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얼굴에 솔직한 마음을 뱉었다가는 빛보다 빠르게 속물이 된다. 아무튼 최선을 다하는 릴리였다. 입 안에 남은 카페오레가 제법 향긋하고 달콤해서 마음에 든다.
“빚…….”
릴리는 머릿속에서 돌돌 말려 있는 새하얀 양피지를 펼친다. 철필으로 그 위에 선을 그어 시약의 레시피를 써내려 가기 시작한다. 진사, 염초, 질산염, 그리고 유황 조금을 모방범죄 예방을 위해 적절하게 가공하고 배합하면……. ※ 세 번 불지옥 대폭발 물약! (가칭) ※ …… 아무리 그래도 하루의 직장을 불태워 버리는 것은 죄책감이 너무 심하다. 일단 생각해 둔 레시피를 돌돌 말아 다시 기억의 궁전에 보관하기로 한다.
“…… 하하하, 그렇구나. 빚을 갚으려면 어쩔 수 없지.”
이번에는 여유 있게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우아한 자태로 잔받침에 컵을 내려놓는다. 그러고 나서,
“어쩌다가 빚을 진 건데?!?! 영끌했어!? 사기 당한 거야?! 아니면 그, 좀, 잃었어?! 그…… 게임으로?! 카이지처럼 된 거야!?”
하고 벌떡 일어나서 묻는다. 아무리 그래도 빚이라니! 집과 빚이라니! 이게 무슨 『곰이 물구나무 서면 문』 같은 농담도 아니고!
하루는 의아한 눈을 지으면서도, 릴리의 말에 일단 수긍을 하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하루였다. 릴리가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듯 한데, 좀처럼 그게 무엇인지 감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갑자기 자신의 말을 들은 릴리가 양피지를 펼쳐선 무언가를 적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더욱 커졌다.
" 그렇죠, 빚은 생긴 이상 갚아야 하는 법이니까요. "
릴리는 역시 바른 말을 하네요, 하는 표정으로 방긋 웃으며 답한 하루였다. 누구의 속도 모르고 태평해보일 정도였으니, 릴리가 속으로 고민하는게 무엇인지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물론 태평하게 웃고 있던 미소도 갑자기 벌떡 일어나는 릴리의 모습에 흐트러졌지만.
" 에...? "
하루는 지금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릴리의 입에서 나열되는 것들을 듣고 있다가 무언가 깨달은 듯 풋 하고 웃음을 터트린다. 풋 하고 터진 웃음은 맑은 웃음소리로 이어졌다.
" 아하..아하하.. 진정, 진정해요, 릴리. 그런 빚은 아니니까요. 그냥 인간 대 인간으로서 진 빚이 있는거라서요. 친구끼리 빚을 지고 있으면 곤란하니까 일을 도우려고 한거에요. "
웃느라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낸 하루가 차분하게 대답을 들려준다. 그리곤 몸을 앞으로 조금 내밀어선 환하게 웃으며 릴리와 눈을 마주합니다.
누군가를 걱정시키는 것은 릴리도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 탈구된 관절의 재활에 도움이 되는 치료제를 만들어 먹고 퇴원할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그래서는 아버지에게 과로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끼쳐 버린다. 릴리와 성격이 일치하는 수준으로 비슷한 샤르티에 부인은 이해해 주겠지만, 딸바보인 샤르티에 씨는 애석하게도 그런 성격이 아니다…….
“다 낫고 나서 사과해. 붕대 둘둘 두르고 링거 단 채로 사과하러 다녀 봤자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사과는…… 동정받을 만한 행색으로 해서는 안 되는 거야.”
본래 하고 싶은 말이 ‘지금은 그런 소리 하지 말고 낫는 데만 집중해, 이 바보야’였다면 ‘바보’라는 말을 문장 전체에 넓게 펴바른 결과가 저것이었을 것이다. 릴리는 병상에 걸터앉은 채로 무거운 것이 들러붙은 오른쪽 다리를 살랑거려 본다. 약간의 통증이 느껴진다. 몰래 진통제를 만들어 마셨으니까 크게 아프지는 않았지만.
“…… 뭐, 나는 사과를 받았으니까 이쯤으로 해 두겠어! 푸헤헹. 당신이랑 다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처음 듣는 말이 ‘미안해요’라니. 기분 묘하네.”
그러면서 릴리는 머리맡의 협탁에 놓인 컵을 흔든다. 담겨 있던 물이 백색의 불투명한 액체로 변한다.
※ 우유! ※
한 모금 마시면서 시선을 다림 쪽으로 옮겼다. 그건 그렇고 정말 호되게 당했군. 그렇게 공격 세례를 받았으니 저렇게 다치는 것도 당연하지만 말이다.
다 낫고 나서 사과라는 말을 하는 릴리를 보고는 그렇네요... 붕대를 둘둘 두르고 사과하러 다니면 사과를 하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고 말하면서 붕대를 힐긋 바라봅니다. 낫는 데 집중해 바보. 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다림은 느리게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깁니다. 옅은 다크서클이 붙은 눈가가 보이네요.
"다시 만난다면...을 생각해본 적 없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봐도 미안해할 수 밖에 없더라고요.." 인형.. 손상되어서 이젠 찾을 수도 없고요... 라고 말하는 표정은 고개를 떨구고 있기에 잘은 안 보일지도 모르지만. 말투는 정말로 미안해하는 그것이라고요.
"사과를 받아주신다니 다행이에요." 만일 사과를 안 받아주신다면 디저트를 사들고 가서 절을 하는 걸 생각했었나요? 그걸 말하지는 않은 채 은은하게 웃습니다. 매우 호되게 당했죠.. 잘못했으면 춘심의 도끼에 효수당할 뻔했고..(와 다림이 데플! 영웅서가 끝! 새 시트 ㄱ? 당할 뻔)(농담) 하쿠야의 의념기에 지훈의 의념기에... 정훈의 스킬에... 비장의 수로 총에도 얻어맞았으니... 사실 정신만 차리고 있는거지 실질적 몸상태는 아직 못 일어난 다른 캐들보다 더 나쁘지 않을까요
....물론 따지고 보면 에릭이 더 후려맞았겠지만.(브루터메니스의 뺑소니가!) 워리어랑 서포터의 차이점으로 인해 피곤함은 다림이 더 강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