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긴 사람은 손도 곱다는 둥, 갓이나 두루마기가 잘 어울린다는 둥, 녹색 눈이 예쁘다는 둥, 이러쿵 저러쿵 서술하기 힘들 정도의 찬사를 눈도 깜빡거리지 않고 능청스럽고 뻔뻔하게 늘어놓던 주단태는 남자의 말에 샐쭉 눈을 가늘게 뜨고 만지작거리던 남자의 손을 놓아줬다. 아쉬움이 가득한 몸짓이었다. 대신 단태의 암적색 눈동자는 남자의 갓과 세로 동공이 인상적인 남자의 눈동자를 지나쳐서 훑어내려갔다.
"그 잘생긴 걸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으면서요? 농담도 잘해~ 지인이라면 학생은 아닐 것 같은데.. 혹시 애인? 친구? 아니면 동생?"
단태는 자신을 거부하는 것 같지 않은 남자에게 재잘재잘 능청스러운 말들을 늘어놓았다. 적어도 달링이라던가, 자기라던가, 허니라는 호칭을 하지 않는 건 상대가 자신보다 연상이라는 자각이 있는 유교걸이기 때문일테다. 물론 첫만남에 인사 대신 잘생겼다는 말을 한 이상 유교걸과는 거리가 멀지만. 아, 평소에도. "당신이 반하려면 일반적인 외모의 사람으로는 택도 없겠어요. 이게..얼굴값 한다는 건가?" 단태는 짐짓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처럼 손으로 자신의 입가를 가리며 중얼거리다가 이어지는 말에 아, 하는 소리를 담담하게 흘린다.
"무알콜 막걸리 마시러 가는 길이에요. 월식 주막에서 파는. 그쪽은- 음, 이름이 뭐에요? 내가 남자형제가 없다보니까 오빠라는 호칭은 좀 어색하니까 이름이라도 알아야할 것 같은데."
적어도 정상인의 정신상태 범주에 드는 사람이어야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 라는 말은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화를 돋궈서 좋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알고있었으니까. 이런 약간의 공포가 있어야한다는 것이 레오의 생각이었다. 두려움은 제어할 수 없는 감정이지만 그 두려움을 힘으로 바꿀 수 있다면 무엇보다 강한 무기가 된다는 것을 많은 싸움 끝에 알 수 있었다. 레오는 단지 자신이 알고있는 공식을 이용한 것 뿐이다.
" 왜, 그렇다고 하면 네가 어울려주기라도 하게? 그런거 아니니까 걱정하지마. "
아는 어떤 놈이라. 지난 번에도 비슷한 사람을 언급했던것 같은데. 레오는 잠깐 드는 생각은 저리 치워버리고 일단 나가자는 것인지 버니를 따라 문을 열고 귀곡탑을 나섰다. 공기가 제법 선선했다. 한 바탕 저지르고 나니 하늘이 높아져 숨쉬기가 편해졌다. 레오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차갑고도 신선한 공기. 마음에 들었다.
" 참을성 없다니까 빨리 말해줘야겠네. 버니, 날 도와주는 이유가 뭐야? "
말해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일단은 질러보기로했다. 잃을 것도 없었으니까. 레오는 맞았던 볼을 한 번더 만지작 거리다가 또 습관처럼 적당한 바위를 찾아 앉았다. 버니와 눈을 맞추고 '응?' 하고 한 차례 더 물으며 대답을 재촉했다. 생각해보면 전혀 도와줄 이유가 없는 데다가 함께 있는것 조차 말이 안돼는 조합이었으니까.
얼굴을 보인게 허점이었던 걸까. 서둘러 뒤로 물러나 욕지거리를 내뱉는 그를 보며 그녀가 재차 웃었다, 그의 행동이 웃음을 불렀는지 이번엔 또렷하게 나온 욕 때문인지 분간하기는 어려우나 이 상황을 마냥 재밌어 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물살이 얼굴을 때릴 때에만 잠깐 웃음이 사라질 뿐. 물기를 훑어내고 나면 금새 실실 웃으며 물결을 타고 흔들거린다.
"기숙사 점수를 걱정했으면 선배를 아예 안 데려왔겠죠?"
곱게 휜 눈이 그런 위협은 통하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더불어 그녀가 뛰어내릴 때 했던 말의 대답을 들을거란 의지도 들어있었으나, 그걸 그가 눈치챘을지는. 출렁이는 물살을 그대로 맞고 어푸거리는 그를 바라보며 살랑살랑 돌아다니다가, 노려보는 시선에도 아랑곳않고 생긋, 웃는다.
"선배가 죽을 거 같으면 제가 건져드릴테니까 걱정 마세요. 그 전에 나가는게 좋을 거 같긴 하지만요~"
나가자마자 뭐든 맞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다. 그녀는 유유히 몸을 움직여 해변 쪽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천천히 해변을 향해 헤엄을 치다가, 멈춰서 힐끔 돌아보고 말했다.
"바람이 세니까 마법으로 올라가는 건 위험해요. 중간에 다시 떨어지고 싶다면 말리진 않을게요. 이대로 해변으로 갈 건데, 에스코트 필요하세요?"
그가 하도 물살에 흔들려서일까, 아니면 앞서 했던 경험 때문일까. 자력으로 가기 힘들다면 어깨 정도는 빌려주겠다고 하며 한 손을 내민다. 거절하면 그대로 다시 앞을 보고 헤엄을 칠 생각이긴 했다. 일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