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청여제를 때리려는데 괜히 앞을 막아서던 것이 기억나서 그다지 말이 통한다는 인상은 아니었지만, 하루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한 번은 믿어 보기로 한다. 어디까지나 한 번은. 악덕사장인지 아닌지, 한 번 깊게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알게 되겠지……. 어디까지나 세 번 지옥불 대폭발 물약!은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 두기로 하고…….
“헤…… 헤헹……! 멋져……? 멋져? 대단해?”
릴리는 뭘 그런 것 가지고, 라는 표정을 연출하려 했으나 아무리 봐도 우쭐한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얼굴이 된다. 그렇다. 릴리는 손을 붙잡힌 채로 엄청 기뻐하는 중이다.
“그야…… 그야 당연한 거지! 다들 노력하면 나처럼 될 수 있다구! 나는 대─단한 것도 아니야! 으음!”
이런 프라이드가 독선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끝없이 감시해야 한다는 점은 상당히 피로한 것이었으나…… 릴리의 지성이라면 충분히 무리 없이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내 기준으로는 건물주씩이나 되면서 사적인 빚을 갚기 위해서 일을 하는 당신 정신이 더 감탄스러워 보이거든……. 크흠! 아무튼, 연구가 진전되는 대로 연락하겠어. 뭐, 엉터리 자식이 만든 거라서 그럭저럭 쓸모 있는 성과는 안 나올 것 같기는 하지만…….”
이미 그 망할 유물의 효과는 검증된 바가 있다. 착용자의 의사를 지배해 각성 상태로 만들고 주변인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게끔 하는 것. 연구할 요소가 있다면……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사물에 의식을 깃들게 만들었냐는 것……. 정령을 통한 눈속임이라면 들여다볼 가치도 없겠지만, 만약 그것이 연금술을 통한 성과라면, 꽤나 위험한 녀석이 되겠다.
“길바닥의 돌멩이에도 연구 가치는 있으니까 말이지. 또 재미있는 게 생기면 따로 알려주지.”
더해지는 가속도. 뒤에서 멀어져만 가는 외침. 그리고 데구르르ㅡㄹ르 구르기만(물리) 하는 카사. 훌륭히도 푸른 고슴도치의 의지를 이어간다!
세탁기 드럼통마냥 빙글빙글 돌아가는 머리통에 제대로 된 생각하나 까꿍하고라도 나올 새가 없다. 그럼에도 혼잡한 카사속에도 직감 하나 정도 비집고 갈 틈새 정도는 있었다. 그 직감은 매우 간단하였다.
이러다 죽는다아아아아!!!!!
어떻게든 멈추지 않으면 매우 매우 큰일이 날텐데, 세상도 돌아가고 정신머리도 돌아가 타 개법을 생각하기는 커녕 그런거 떠올릴새가 없었다!
"으아아아ㅏㅇ아ㅏ아아ㅏㅏㅏ "
신이 인도한 듯한 순간이었다. 잘도 굴러 내려가던 동그란 적색 공, 마지막 순간에 어긋난 돌벽에 부딫힌다. 퉁, 하고 허공에 붕 뜨는 카사공! 그 아래는 낭떨어지! 카사가 할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저 물리법칙이 카사공을 절벽아래로 중력의 스램 덩크슛을 날리기를 기다릴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행이도! 인간이란 무엇인가! 서로를 도우며 위기를 헤쳐나가는 존재! 멀리서 하늘머리 소년의 다급한 의념이 쏘아져나간다!
그것은 행운이었을까, 운명이었을까? 타이밍의 신이 안도한듯, 99%의 힘이 정확히 카사를 강타한다!
비명이 뚝, 끊어진다. 이미 카사의 몸은 땅을 떠났건만, 슬슬 뭔가 해보려던 중력이 밍기적거리다 돌아간다. 그러니까, 절벽에서 일이센치 떨어진 공중부양 상태란 말이다. 극도의 속도 감소 디버프! 그것의 효과는 굉장하였다! (카사 자체가 더 이상 움직이지도 못하는 것은 정말로 사소한 단점이었다.)
...하튼 그런 상태의 굳어진 카사. 그리고 같이 푸른 고슴도치의 의지를 잇다가 엎어져 있는 청천. 아무도 움직임도 없어 그 둘의 산책로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사랑이 그런 초능력까지...?! 뭐야 몰라 대단해. 사랑이란 거, 생각보다 대단한 초능력이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며 뜻깊은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린다. 하긴, 할멈 침대아래의 소설에서도 남주인공이 걍 '헛! 엘리샤가 위험햇!'하곤 했으니까.
사랑이란거, 생각보다 대단한가보다. 무기화는 가능할지 고려해봐야 겠다!
"나, 나랑....!?"
맙소사! 자동문(?)에 태연히 들어가는 하루를 보고 동공이 팝핀을 춘다. 맙소사! 두 손으로 입을 가리다가, 심각한 표정으로 땅을 바라보다가, 다시 하루를 안절부절한 모습으로 쳐다보는 것을 무한히 반복한다. 맙소사맙소사!
달칵. 하루의 손 아래 간단히 원위치하는 턱이었지만, 마음의 동요는 멈추지 않는다. 뱅글뱅글 돌던 동공이 앞으로 나오는 정령의 모습에 굳는다. 그러다가, 수축한다. 왜냐하면...
"귀, 귀신...!? 하루!! 도망가야해!!!"
둥둥?! 뜨고있다?! 혼령?! 집의 혼령?! 뱀사슴에 모자라서 이제는 하루의 집까지?! 때려도 사라지지 않는 혼령은 너무 너무 싫었다! 매너모드에 돌입한듯 떠는 와중에도, 본능이었을까, 하루를 낑차낑차 자신의 뒤로 보내려고 한다. 딱히 무서운 건 아니였다! 그저 때려도 퇴치를 못하지 않는가!! 이미 죽어있으니 죽일수도 없고! 최악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논리적인 반응이다!
...그렇게 털을 부푸는 애기고양이 마냥 경계하던 카사, 혼령(?)이 심드렁하게 예의바른 인사를 꺼내자 경계가 슬그머니 사그라든다.
"...루아?"
하루'님'과 카사'님'? 멍, 하니 정령을 꿈벅꿈벅 바라보다, 어째서인지 태연하게 답하는 하루의 모습에 눈에 띄게 경악한다. 입을 쩌억 벌리며 도리질을 하다, 이제 눈살을 찌뿌리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결국에는 위험지역(?)에 태평히 들어가는 하루를 믿는다고 결정했는지, 이해한게 적은게 분명해도 쫄래쫄래 하루를 뒤쫒는다.
...로 평화롭게 끝나는 것 같았지만... 떠나면서도 부릅, 눈을 뜨고 혼령(아님)을 노려본다. 척, 두손가락을 들어 본인의 눈을 가르키고, 휙, 그 손을 돌려 정령을 가르킨다. 흠. 지켜보고 있으니 허튼 짓하지 말라는 뜻인가. 바로 직후에 날카로운 이빨을 뽐내듯 드러내는 것을 보고 있으니 아마 맞는가 보다.
물론 다시 하루에게 고개를 돌리면, 이를 드러낸 것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뚱멀뚱 순한 표정이었지만 말이다. 의도된 내숭인지 몰라도 참. 나름 맑은 눈으로 하루의 손을 조심스레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