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양지에 장기간 놀러왔다고 해도 매일 물에 들어가 노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물놀이가 재밌긴 해도 알고보면 체력을 상당히 잡아먹는 운동에 가깝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니 하루 이틀쯤 지나 낮에도 해변에서 노는 학생들의 수가 눈에 띄게 적어진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거다. 그만큼 노는 사람 하나하나가 눈에 띄어도 이상하지 않았을거고.
그녀는 어느 쪽이었느냐 하면 단연코 물에서 노는 쪽이었다. 혼자 뭘 그렇게 할게 있다고 그런지, 남들보다 수심이 깊은 곳에서 첨벙거리며 잘만 논다. 때때로 움직이지 않고 물 위에 떠있기만 하는데 그것마저도 즐거운걸까. 물살에 흔들흔들, 몸을 맡기고 있다가 휙 돌아서 수면 아래로 쑥 들어간다. 인어의 꼬리 대신 하나로 묶은 은빛 머리칼을 수중에서 살랑거리며 바닥을 훑는 장난을 치다가 멀찍이에서 불쑥 튀어나온다. 그리고 또 첨벙첨벙. 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혼자서 참 잘 노는구나 싶고도 남을만큼 그녀는 헤엄과 잠수를 반복하던 중이었다.
"...슬슬 가볼까..."
한창 잘 놀던 그녀가 그렇게 중얼거린 건 저번과 비슷한 타이밍이었다. 그 때는 미지의 길을 개척하러 갔다면 오늘은 가고자 하는 곳이 딱 정해져 있다는게 다를까. 아니다. 그 땐 혼자가 아니기도 했지. 오늘은 그것도 다르겠구나 생각하며 해변으로 헤엄쳐 나온다. 물을 뚝뚝 흘리는 머리를 대충 털고, 모래사장에 던져놨던 가디건을 집어 모래를 털고 슥 팔을 꿴다. 식었던 몸에 닿는 따끈한 천의 감촉이 마치 타인의 체온이 닿는 것 같아 팔을 슬쩍 문지른다.
그 한순간이지만 오늘은 가지말고 일찌감치 그의 방문이나 두드려볼까 싶기도 했으나. 곧 생각을 바꿔 저택과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다. 갔다온 다음에 가도 늦지는 않을테니까. 누가 보면 쟤 어디가나 뭐하러가나 싶은 그 분위기를 그 날과 똑같이 흘리면서, 모두가 노는 곳에서 점점 멀어져간다. 사박사박 걸어가는 뒷모습은 불러세우지 않으면 멈추지 않을 듯 보였을거다.
로켓을 찾으라고 한 교감선생님의 말에 지하로 들어가는 문(?)을 찾으려다가 그 로켓이 그 로켓이 아니라는걸 깨닫고 그는 머쓱하게 진지하게 로켓을 찾기 시작한다. 그래도 눈에 당장 띌만한 것은 없다는 것일까? 그는 일단 아현을 제외하고 다른 아이들을 싹다 동원해서 별장을 쥐잡듯이 뒤지기 시작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어 보였다.
"음....."
이제 애들을 다 해산시켜서 당장 할 것도 없었는지 그는 이제 남은 구석을 최대한 뒤져보기로 했는지 그는 천천히 한 구석으로 손을 뻗었다. 교감선생님이 시켜서 한 건인지라 자신에게 해당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더이상 애들을 부려먹기도 미안해서인지는 몰라도 그는 최대한 구석구석 뒤져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쓰레기처럼 보이는데? 그는 그렇게 조용히 중얼거리며 이게 뭔지 서둘러 연구를 해보려 했으나 그러다가 이거 또 흠집이나 다른게 나면 분명히 교감선생님에게 경을 칠거라고 생각을 하며 그는 별 수 없다는 듯이 부엉이를 불러다가 씨익 웃어보인다음 그대로 그걸 부엉이 편에 묶어 날려 보냈다.
존재 자체가 가문의 오점이 되어 버린 누군가. 가문의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로 각인이 되는 한, 영원히 오점으로 남을 그. 그가 지은 죄가 무엇이길래. 그런 단어로 불리게 된 걸까. 자신이 알 수 있는 영역도 아니었으며, 몰라도 되는 부분이었지만. 설명하기 힘든 불편함에 스베타는 그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복잡한 생각은 하지 말자. 지금은 그저 로켓을 찾으러 왔을 뿐이니. 스베타는 고개를 내저으며 긴 한숨을 내쉬고서 방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그가 들고나간 것이 아니라면. 이 별장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텐데. 이내 스베타는 책장 틈새와, 옷장들의 아래를 살피기 시작했다.
단태는 민의 얼굴을 마주하다가 고개를 슬그머니 한쪽으로 기울였다.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행동이었다. 자신에게 익숙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이해못할 것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기한테 보름 때의 나를 보여주는 건 옳은 일이 아니였던 것 같네." 주단태가 턱을 매만지던 손을 잠시 허공에서 멈췄다가 자신의 어깨에 얹었다. 방음마법이 걸린 공기를 담담한 울림이 진동시켰다. 위로를 받고 힘든 티를 내고 엄살을 부리고 의지를 하고. 친절함을 베이스로 하는 선함은 무구했다. 단태는 그제서야 왜 이렇게 이 아이가 신경쓰이는지 알 것 같았다.
보고 있으면 본가의 무구하고 어린 생명과 겹치기 때문이다. 차마 미워할 수 없는 선함. "서로의 이해자가 될 수 없으면 친구가 될 수 없어. 자기야." 평행선을 그리는 관계에서 결코 서로의 이해자가 될 수 없는 자신의 단짝을 떠올리며 무감하게 재잘거렸다. 단태는 자신처럼 걸음을 멈춰서 바라보는 민을 응시하며 빈손을 노크하듯 허공에 머물렀다. 걸었던 방음마법을 잊지 말라는 가벼운 제스처였다.
"어차피 알게 될 것을 굳이 알리지 않은 것 뿐이야. 어른이 없는 곳에서 후배를 보호하는 건 선배의 몫이니까."
재잘재잘 떠드는 목소리는 평소처럼 느물거린다. 뱀이 혀를 낼름거리는 것처럼 히죽- 하니 웃으며 단태는 허공에 머물렀던 자신의 손을 거둬들였다. 그렇게 보이지 않았지만 주단태는 최대한 말을 고르고 고르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천성과 본성이 선하지 않다고, 친절함을 베이스로 하는 선함을 부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깜빡이던 눈이 민에게 꽃혔다. 허상이라는 말에 반응한 것이다.
"네가 보는 게 허상이라면."
굳이 떨어진 물건을 주워 손에 올려주는 민의 행동에 핀을 꽉 쥐면서 단태는 입을 열었다. 느물하게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어쩔 셈이지?" 혼잣말과 같은 물음이었다.
"나에 대해 알게 된 이상, 노력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널 내버려둘 생각은 없다고 하면 뭐라고 답할래, 응? 민아."
능청스럽고 능글맞은 느물느물한 표정으로 단태가 걸음을 앞으로 내딛어서 거리를 가까이 하고 고개를 숙여 시선을 맞춰왔다. "아까도 말했듯이, 너는 내 비밀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거든." 하고 덧붙히는 목소리가 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