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하. 그쵸? 리 사감님은.. 음. 보기만 해도 좀, 힘들어 보이신다고 해야 하려나요.."
지금의 리 사감님이 그렇게 당한다면 다음대 리가 될 사람도 그런 과정을 겪어야 하는걸까. 상상해보니 조금 소름이 돋았다. 아무리 목숨을 맡겨둔다고 해도 일단 살아는 있으니 아픔이라던가 하는 걸 더 잘 느낄 것이다. 이거. 전에 그 특제 요리를 조금 더 성의있게 만들어야 했나. 츄르를 마치 시멘트 반죽 펴 바르듯 거칠고 질척거리는 느낌으로 발랐던 그 정체불명의 음식이 머릿속에서 떠올라 조금은 멋쩍은 웃음이 터져나왔다. 음. 그래도 백호님이 맛있게 먹었다면 그걸로 그만.. 이겠지. 그렇고 말고.
"어라~ 그렇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겠네요! 잠시 죽었다가 금방 살아나는 기분을 느끼게 되는 걸까요? 뭔가 엄청 새로울 것 같아요, 그거."
죽으면 인생은 끝인데, 금방 다시 살아나게 된다면 분명 사후세계가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사감 자리에 앉게 된다면, 귀여운 학생들에게 사후 세계 이야기를 해줄수 있지 않을까. 조금 엉뚱한 곳으로 주양의 흥미가 흘러갔다. 벌써부터 학생들의 표정이 대강 짐작이 되었다. 분명 청을 거는 것보다.. 재미는. 글쎄. 주양의 표정이 살짝 진지해졌다. 분명. 꽤 허전할 것이었기에. 모든 게 다 끝이 난다고 해도, 청은 청으로써 제 곁에 남아야만 하는데.
".. 어머나."
아. 내기. 먼저 걸어주었다. 꽤 놀라운 경험이었다. 늘 자신이 먼저 남들에게 내기를 숱하게 걸어본 적은 있어도, 이렇게 직접적으로 먼저 내기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게다가 먼저 다른 조건을 걸 줄이야. 역시, 사감님은 조금 다른 걸까. 같은 겜블러끼리는 뭔가 통하는 게 있는 것일까. 용기는 매우 가상했다고 하려 했으나, 어른에게 쓰기에는 조금 이래저래 맞지 않겠지.
당신의 쓰다듬을 받으며 >.< 하는 걸맞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이래저래 색다르면서 신기한 느낌이었다. 아아, 사감님이라는 자리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청 대신 자신의 내기에 몇번이고 걸리고도 남았을텐데. 조금은 아쉬운 탓에 주양은 입맛을 다셨다. 그러면서도, 조금은 차분하게 웃었다.
"이게 이렇게 되어버리면.. 저는 조금. 나쁜 사람이 될 수밖에 없겠는걸요? 아니. 원래도 그닥 친절하지 못한 사람이니까. 사감님이 설득에 실패하시고 제가 다음 대 건이 되지 못한다는 데, 청이를 걸게요."
진지하고 차분한 목소리. 그러면서도 담담한 느낌의 목소리로 말하며, 주양은 다시 조금 비열한 미소를 지으면서 청을 쓰다듬었다. 항상 자신이 이길 거라고 당당하게 선포하던 모습과는 조금은 다른 분위기의 것이었다.
당신이 이야기한 대로 사감보다 오래 사는 동물은 없다. 청 역시 그럴 것이다. 분명 졸업 후에도 몇년간은 자신의 곁을 지킬테지만, 그 이후에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사감이 되지 않아도. 그리고 사감이 되더라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평생 내기에 걸었던 무심한 주인 곁에서 남은 여생을 낭비하는 것보다, 자신만의 자유를 찾아. 저 하늘을 날며 남은 여생을 즐기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그냥 날려보내며 작별을 고하는 것은 미련이라는 대단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상한 기분만을 남길 뿐이니, 이왕이면 완벽한 작별을 고하는게 낫지 않을까. 당신이라면 충분히 자신을 이기고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테니까. 지금만큼은. 그 뜻에 반대되는 나쁜 사람이 될 수밖에.
".. 이기실 수 있겠어요? 사감님. 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서 밀이예요."
그러니. 인생에 찾아올 또 한번의 큰 기복을 위해. 부디 자신을 꺾어주기를. 악인들이 으레 그랬듯, 옳은 뜻 앞에 무참히 부러질 수 있기를. 그 과정을 통해, 영원까진 아니지만 영원 가까이 다가갈 겜블러에게서, 영원하지 못할 내깃돈을 가져가서 그 굴레에서 해방시켜줄 수 있기를. 당신과의 대화 이후로 생긴 또 다른 마음은 그렇게 한 없이 커져만 갔다. 주양은 그 어느때보다 해사하게 웃었다. 마음 쓰지 않아도 된다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친절하셔라~ 뱀은 무섭지 않지만 물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조심하도록 할게요! 아아, 사감님계서 저랑 비슷한 나이이셨다면 청 대신 제 내기에 걸어보는건데. 조금 아쉬운걸요?"
호박 주스를 받아들며 언제 진지했냐는 양 다시 상큼하게 한쪽 눈을 찡긋였다. 친절하기도 하고. 먼저 조건을 걸며 내기도 제안하고. 이런 감정기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사감이라도 내기에 걸어볼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갔으나 역시 사감님은 사감님이니까 그럴 순 없을거라고 생각하며 미련을 지웠다.
>>965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 그치고 나면 분명히 더울 거라는 걸 알지만 비 내릴때의 시원함은 그 사실도 잊게 만들어주더라구! 맨날 습해서 싫어했는데 이렇게 시원하게 내려주는 비는 이야기가 다르지!
>>966 헉 엘롶이 구몬이다..! 밍주가 구몬경찰이 된 덕분에 좋은 구경 했는걸~ (?) 역시 개인적인 공간만큼 좋은 건 없지! 집이 편한 것처럼 기숙사가 집인 학생들한테는 기숙사가 편한거야~ 랄까 3번째 질문이.. 무례하지만 흥밋거리 삼지 않을테니 들려주지 않을래..? (엘롶:쭈주 나가)
낯설어서 무섭다는 민의 말에 단태는 물음을 던졌다. 여전히 잘 골라낸 조개 껍데기가 단태의 손아귀 안에서 굴러다니다가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방음 마법 때문에 목소리를 낮출 필요가 없음에도, 단태는 느물한 목소리를 낮추고 꽤나 다정다감하게 속삭였다. 익숙해져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 순혈 가문들 사이에 흐르는 고집스럽고 쓸때없는 아집과 같은 것들. 가령, 우리네 가문에 전해지는 본성과 천성을 아로지르는 규칙과 원동력이 되는 신념같은 것들. 좋게 말하면 이념싸움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아집으로 이뤄지는 폭력과 같은 것들. "민아." 자기야, 달링- 하는 낯간지러운 호칭 없이 단태는 똑바로 이름을 불렀다.
반으로 쪼개진 조개껍데기가 모래성에 안착한다. 주단태는 이 후배를 판단해야만 했다.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성향인지. 도망칠 사람인지. 도망치지 않고 지금처럼 계속 머무를 사람인지. 자신이 졸업하게 되면 더이상 보지 않을 사이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남은 학년동안 믿을 수 있을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