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의 거리. 언제나의 인파. 지나가는 사람들. 나와는 관계 없는 행인들.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자리를 잡고 기타를 조율한다. 지나가다 나를 쳐다보고 가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그 자리에 서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고, 무엇인가를 위한 것도 아니다.
그저, 나의 마음이 시키는 일을 원이 풀릴 때까지 할 뿐이니까.
나는 수많은 인파들 사이의 작은 공간에서,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기타를 잡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참견할 수 없는 나의 세계. 고치를 만드는 애벌레처럼 스스로의 세계의 틀어박혀, 바깥을 향해 노래부른다.
"날개와 날아가는 햇살에 어제까지의 시간을 풀어두면
눈부신 창 너머로 낯선 세계가
아지랑이와 같이 반짝일 때 추억과 같은 그리움이 치밀어 올라 언제든지, 그렇구나.
그 누구도 닿지 못한 하늘은 변함없는 나의 작은 꿈 퍼져만 가 이대로, 쭈욱 나의 날개와 함께 날아가. 날개에 싣고서........."
곡을 마치고 나니 멈춰선 몇몇의 사람들이 보인다. 흔한 일이다. 평소 같으면 귀여운 여자 아이 하나 낚아 재미를 봤을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그럴만한 기분도 아니다. 슬슬 돌아갈까, 하고 생각하는 와중에-
물론! 빈틈을 찾을 수 있으면 찾으리라는 건 사실이지만…… 노래하는 그를 보았을 때 릴리는 어떤 빈틈도 찾아내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릴리가 놀릴 수 있음직한 빈틈은 말이다. 더구나 이번에 빈틈을 잡혀서 머리가 폭발한 팝콘 기계처럼 된 것은 릴리 쪽이었고.
“…… 오늘도 어린애 같네, 가쉬 씨.”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는 그렇게나 진지해 보였는데……. 릴리는 어쩌다가 저런 미소년의 몸에 저런 영혼이 들어갔는지를 진심으로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그의 내면에서 어떤 무시무시한 의심이 오고 갔는지는 그다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아니─ 뭐─ 감정이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 적은……! 잠깐. 그래, 좋아. 그 조건으로 가자구.”
어처구니를 잃을 뻔했던 릴리는 갑작스레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씨익 웃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뜬금없이 승부를 제안해 온다면 이쪽이야 고마운 일이었다. 표정이 그렇게까지 다채로운 성격도 아니었을뿐더러, 정 안 되면 입 안의 침을 안면 마비성 신경독으로 바꾸기라도 하면 될 일이고……!
“승부야! 갑자기 당신이 엄청 웃긴 짓을 하거나 그런 게 아닌 이상에야, 당연히 내가 이기겠지만!”
네가 애늙은이 같은거야. 하고 덧붙이면서 그녀의 비숑프리제와 같은 머리를 콩, 하고 검지로 누루듯 톡 쳤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귀염성 없는 꼬마다. 정말로. 저번에는 큰 정신을 갖고 있는 것 아닐까 하고 감탄했지만 취소다. 그냥 애늙은이일 뿐이야! 나의 머릿속은 이제 저 애늙은이에서 어떻게 애 같은 모습을 뽑아낼 수 있을까 하는 쪽으로 강력하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의외로 쉽게도 내 제의를 승낙했다. 오냐, 내 연주가 그렇게나 형편 없었다 이거지? 네 감정을 움직이지도 못 할 정도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언제나 스위치가 들어가면 돌변하는 나지만, 지금은 스위치가 들어간게 아니라 아예 회로가 타들어갈 정도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애늙은이같은 모습 뒤에 꼭꼭 숨겨진 어린애 같은 모습을 드러내주마.
릴리는 확실히 자신이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야 복면가왕도 아니고, 노래에 그렇게 큰 리액션을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런데 애초에 남을 괴롭히는 것이 큰 취미도 아닌 릴리가 왜 굳이 아까운 시간을 들이며 이 내기를 승낙힀을까? 자, 여기서 오렐리 샤르티에의 속마음을 들어 보자.
‘안 들려줄 거야.’
그렇구나. 하여튼 릴리는 어떤 꿍꿍이를 품은 채로 그를 뒤따라 갔다.
“하─ 하─? 그러─시─겠다?”
억지로 웃고 있는 얼굴이 부들부들 떨린다. 대놓고 애 취급이야?! 오냐, 잡아 주마. 손을 아주 꽈아아아아악 잡아 비틀어 주마! 바키에 나오는 것처럼! “그러─자? 하하?” 하고 다가가서, 의념으로 악력을 강화하여 그의 손을 꼭 붙잡았다. 문제는 의념을 통한 근력 강화 실력이 형편없어서 그냥 꼭 붙잡은 것 이상의 감촉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지만.
설마 자기를 숙녀라고 생각하는건가? 정말로? 무리잖아, 그런 작고 ㄱ...꼬맹이같은 몸을 하고선 말이지! 나는 시원하게 대폭소를 터트렸다. 생각해보면 굳이 승부라고 할 것도 없는 것에 승낙한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이유는 어찌되든 상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나는 꿈에 관한 것은 싹 잊고서 어떻게 하면 이 꼬맹이를 골탕먹일 수 있을까 하는 즐거움과 두근거림이 가득해지기 시작했다.
손이라도 잡아줄까, 라는 말에 얼굴을 붉히며 어떻게 거절할까 싶었는데, 그녀의 반응은 의외였다. 처음에 빠알개진 얼굴로 부들거리는 것까지 예상하던 반응이었는데, 진짜로 잡을줄은, 진짜 몰랐다. 그녀는 분노를 꾹꾹 눌러담은 목소리로 그러자고 말하며 나의 손을 아주 강하게 - 아마 릴리의 입장에서 - 잡아왔다. 잡은 손은, 작긴 했지만, 따뜻하고, 무엇보다 이렇게 강하게 잡아올줄은 몰랐다. 손이라도 비틀려는건가 싶었는데, 그정도의 힘은 아니었고, 그냥 아이가 부모의 손을 꼭 잡는 정도의 힘이었다.
"지, 진짜 잡는거냐? 아니, 싫다는건 아니고. 그, 사람 많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그런거라고 하자고."
별로 이런 것 까지 놀릴 정도로 세심하지 못한 사람은 아니다. 그래. 키가 작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이러다가 헤어지기라도 하면 귀찮고. - 왠지 내 머릿속에 가디언 칩으로 다시 연락해서 만나는 것은 들어있지 않았다. 그저 지금 이대로 떨어지면, 귀찮으니까. 응. - 그녀의 손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잡고 내가 떠올린 '경기장' 으로 그녀를 인도했다. 앞서 가는 내 얼굴, 안 보이겠지? 나 감기기운이라도 있나? 갑자기 얼굴에서 열기가 느껴진다. 여자 손을 잡는 것은 그저 평소의 일이고, 그렇다고 이런 꼬맹이 손을 잡았다고 내가 부끄러워 할리가 없잖아. 그냥, 좀 놀라서 그런거다. 흐흥, 이렇게 해서 경기 시작 전에 내 감정을 어클어둘 생각이겠지? 그런데에 질 내가 아니라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 사실 할 말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다. - 그녀를 '경기장' 으로 안내했다. '경기장' 이라곤 말 했지만, 사실 내가 자주 낮잠을 자러 오는 곳이다. 강가 근처라 가만히 앉아 있으면 강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대로에서 떨어져 있어 사람의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 그런 곳. 거기에 수풀들 사이에 감춰져 있어 일부러 누가 찾아다니지 않으면 찾기 어려운 그런 장소였다. 요컨데, 꼬마들의 비밀기지 같은 곳이랄까. 거기에 큰 나무도 한 그루 있어 그 나무에 등을 기대로 자는 것은 여간 기분좋은 일이 아니니까.
생각해보니까, 여기에 누군가를 데려온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만난 그 누구도 여길 데려오진 않았다. 뭐애초에 이 학원도에 온지 얼마 되진 않았다고 해도 만난 여성은 꽤 됐었으니까. 하지만 이런데 데려올 생각은 하지 못했다. 조금, 다르다고 해야할까.
아무튼 그녀의 손을 잡고 그 숲속 작은 비밀기지와 같은 공터에 도착한 뒤에도 왜 데려왔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탓에 한동안 손을 놓지 못했다.
"으아아아아!"
나는 그제서야 계속 꼬옥 하고 손을 잡고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고 비명을 지르며 그녀의 손을 놓았다. 내가 일부러 그랬다고 생각할거 아냐. 그것만은 질색이라고!
뒤따라가는 릴리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인파 가운데서 손을 잡고 걷는 건 훨씬 (보호자에게 인솔받는 어린아이 같아서) 부끄럽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손을 놓으려고 해도 그가 억척스럽게 이끌고 가는 통에 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말하는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쯤에 이미 릴리의 얼굴은 완숙 계란처럼 푹 익어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곁눈으로 가쉬의 얼굴을 훔쳐보았을 때, 그도 마찬가지로 완숙 계란이 되어 있는 걸 본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이걸로 비긴 게 되니까. 릴리는 ‘경기장’의 주위에서 불어 오는 선선한 바람으로 얼굴의 열기를 식히려 애썼다. 꽤나 분위기가 좋은 곳이다. 학원도는 나름 넓은 땅이므로 이런 구역도 찾아나선다면 더러 발견할 수 있지만, 릴리에게는 아직 이런 비밀기지가 없었다. 도서관이면 충분했으니까다.
“갸앗!?”
그가 소리를 지르자 덩달아 놀라며 손을 놓았다. 숲에 사는 문어가 튀어나오기라도 한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어린애같은 이유였다. 그래도 비명을 바로 귓전에서 들은 탓에 위기를 감지한 손이 화끈거려서, 그 손의 장갑을 벗고 손아귀에 꼭 쥐었다.
“간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뭐, 다─행─히, 가쉬 씨를 인파 속에서 잃어버리는 일은 없었네. 혹시나 당신이 미아가 될까 봐 걱정했다구.”
장난스럽게 넌지시 이야기하며 팔짱을 낀다. 그러고는 구둣발로 바닥의 풀을 고른 다음에 그 자리에 쪼그려앉았다. 낮은 자세로 있으니 마음이 안정된다. 이대로라면 조금이라도 숨을 고를 수 있을 듯하다.
>>560 아하 있군요! 맞아요. 좀비게임이나 영화나 그런거 보거나 하면 막 자기 머릿속으로 스토리 상상돼서 진행되지 않아요? 막상 쓰려면 써지진 않지만!ㅋㅋㅋㅋㅋㅋㅋㅋ맞아맞아. 머릿속에서 지금 당장 좀비사태가 일어나면.. 이라던가!! 지금 당장 좀비사태 일어나면 이 집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지? 라던가. 아마 그걸 영화화한게 살아있다라는 영화인가 그런걸로 아는데.. 영화 보긴 했는데 살아있다는 걍 그렇더라구요.
기타를 조율하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역시, 뭔가에 집중하고 있으면 그나마 분위기가 있는 양반인데…… 어쩌다…….’
그리고, 그의 연주가 끝났다.
“…….”
내기의 조건은 노래를 듣고 그에 따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 다시 말해서 좋다, 나쁘다라는 일체의 표현을 하지 않은 채로 감상하면 그만인 것이다. 릴리는 노래에 빠져들어 그 목소리를 듣고 있었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1라운드는 릴리의 승리였다.
‘애초에, 노래를 듣고 아무런 감정이 나타나지 않는 게 이상하지…… 그걸 잘 숨기느냐는 완전히 다른 문제인데, 딱 걸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