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릴리는 금방 나와 펄펄 끓는 카페오레를 한 모금 삼킨다. 그리고 식도가 불타는 것을 느끼며, 변명거리를 구상한다. 하루는 지나칠 정도로 잘 하고 있다. 그런 하루에게 ‘세놓고 살면 평생 불로소득이 가능한 것 아니야?’라고 조언하는 것은 속물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을 릴리는 잘 안다.
“설마…… 혹시 그 정령들한테 급료를 지급해야 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그 순간 릴리는 하루가 부동산매매계약서를 제대로 읽지 않았을 확률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선량하다. 계약서에 적힌 부당한 내용을 제대로 읽지 않았을 가능성보다도, 그런 악독한 거래를 제안하는 상대방에게 동정하여 스스로 일해서 메꿔 주면 된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생각까지도 든다……!
하지만 기우일 것이다. 세상에 그런 답답한 일이 생긴다면 릴리는 정상적인 혈압을 유지할 자신이 없다. 그리고 천하에 그런 몹쓸 인간이 있다면 이미 오래전에 번개를 맞아서 바삭바삭하게 구워졌을 것이다.
“…… 열심히 일하는 모습 보니까 좋아서. 나는 백수니까, 지금……. 그래서 어쩌다가 이런…… 데서 일하게 된 거야……?”
걱정이 무럭무럭 커진다. 설마 지금 이 카페에서 일하는 것도 부당계약에 의한 것이 아닌지. 최대한 그 걱정이 드러나지 않게 말하고는 있지만…….
하루의 걱정스런 중얼거림이 펄펄 끓는 카페오레를 들이키는 릴리에게 들려왔을 것이다. 혹시나 릴리의 혀가 데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는 얼굴이었다. 릴리가 갑자기 카페오레를 맛도 안 즐기고 들이키는 이유가 짐작이 되지 않는 모양인지 귀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하루였다. 그런 주인을 따라 양갈래로 묶은 새하얀 머리가 강아지 꼬리처럼 살랑살랑 흔들렸다.
" 아니에요~ 정령분들은 저택과 계약이 되어있는 느낌이라 딱히 보수를 지급하거나 하진 않아요~ 다들 착한 분들이데 되게 좋은 일이죠? "
릴리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은 미소를 지은 하루가 그렇지는 않다는 듯 가볍게 답하며 후후후 웃어보인다. 정령사용인들과는 같이 낮잠도 잘 정도로 꽤나 사이가 좋아졌으니까 하루느 그다지 걱정은 없었다. 물론 릴리가 보기엔 해맑은 하루가 걱정스러워 보일지도 몰랐지만.
" 음... 사실은 여기 점장한테 빚이 있어서요... "
하루는 갑작스런 물음에, 눈이 동그랗게 변하더니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짓고는 조금 낮아진 목소리로 말한다. 뭔가 처음부터 끝까지 릴리에게 설명을 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랄 것 같기도 했고, 에릭과 관련된 일인 만큼 자기가 함부로 다 뱉어내긴 애매하다고 생각한 모습이었다. 그치만 릴리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기엔 충분했을지도 모르겠다.
" 그...러고보니 아직 월급 이야기는 없었네요..? "
딱히 월급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이 일을 시작한 것도 아니었고, 나름의 빚갚기로 시작한 일이었기에 어떻게든 되겠지란 생각이었던 하루는 릴리의 물음에 일단은 사실대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론 이게 불안감을 증폭시키기엔 확실했을지도 모르지만. 걱정을 가중시킬 수 있게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하루는 보너스 같은 것일지도.
“게이트 너머의 괴물들이 가디언들에게 미안해하는 걸 본 적이 있어? 마찬가지야. 숙청여제는 당신을 지배해서 꼭두각시로 삼은 데 한 점의 후회도 없다. 내가 그 녀석하고 개인적으로 내밀한 대화를 나눠 봤거든……. 그 녀석도 뻔뻔하게 다음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쩌다 휘말린 당신이 미안하게 느낄 이유는 없어.”
그리고, 여전히 같은 병실에 누워서 자고 있는 환자들을 돌아본다.
“실패하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지. 인간이 아니면 위대해질 수도 없고.”
다시, 다림을 본다.
“…… 당신이 미안하게 여겨야 하는 건 당신 친구들을 걱정하게 만든 거야. 그리고…… 나까지도.”
티아라의 지배에서 벗어난 채 쓰러지는 순간, 그녀가 아주 오랜 인연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챈 릴리는 이 기묘한 인연을 자신에게 닥쳐 오는 도전으로 여겼다. 이 얼마나 기구하고 잔인한가! 그리고 이 얼마나 기쁜 재회인가.
“당신 친구들은 엄청 걱정했을 거라고! 알아? 그게 첫 번째 잘못이야! 그리고, 나는 말이야, 누구 팔다리 두세 개가 날아가거나 심장을 저당잡히거나 그런 걸로 걱정하지 않아! 하지만…… 스스로 해치기로 마음먹었다면 당신은 거기서 끝장이었던 거야! 인간으로서 끝이라구. 그래서는…… 안 됐어.”
내밀한 대화를 나눴다는 데에 눈을 조금 동그랗게 뜹니다. 다림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찍어눌리긴 했으니까 당연히 바라봤겠지만요.. 내밀한 대화가 숙청여제의 패배로 끝났으니까 지금 이렇게 마주보고 있겠지.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정도도 못해서야 어떻게 영성 S겠어! 하지만.. 이라고 말하고 싶은 표정이지만 수긍할 수 밖에 없는 말이었으므로 가만히 입을 다뭅니다. 휘말리기는 했지만 굴복한 거니까..같은 것만 하다가는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 뿐이겠지.
"걱정인가요..." 너무 오랜만에 받아보는 그런 말이었습니다. 물론 학원도에서 받는 것이랑 저 멀리에서 받는 것은 질이 다르기는 하지만요. 걱정시킨 게 잘못이라던가. 해치면 안된다는 것을 들으면 기묘한 감정이 듭니다. 지금은 그것이 미약한 안도감이라는 걸 모르기에 불안감으로밖에 치부하지 못하고는 릴리를 바라봅니다.
"...걱정시켜서 죄송...미안해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갑니다. 그래도 금방 나을 거니까.. 그리고.. 오랜만이에요.. 라고 말하면서 다치지 않은 쪽 팔에 달린 손가락을 살짝 꼼지락거립니다. 릴리가 특이했으니까 다림도 기억에서 끄집어올릴 수 있었던 거겠죠. 그렇지만 차마 릴리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인형의 형체라던가 그런 건 기억해도 실물을 가지지 못하게 된 지 얼마나 지났기 때문일까요? 조심스럽게 앉는 것에 무슨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려 시도할까요. 뭔가 문제가 있다면 살펴주려는 것이겠지.
"그치만... 공격한 게 아직 손에 남은 것 같아서.." 눈을 내리깝니다. 사과할 분이 많아요.. 라고 중얼거립니다.
" [분실]이라는 의념은 개념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지만 감정적으로도 사용하여 아군이나 적을 혼란시키는 형태로도 이용할 수 있단 것을 알려줄 필요는 있어보이네요. 적에게서 '두려움'을 훔쳐 광분하게 만들거나 '친밀감'을 훔쳐 아군끼리 싸우게 만드는 등. 이런 식으로의 의념 방향을 잡는다면 바바 야가가 가장 어울리겠군요. "
다림주: 미안하다. 내가 이해력이 좀 딸린다...이걸 어떻게 올릴 수 없는 게 이해력 저하엿나 대충 그 떨어짐이 먹는 약 부작용이라...(그래서 문장도 몇 번 읽어야 겨우 이해함) 다림: 그럼 차라리 딜노예를 하시던가요.. 왜 서포터를 해서.. 다림주: 큿.. 그치만 하고 싶었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