 찬란한 꽃.
그것이 눈을 굴린다. 한기, 현궁..아, 나의 또 다른 집. 얼음 호수가 있을 방향으로 그의 방이 있다. 구석 자리의 혼자 있는 그 방. 그가 손가락을 가볍게 들어 가리킨다.
어..랸이랑 벨이랑...벨이가 백정이에게...못된 걸 배웠어요...🙄 ((그게 아니에요)) 농담이고 출혈이랑 두통으로 정신이 나간 상태라 분간을 제대로 못하고 있답니다. 아마 랸이를 저승길 안내자로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그래서 아 드디어 해방이다! 하고 좋아서 저러는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