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웃음에 샐쭉 눈을 가늘게 뜬 채 단태가 헤죽 웃는다. 능청스럽고 뻔뻔하게 한손을 자신의 가슴 위에 올린 뒤, 어깨를 으쓱였다. "당신 말대로 나도 꽤 잘생겼죠? 칭찬 고마워요. 나도 잘 알고 있어요~" 느물느물한 목소리로 재잘거린 뒤 단태는 농담이라는 양 숨죽여서 낄낄 웃었다. 말하는 걸 싫어한다는 남자의 말에 단태는 잠깐 남자를 바라봤다. 아이~ 하는 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알려주면 안돼요? 궁금한데~ 재잘거리며 덧붙히는 목소리는 진담과 거리가 좀 멀어보였다.
"음악이라면 어떤 음악이요? 그쪽한테 관심 많아서 물어보는거니까 대답해줄 수 있어요? 응?"
지근거리까지 바짝 다가간 단태가 남자에게 치근덕거리며 한 말이었다. 평소처럼 능청스럽고 능글맞게 뻔뻔스럽다. 그러다가 남자의 이어지는 말에 눈을 깜빡이는 건 당연했다. 지금 나한테 귀엽다고 한거야? 세상에- 귀엽다고? "음! 조금 부끄럽네요." 전혀 안부끄러운 얼굴로 중얼거리고 이상형을 고민했다. 그런거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아니 그 전에 이상형 자체를 염두에 둔 적이 없다. 그야 그렇지 않은가. 연애는 사치라는 둥 같은 생각은 아니지만. 그딴 거 생각할 시간 없었으니까. "그럼 태민 오라버니라고 부르면 되나? 한번도 안부르다보니 좀 어색하네. 그럼 술 마셔요. 나는 앞에서 무알콜 막걸리 같이 마셔줄게~"
같이 가도 되냐는 물음도 없이 단태는 그의 두루마기를 잡고 주막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우뚝 멈췄다. 아, 하는 탄식이 새었다.
그는 섹튬셈프라를 사용한 뒤 알아서 도망쳤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선을 느낀 그가 눈을 급하게 굴린다. 오, 당신. 하필이면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그와 당신은 상극이다. 그는 본성을 경박함으로 포장하는 것을 꺼리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속에 무언가를 숨기고 교묘하게 숨어 농락하지 않은가. 저번의 일도 그의 신경을 자극했는데, 이번에도 당신이 나타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당신이 또 속을 긁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지 못했다. 두통은 갈수록 심해졌고, 이젠 제정신을 가누는 것도 힘들다. 흐려진 정신 사이로 그가 당신을 향해 눈을 흘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지켜보는 당신의 시선은 용과 같으나 서양의 용과 동양의 용은 다른 법이다. 그의 시선에서 당신이 악일지 선일지는 모른다. 아니, 당신이 타인이 보더라도 선일지언정 그는 어떨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는 끝까지 닫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꺼내지 아니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알려봤자 좋을 일 없는 이야기, 공감따위 바라지 않는 고통… 우리는 길을 걷되 평행선을 걷는다.
"네게 무슨 이득이 있다고."
본성은 그런것이다. 당신은 등용문에 오르는 용의 본성을 가졌다면 그는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는 본성을 가진 것이다. 지극히 오만하고, 예민한 본성을. 마치 죽음을 인지한 자에게만 나타난다는 세스트랄처럼. 그가 미간을 좁힌다. 코에서 흐른 피가 턱을 타고 흐르고, 멎을 기미는 없다. 그가 다시금 묻는다.
"바라는 것이라도 있나보지?"
그가 입술을 비틀어 날카롭게 웃는다. 당신의 손을 바라보던 그는 비틀거리기만 할 뿐, 일어나지도 못한다. 손을 죽어도 뻗지 않겠다는 듯 이를 악 문다.
"…손 대지 마."
내게 정을 보이지도 말고 감정을 보이지 말라는 은연의 뜻 사이로, 그는 또 시야가 점멸됐는지 비틀거리곤 결국 손을 잡았다. 다시금 욕설이 치민다. Fxxk. 그는 당신을 노려보듯 하며 낮게 입술을 달싹였다.
"이득 따위는 바라지 않습니다. 제가 여기 서있는 이유는 단 하나, 남자의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용, 이전에 남자라고 말한다. 회색의 옷을 즐겨 입던 아버지가 항상 하시는 말씀이었다. 마법사도, 머글도 되지 못한 반푼이 혼혈이라고는 하지만 50 평생 길을 걸어오며 잊지 않은 단 한가지의 길, 그것은 본인이 남자라는 것, 어린 그의 뇌리에 박힌채 그에게 많은 길을 제시한 그것이 지금까지의 리안을 지탱하는 것이었다.
"그대로 손을 잡고 일어서시는겁니다. 결국 일어서는 것은, 발렌타인 형님의 의지니까요."
이를 갈아붙이며 자신을 대하는 발렌타인의 모습에 그는 천천히 그가 놓칠거 같은 지팡이를 나머지 한손으로 이용해 지팡이를 쥐어준다음 그대로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한다. 아주 근접한 거리, 그가 마음만 먹으면 아주 약간의 힘만으로도 움직여서 그의 숨통을 끊어버릴 수 있으리라, 아무리 그래도 아까전의 마법의 위력을 봤을때 충분히 자신을 죽일수 있는 거리, 하지만 그는 전혀 자신의 목숨따위 아깝지 않았다. 그 의지만 있다면 언제나 웃으며 죽음을 받아들일수 있는게 남자니까.
"원하신다면, 여기서 제 목숨을 거둬가시도록 하십시요. 원망은 하지 않겠습니다. 존중하도록 하지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편안하면서도 진중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딱딱한 어조였지만 여전히 그에게는, 그 특유의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는가, 라고 묻는다면 여러가지를 대답할 그였으리라.
"일부러 이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원래 사람—머글, 마법사를 모두 포함해서—은 서로 반목하고 이해하며 그렇게 지내는것이니까요. 모든 것은 순리에 따르는 겁니다."
그렇게 발렌타인의 말에 답변한 그가 천천히 그를 데리고 좀더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움직인다. 발렌타인을 배려해서, 눈에 띄는 상황을 최대한 배제시키는 행동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