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아마린 색 머리카락의 소녀의 손을 붙잡고 나타난 리안이 역시나,라는 듯이 좌중을 둘러본다. 모든것을 해결한 듯 소년 소녀들은 홀가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드디어 자신이 의미한것을 모두 깨달았다는 것이냐는 듯 리안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고, 그들은 말없이 손을 내밀어보였다. 하연또한 그 분위기를 눈치 챈 것인지 천천히 손을 내밀었고, 꼭 부여잡은 손에서는 따스한 온기만이 넘쳐흐른다.
저번에 발렌타인과의 대화에서 다친게 떠오른 것인지 케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지만 그렇게 크게 다친것도 아닌데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판단한 건지, 리안이 어깨에 손을 얹어주고 미소를 지어보인다.
"야, 너 적당히해라!? 다음은 나라고?" "다음 사람들 부담 주지말라고요! 아저씨!!" "힘내세요!"
그들을 뒤로 하고 케인이 당당하게 무대위에 올라선다. 많은 이들이 와 있는것이 눈에 들어온것일까, 단 4, 5분 남짓의 시간이지만 이렇게 떨리는건 너무나도 오랫만이라고 생각하며, 케인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라이브 콘서트 첫 타자를 맡게 된 케인 아우스트라리스입니다!! 이렇게 많이 모였을줄은 몰랐는데 다들 이렇게 콘서트를 기대해주셨다는거라고 생각하고 부끄럽지 않은 무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오히려 무대에 올라서자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일까? 케인은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심호흡을 한 그의 목청이 한번 크게 터져나왔다.
"부장!! 너 나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다들 당황한 눈초리였지만 오직 리안만이 평온하게 무대위를 올라서며 어깨를 들썩인다. 어젯반에 잠깐 심심해서 타로카드를 들춰봤는데 케인을 가르키던 카드는 다름아닌 달의 역위치였다는걸 떠올린 것일까, 그는 웃으며 천천히 무대위에 자리를 잡는다.
"부르셨나요?"
리안이 올라오자마자 바로 상체탈의부터 하는 모습을 조용히 리안이 지켜본다. 가볍게 몸을 풀며 준비된 상황인걸 연출이라도 하듯이 그가 히죽웃으며 말한다.
"스파링하기엔 좀 이른 시간이죠?" "어울리는 무대도 아닌데요?" "전적이 얼마였드라요?" "101전 50승 50패..... 1무!"
둘이 주먹을 휘두르며 그대로 크로스카운터를 내듯 서로의 주먹을 부숴질듯 부딪힌다. 아픈팔에도 불구하고 저정도로 힘을 낸다는 건, 리안이 그만큼 지금 그의 무대에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의 기대에 호응하듯 그의 입가로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전에 자신의 친구가 노력했다는걸 기억해낸 것일까. 그는 노래에 진심을 담아내며 음율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울것같은 얼굴로 한탄하는 낮은 하늘 하릴없이 시간만 지워내. 토해낼 장소도 없는 추억을 집어 삼켜서 짜증어린 침을 뱉어."
가장 처음으로 부장을 만나기 전의 시절의 자신의 모습이었다. 가문에서도 학교에서도 부적응자라고 놀림 받고, 그저 주먹을 내키는대로 휘두르다가 조금 쓸모가 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바로 동화학원으로 쫒기듯 입학한 자신의 모습 그 자체였다.
"모든것이 부서질 것만 같은 불안을 안고 내일을 두려워해서"
그것은 학교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결국에는 여러번 혼나기까지도 하고 벌점도 많이 생겼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았다. 자신은 그렇게 사는게 일상이었으니까. 여기에서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있을곳 따위, 찾을까보냐.
"그 다음날만을 보고있었다고 대답이 나오질 않는다는 것쯤 알고있어"
그때 부장이, 리안을 처음으로 만났다. 서로 껄렁하게 있을곳을 찾지 못한 자들이 처음으로 손속을 나누었던 날이었다.
"끝도없이 펼쳐지는 새하얀 내일에 무엇을 그리나 현실이 물들어가는 새까만 내일에 무엇을 그리나 발버둥쳐 반짝거려"
그리고 그는 화려하게 져버렸다. 난생 처음으로 발라당 드러누워 하늘을 본 날이었다. 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과 부장의 첫 인연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어느순간 부장이 싸울 준비를 마친건지 그를 바라보고 싱긋 웃었다. 음율을 이어나가면서, 그 둘이 격돌한다.
"고민하고 있는 자신이 왠지 촌스러워 보여서 가만히 있지 못하고 도망쳐"
리안의 주먹이 그대로 그의 어깨를 강타하지만 별로 상관 없다는 듯이 그의 선율이 이어지고.
"하고싶은것? 그런거 없어! 옥상에서 남몰래 입에 문 담배
케인의 머리가 그대로 리안의 머리를 강타해버린다. 막싸움이나 다름없는 그 상황을 학생들은 홀린듯 바라보고 있었다.
<clr red black>"왠지 재미없어, 오늘의 식당 안. 걱정하는 듯한 눈으로 보고있는 My men"
처음 방송부를 해보자고 이야기 했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그와 동시에 그가 품안으로 파고들며 어퍼컷을 날리려 하고,
"'안울어'라고 내뱉고 강한척해봐도 정말로 힘들어"
케인이 살짝 뒤로 빠지며 그대로 그의 가슴팍을 향해 돌려차기를 날린다. 가슴팍이 비었던 것인지 리안은 그대로 뒤로 주욱 밀려나며 히죽 웃어보인다.
"다녀서 익숙해진 어슴푸레한 거리, 겨우 생각났어 샀던 iPod 겉멋뿐인 얇팍한 랩, 어째서인지 무거운 얇기만한 가방"
그래, 부장, 난 당신의 그 웃음에 이끌렸어. 존재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만들정도로 강렬한 사람, 당신의 등뒤를 바라보고 달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할 거 같아.
<clr red black>"부드럽고 따뜻할 터인 장소. 무겁고 괴로워서 새벽에 열어놓은 창문. 압박에 짓눌려버릴 것 같아서 도망쳐 나온 언제나의 공원.
자신에게 있을 곳을 만들어준 당신에게 감사해, 이것은 지금 내 모든것을 태우고도 남을 불꽃 ─그가 그대로 리안을 향해 래리어트를 날리고, 리안은 그의 래리어트를 맞으면서도 다리를 걸고 넘어지려 한다.
<clr red black>"모든것이 부서질 것만 같은 불안을 안고 내일을 두려워해서 그 다음날만을 보고있었다고 대답이 나오질 않는다는 것쯤 알고있어."
서로 알고 있다는 듯이 리안은 래리어트로 던져지면서 그반동으로 재차 일어나고 케인은 다리를 걸고 넘어지는 자세 그대로 미끄러지듯 윈드밀을 돌며 자세를 잡는다. 그 와중에도 케인의 입은 쉴새 없이 선율을 자아내고 있었다.
"끝도없이 펼쳐지는 새하얀 내일에 무엇을 그리나 현실이 물들어가는 새까만 내일에 무엇을 그리나 발버둥쳐 반짝거려"
리안의 입이 들썩인다. '아직 괜찮지?'라고 말하는 말에 그가 씨익 웃으면서 선율을 이어나간다. 처음부터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지금 그는 여기서 내뱉고자 하고 있었다.
"끝이 있는 약간의 시간의 안에서 서투른 자신의 그림, 지금은 아직 그것으로 됐어"
그 순간 다시 한번 그들이 달려들어 주먹을 휘두른다.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싸움이 점점 종막을 향해 가고 있었다.
"끝도없이 펼쳐지는 새하얀 내일에 무엇을 그리나 현실이 물들어가는 새까만 내일에 무엇을 그리나 발버둥쳐 반짝거려."
땀으로 번들거리지만 그들은 분명히 지금 빛나고 있었다.
<clr red black>"끝도없이 펼쳐지는 새하얀 내일에 무엇을 그리나."
서로의 주먹이 그대로 맞부딪히며 새하얀 빛으로 물들어 가고,
"현실이 물들어가는 새까만 내일에 무엇을 그리나."
서로의 주먹이 휘둘러질때마다 불안했던 어둠을 지워나가며 색채를 입혀간다.
"발버둥쳐 반짝거려"
그리고 드디어 서로의 주먹이 그대로 서로의 급소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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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아아!!
수많은 함성과 함께 케인의 눈이 떠진다. 속이 후련했다, 여지껏 하지 못했던 말들을 싹다 쏟아낸 듯한 기분에 그의 입에서 호탕한 웃음이 터져나왔다. 졌다, 졌지만 기분이 너무나도 속시원했다. 땀에 젖은 리안이 천천히 그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고, 그는 천천히 내민 손을 잡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헷, 졌수다. 102전 50승 51패 1무입니다!" "아니, 네가 이겼다. "에?"
리안이 천천히 손을 뻗자 그의 시선 끝에 열광하는 관중들이 눈에 들어왔다. 케인의 어안이 벙벙한 모습에 리안이 살짝 밀어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