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게 분위기를 잡는 것 같았더니 단번에 가벼워졌다. 그는 여기서 아주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상황도, 의미도, 어조도, 모두 다르지만 리안 다이사쿠 에스카마리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겹쳐보였다. 느낌만 말이다. 누군가 자신에 대해 깊게 파헤치려다 갑자기 식어버리거나, 갑자기 예의를 차리는 그 상황. 그는 비효율적인 이 상황이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싫었다.
"그런게지."
그렇지만 그는 오늘 넓은 마음을 가지기로 했다. 오늘은 그나마 컨디션이 좋은 날인데 스트레스를 받아 또 하루를 말아먹고 싶지도 않았고, 사람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 또한 남들과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를 뿐이다. 당신이 그러하듯. 그는 본질을 떠올리기로 했다. 달라봤자 죽으면 다 똑같을 뿐이다. 오! 아주 좋은 지론이다. 벌써 마음이 편안해진다.
"…상극이군."
그는 흘끗 뒤를 보자 천천히 고개를 기울인다. 표정이나 몸짓은 여전히 감정이 없었지만 어쩐지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별 대수냐는 눈치였다. 그는 당신의 뒤를 쫓다 의미없는 질문에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아마 당신이 뒤를 돌아본다면, 그는 어딘가 우물쭈물 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무려 그가 말이다.
"그게."
그는 잠시 시선을 다른곳으로 굴린다. 전혀 그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한참동안 뱉지 못했던 말을 어색한 미소와 함께 씹어내듯 뱉었다. 차라리 안 웃는게 훨씬 나을 정도로 미소는..끔찍했다. 그는 웃는 법을 배운 적이 없는 것 처럼.
"바다랑 친하지 않아서 말일세."
맙소사. 그가 평범한 소년처럼 한 손을 자신의 뒷목으로 슥 올리며 시선을 피해버렸다.
"…자주 빠졌거든."
그의 어머니는 방학이 되어 본가로 돌아가면 블랙번의 분가가 있는 있는 바닷가로 가서 그를 집어 던지는 것을 즐겼다. 그는 속절없이 휘날렸고, 그의 끝은 늘 젖은 미역이었다.
인텔리 스타일의 남성이 한숨을 푹 내쉬며 천천히 무대 저편을 바라본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그 모습이 심란하기라도 한건지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이 사태의 원흉인 케인, 리안은 그렇다 쳐도 케인은 전혀 용서가 되지 않았다. 땀내 나는 풍경이긴 했어도 남자들의 그 뜨거운 우정이라는 치트키를 써버릴 줄은 자신도 몰랐기 때문. 그걸 아는지 케인이 조금 민망하고도 미안한 표정으로 잭의 손에 천천히 음료수를 쥐어 준다.
"미안하다." "니가 미안할게 뭐 있냐."
그렇게 긴장한듯 그가 고개를 푹 숙이자, 어느새 리안이 옆에 다가와서 어깨에 손을 얹어준다.
"고생했다. 이제 다음 순서 너지?" "네, 덕분에요." "..... 괜히 숙제 어려운걸 내줬나?" "알고서 그래요? 지금 저보고 엿이나 까잡수라 이거죠?!"
갑자기 대드는 잭의 모습에 리안이 어안이 벙벙한듯 그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 대드는 표정도 잠시, 잭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걸 깨닫자, 드디어 한방 먹었다는 듯 리안이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야 만다. 그제서야 속이 후련해진 걸까. 잭은 손을 한번 번쩍 들고 지팡이를 손에 꽉 쥔채 천천히 무대를 올라섰다.
"괜찮겠죠? 저 아저씨?"
루인의 한마디에 리안은 조용히 미소를 지어보일 뿐이었다. 그 미소에 담긴 의미는 [믿음]이었다.
무대에 올라선 잭의 눈으로 순식간에 많은 이들의 시선이 주목된다. 리안은 이걸 홀로 받아온 적이 훨씬 더 많았다는 걸까, 이 긴장감에 압도되기하도 하듯 그가 숨을 멈춘다. 그 순간 리안의 말이 떠오른다. [턱을 당기고, 가슴을 펴고, 허리는 꼿꼿히, 기죽을거 없다.] 젠장, 부장 언제 이런걸 염두에 두고 그런 말을 한거요?
"안녕하세요. 어제 케인에 이어서 이번에 무대를 맡게된, 무대 및 장소 담당 잭이라고 합니다. 저번과 같은 열정적인 무대는 보여드리지 못하겠지만.... 제 나름대로의 결실을 여기서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사방이 가득찬 쓰레기장 같은 무대였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에렉토(Erecto)를 외운다. 그 순간 모든 쓰레기 같다고 생각되던 물건들이 천천히 조립되고 연결되어지면서 순식간에 그의 탁자를 이루고 책장을 이루어가기 시작한다. 그 한가운데에서 그가 앉으며 선율을 흘린다.
"그 날 지키겠다고 결심한 약속은 이 가슴에"
그의 나지막하고 힘있는 선율이 천천히 울려퍼지고 그의 눈에는 자그마한 불꽃이 타오른다. 불꽃이 향한 지점은 마치 그의 과거, 모든것에 열정을 가지지 못한채, 가족들의 기대에만 등 떠밀려 살아온 그 시절의 자신만이 있었다.
"모든 걸 잃어버리는 것으로 지금 지킬 수 있는 목숨이 있다면 기꺼이 전부를 바치겠어 이 마음이 첫 삶의 보람이야"
그 시절의 자신은 재미없다, 고 라는 이야기만 듣고 살던 그런 남자였다. 무기력증, 편집광적인 모습만 한가득인 그의 모습에서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아닌, 따분함만이라는 글자만이 남아있었다. 그 순간 모든 것을 앗아간 두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들이 바로 리안과 케인이었다. 자신이 심심해서 그렸던 그 그림에, 그들은 관심을 가지고 자신들과 같이 불꽃을 쏘아올리자고 하였다. 그 순간이었다. 그의 눈에 색감이 들어온 것은.
"상처는 숨기지 말아줘 절망도 무기로 삼아서 살겠다고 결심했어"
그들 뿐이었다. 자신을 오롯이 봐준 것은. 그렇기에, 지금 그 무대를 이루게 해준 그들에게, 방송부에게 이 노래를 바치려는 것이리라.
"온 힘을 다해 이 눈물을 헤치고 너에게 모든 걸 바칠 테니까 부탁이야 제발 사라지지 말아줘 그 날 지키겠다고 결심한 약속은 이 가슴에"
그 순간 그가 벌떡 일어나 서류더미를 흩뿌려버린다. 마치 자신에게 걸린 속박을 모두 던져버리는 듯한 행동에 다들 그의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벤투스, 리안이 항상 자주 사용하던 마법이 좀 더 정교한 움직임으로 서류더미들을 그의 주변으로 회전시키는 장벽마냥 전개되어 간다.
"누군가가 건 목숨으로 지금 살아가면서 싸우고 있어 지는 건 이제 무섭지 않아 이기는 걸 포기하는 게 싫어"
그의 목소리가 터져나감과 동시에 모든 서류더미가 사방으로 흩뿌려지고, 힘껏 내리친 주먹에 쓰레기로 만들어졌던 탁자가 무너져 내린다.
"이제 절대로 도망치지 않을 테니까 되고 싶은 나로 도전하고 싶을 뿐 보잘것 없는 허울 좋은 말이라도 네가 웃어준다면 된 거야"
그 쓰레기 더미 한가운데에서도 그는 가만히 웃고 있었다. 시니컬하되 시크하게, 잭 다운 웃음이었다. 하지만 그 웃음에 담긴 열정만큼은 절대로 남들에게 질 것이 아니었다.
"강함은 무언가의 위에 올라서기 위해 있는 게 아니야 소중한 것을 끌어안기 위해"
쓰레기 더미, 자신이 여지껏 가지고 왔던 그 모든것이 쓰레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쓰레기들을 어떻게 의미있게 자신이 만드느냐, 그것이 바로 그가 가지고 싶었던 참된 의미였다.
"모든 걸 잃어도 반드시 널-너희를- 잊지 않아"
그가 가장, 지금 방송부의 사람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온 힘을 다해 이 눈물을 헤치고 너에게 모든 걸 바칠 테니까 부탁이야 제발 사라지지 말아줘 그날 지키겠다고 결심한 약속은 이 가슴에"
방송부를 시작한 이래로 그들의 꿈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앞으로도 자신들이 아니더라도 이어질 것이다.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되는 날도 분명히 올 것이다. 좌절하는 때도 있겠고 무릎이 다까져 주저앉아 울 때도 올 것이다.
"사라질 것 같은 희망빛이라도....."
그가 발치에 잡힌 서류 한장을 천천히 주워들고, 그걸로 종이비행기를 접어 있는 힘껏 던져낸다.
"가라!!"
그가 날려보낸 종이비행기가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끝도모르는 그들의 꿈처럼.....
그리고 잭이 천천히 시선을 돌려 관중을 향하자..... 잠시간 정적의 끝에서 거대한 환호성이 울려퍼진다.
>>260 아닛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흑흑 역시 내가 원하는건 절대 안 주는구나.. 이렇게 된 이상 다른 사이다에도 내성을 기르는게 답인가 (?????) 꿈속의 첼이는 첼이지만 첼이가 아니라구..? 뭐지 뭔가 다른 인격? 인가 아니면 병약할때의 자아였는가.. 추측 똥망인 쭈주는 오늘도 이런저런 뇌피셜과 망상만을 쏟아놓는다아앗..!
>>261 천천히 여유롭게 하면 되는거지~! 나도 맨날 미뤄놔서 정리속도가 빠른 편은 아니기도 하구 ㅋㅋㅋㅋㅋㅋㅋ.. 이대로 갈레온 쭉쭉 모아서 억만장자가 되는 게 목표야 후후 (???)
>>263 헉 노래 좋아! 완전 내 취향이야 초반에 일렉 시작하는 파트도 마음에 들고 곡 분위기도 발랄한 느낌이라 최고야 히히히.. (플레이리스트에 쏙 넣으며)
>>264 야호~~!! 내가 어제 못 구했던 일상 오늘 한가득 달려버리겠어~~! (텐션 업!)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좀 많이 고민된다 코코넛음료 간지나게 빠는것도 해야하고 그 벌레저택()도 해보고싶고 모래성.. 은 이미 땃태랑 밍이랑 돌린 것 같으니까 잠깐 패스해두고! 음 일단 선레 다이스 굴리고 천천히 생각해보자구~! 갑자기 정하려니 머릿속에서 충돌이 일어나 ㅋㅋㅋㅋㅋㅋ..
썩 좋은 꿈을 꾸진 못했다. 두고 가지 말라는 인영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역시. 역시 이 아이를 생각한다면. 끝까지 내가 곁에 남아있는 게 최고의 선택지일까. 하지만 자신은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닌데. 전날 건 사감님과의 대화 이후로 꽤 이런저런 생각들이 잔뜩 머릿속을 지배하는 느낌이었다. 어느 쪽이 진짜 행복이며, 어느쪽이 서로에게 옳은 선택지가 될 수 있을까. 지금껏 그려왔던 자신의 인생은 그저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내걸며 스스로만 행복했던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이래서 남을 위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청.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몇 번이고 되물어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아. 그저 어색한 침묵만이 둘의 사이에 흐를 뿐이었다. 너는 무엇을 원하길래, 그리도 평온할 뿐일까.
".. 잊자, 잊어. 뭐에 푹 빠져서 꽁해져있는 건 내가 아냐."
자. 마냥 가라앉아있기만 하는 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고 생각했으니. 슬슬 털고 일어날 시간이다. 이왕 바다에 온 김에 즐길수 있는 한계까지 최대한으로 즐기고 가야 아쉬움이 덜하지 않겠는가. 이미 저택 탐험도, 그리고 염통 쫄깃한 내기도 즐겼지만 이 정도로는 아직 모자라다. 더 많은 즐거움을. 더 많은 쾌락을. 그래야 지금의 이 몹쓸 어두움에서 발을 뗄 수 있을테니.
천천히 기지개를 쭉 켜면서 청을 대동하고 로비로 비척거리면서 나갔다. 낮에 보는 저택은 그저 고풍스럽고 평온한 느낌일 뿐이었다. 저택에서 처음 묵었던 며칠 전 새벽에 보았던 것들이 어색해질 정도로. 역시 그저 집요정들의 장난일 뿐이었겠거니 했다. 그러고 보니 지팡이도 돌려주러 가야 하는데. 언제 돌려준담. 씁 하고 입맛을 다시면서 자신 몫의 지팡이와, 늘 자신과 티격태격했던 아이의 지팡이를 번갈아 보았다. 뭐. 언젠간 돌려주러 갈 수 있겠지.
"..?"
그리고 한 순간. 시야의 사각지대로 무언가 재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귀신? 집요정? 아니. 둘 다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활씬.. 작으면서. 갈색을 띄었던 것 같은데. 이럴 때 벌레 감식반인 청이 맨정신이었으면 좋았겠으나 꼭 필요할때만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주양은 혀를 찼다.
"하여튼. 필요할 때만 일을 안 한다니까! 확 그냥. 내깃돈으로 안 걸어버릴라.."
영 어긋난 애정이 섞인 투덜거림을 입 밖으로 흘리며 아까 무언가가 지나간 자리를 빤히 응시했다. 이러고 있으면 언젠가는 또 다시 지나가지 않을까. 그러면 저게 무엇인지는 알 수 있을텐데. 쓸데없는 호기심에 불이 붙었고, 누군가 나오는 기척조차도 느끼지 못한 채 그 자리만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 지금이라도 호기심을 버리고 저택 밖으로 나가 바람이나 쐬어야 한다는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마치 망부석마냥 그렇게 서 있을 뿐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태연한 말과 어처구니없는 행동으로 자리의 분위기를 휘어잡고 혹은 흐트러뜨린 뒤 아무런 책임도 없이 내던지는 행위.
그녀의 가문에 만연한 특징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그렇게 되시겠다. 반려인을 제외한 직속 가문원 대부분이 그렇다. 개인별로 차이는 있었지만. 그의 말대로 상극이라 할 수 있었다. 불특정 타인과 비슷해보여도 그렇게 보일 뿐. 맞세워놓으면 상대에 걸맞은 상극으로 변모한다. 누군가에게는 상황 판단이 빠르고 유연하다 보이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들을 정신이 나갔거나 혹은 미쳤느냐고 표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게 무얼 뜻하느냐. 아무 의미도 없다. 그저 그럴 뿐이라는 뜻없는 주절거림에 불과하다.
그녀는 상극이라 중얼거리는 그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짧은 웃음을 흘리기만 했다. 후훗, 하고. 그녀 입장에선 상극인게 당연한데 그걸 굳이 확인받으니 뭔가, 우습달까. 종종 남매들이 동급생들이나 주변인들에 대해 떠들던게 생각난다. 아마 지금과 비슷하거나 더한 상황들이었던 거 같은데. 그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뒤에서 멈추는 기색에 그녀도 멈춰 해변에서처럼 반쯤 돌아 그를 보았으니까.
"?"
이 선배가 오늘 왜 이러실까. 우물쭈물하는 그를 보며 든 첫 생각은 그거였다. 절대, 절대 남들 앞에서 안 이럴 거 같은 사람이 이러니 신기하기도 하고 아까 제가 한 말이 역시 맞구나 싶기도 하다. 좀 변한거같다는 말. 단순 변덕으로 이럴 사람이 아니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보통 소년처럼 손을 올리거나 시선을 피하는 행동들은 의외구나 할 수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 미소는 좀, 버거웠다. 어색...한 그의 미소에 저도 모르게 어깨를 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그..런거면 확실히 가까이 하고 싶지 않겠네요. 오늘도 노는 학생들 대부분이 청궁이더라구요."
그것 참 재난이네요 같은 말을 하며 느릿느릿 움직여 다시 앞을 향한다. 그리고 멈췄던 걸음을 떼어 다시 걷는다. 몇걸음 걸으면서 의외였던 기분이 가라앉고나자, 그의 얘기를 듣는 동안은 들지 않았던 생각들이 퐁퐁 솟아오른다. 던져질까봐 물놀이를 하지 않았다는 그, 그렇다는 건 아직 이번 휴가에서 그를 던진 이는 없다는 의미다. 거기서 도출해낼 수 있는 결론은-
"자주 빠졌다니까 생각났는데, 저도 어릴 땐 자주 당했었어요. 첫째가 유독 장난이 심했는데 제일 어린 제가 만만했나봐요. 방학 때 가끔 친척의 별장에 놀러가면 가자마자 내던져진 적도 있었거든요. 뭐, 그 업보 죄다 돌려줬지만요."
가볍게 그녀의 얘기를 해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걸 감춘다. 그에 대해 들었으니 그 정도는 들려줘야 수지가 맞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적당한 말들을 늘어놓으며 동시에 생각을 굴리다보니 어느새 풀숲길이 끝나고 사람이 많이 다니는 듯한 길로 이어진다. 마구잡이로 풀이 뜯긴 길에서 어느 정도 정돈된 길로 접어들자 잠시 멈춰서 기지개를 켠다.
"으긋-"
두 팔을 쭉 뻗으며 몸을 풀어주는 그녀의 옆으로 머지 않은 곳에서 바닷바람이 불어와, 조금이나마 흘렸을지 모를 땀을 식혀준다. 그도 올라왔다면 같은 바람을 맞았겠지. 해안에서 불어온다기엔 어쩐지 살짝 차가운, 높은 곳에서나 불어올 법한 바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