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 머릿속을 새하얗게 날려버릴만큼 화려한 옷의 무늬 탓이었을까. 평소의 그녀라면 상대가 어디서 본적있는 사람이라는 걸 금방 깨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겨우 놀란 걸 수습하고 적당한 말을 하는 것에 집중했던 탓인지, 구면 아닌 구면이라는 걸 들은 뒤에야 눈치채었다.
알았다는 표정을 지은 그녀는 푸른 머리칼과 선글라스 뒤로 드러난 붉은 눈을 보고 가장 최근의 사건을 떠올려냈다. 시체 마법사에게 일격을 가하는 순간, 그녀처럼 그 마법사의 가까이에 있던 사람이다. 처음과 마지막이었을 거다. 분명. 그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이라 쉽게 매칭이 되지 않지만 저만한 외적 특징을 가진 사람을 그녀는 달리 알지 못 했다. 상대도 마주쳤다고 말하고 있고. 그러니 같은 사람이라 간주하기로 하며, 익숙치 않은 호칭으로 저를 불러대는 상대를 빤히 보았다.
"우연히, 같은 자리에 있었을 뿐인걸요. 두번 다."
두번이라는 건 그 전, 버니의 사건 때에도 있었던 걸까. 다시 생각해보려 해도 그 때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최근에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보다. 아니면 좀더 비중이 커진게 있거나. 두말 할 것도 없이 있었지만.
"그러세요. 남에게 보인다고 해서, 찔릴 것도 없거든요."
굳이 동행을 해야겠다는 상대의 말에 그녀는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전혀 켕길게 없으니까 제법 당당해보였겠지. 아니면 동행한들 상대로서는 아무것도 못 할거라고 생각한 걸까? 어느 쪽이든 그녀는 가던 길을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금방이라도 발을 뗄 듯 하면서 상대가 가까이오는 걸 지켜보다가, 상대의 능청에 동의나 그런 말 대신 자기소개를 돌려주었다.
"펠리체 스피델리, 백궁, 4학년이에요."
원래라면 먼저 소개를 하지 않았겠지만 최근에 이래저래 할 일이 많았다보니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잘 모르면 알아가면 되는거고. 어련히 알아서 소개를 되돌려주겠거니 생각하며, 그녀는 멈췄던 발을 떼어 걷기 시작했다.
레오는 주양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채로 느리게 숨을 골랐다. 평소같았으면 바로 일어서서 주먹을 먹여줬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친 체력이라도 조금 보충해야하니까. 레오는 손을 들어 두 손가락으로 주양의 입술을 톡톡 치는걸로 마무리했다. 잠깐 사이에 10년은 늙은 기분이다. 아침이 오고 낮이 밝으면 다시 가서 그림을 확인해봐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진 않았다. 숙적과의 싸움이라면 대부분이 이런것들이었다. 결국은 서로에게 피해가 가며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영광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목숨을 걸고 하게되는 것들.
" 아이씨.. 하지마. 하지말라고! 쳐죽여버린다 너 "
머리를 건드리는 손을 몇 번인가 쳐내다가 잡은 레오는 잡은 손을 입으로 가져와 물어버릴까 하다가 그럴 힘도 없었기에 그냥 잡은 손을 가슴팍에 올려두고 느리게 숨을 고를 뿐이었다. 5분의 잠깐 쉬는 시간이 이렇게 간절했을줄은 몰랐지. 반대쪽 복도역시 다녀와야할텐데 정말 가고싶지 않았다. 이쪽 복도에서 그런걸 봤다면 저 쪽 복도에도 그런게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 잡았던 손을 놓고 레오는 몸을 돌려누웠다.
" 반대쪽 복도 정말 갈거야? 미리 말하는데, 꼬리말고 싶으면 지금이 기회다? 뭐 도와준다던가 그런거 없다? 지금 꼬리말고 그만하자고 하면 이해정도는 해줄지도 모르지. "
허벅지에 얼굴을 묻은 레오는 확 그냥 물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이내 그만두고 점점 퍼져가는 자신의 몸상태를 느끼고 있었다. 퍼진다. 이대로 잠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만 여기서 잠들었다간 정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먼저 잠이 조금 달아났고 지금은 평생의 숙적과 겨루고 있다는 생각에 잠이 완전히 달아났다. 슬슬 출발해야하나. 레오는 '엇차-'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 아니야. 하기로 한 건 끝까지 해야지. 야, 개밥. 일어나. 출발하게 "
방을 나올때도 말하지 않고 몰래 나왔다. 다시 말하면 이대로 사라지는 일이 생긴다면 다음 날 아침이 될 때까지 아무도 모른다는 이야기지. 레오는 발목을 돌려주고 어깨를 돌렸다. 가볍게 몸을 풀어주곤 반대편 복도를 바라보았다. 역시 엄청난 어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기억상으로는 양 쪽 끝에 계단이 있었지. 뭔가 좋은생각이 났다는 듯이 레오는 오. 하고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쳤다.
두번 다 우연이라고 이야기하는 여학생의 모습에 주단태는 헤죽, 능청스럽고 능글맞게 미소를 짓고 그 뒤에 다시 선글라스를 다시 고쳐썼다. 그 뻔뻔스러움이 자연스럽다. 상대가 자신의 능청스러운 자기야라던가, 달링이라는 호칭에 대해 반응이 없더라도 상관없었다. 늘 그랬듯이 단태는 꽤나 마이페이스였으니까.
어쨌든, 단태는 여학생의 말에 느물느물하게 잔뜩 풀려있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오, 자기야. 물론 우리는 우연히 두번을 만난 건 맞아! 하지만 이런 말이 있잖아? 우연도 세번이면 인연이라구~ 그러니까 자기랑 나는 세번째 만났으니 이제 인연이라는 거야. 아! 물론 인연임과 동시에 운명일지도 몰라~ 안그래?"
선글라스를 쓴 채, 단태는 능청스럽고 능글맞게 흥얼거리는 것처럼 여학생에게 흐트러짐 없이 뻔뻔한 태도와 말투로 대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뻔뻔한 자세였다. 흔쾌하게 동행해도 좋다는 대답이 들리자, 헤죽- 웃는 게 화룡정점이다. 아 그래. 자기처럼 예쁘고 아름다운 사람과 인연을 맺다니 너무 기쁜걸~ 하는 말이 추임새처럼 따라붙은 건 당연했다. 단태는 여학생의 옆으로 다가섰다. 사실 동행을 제의한 이유는, 그닥 없다. 물놀이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앉아있는 건 주단태의 성격상 힘들었을테니까.
"자기 이름이 펠리체구나? 생긴 거처럼 굉장히 이름이 예쁘네~ 아! 그래. 맞아. 내 소개를 안할 뻔했네? 현궁 5학년, 주단태라고 해~ 이렇게 보여도 이름만 이럴 뿐이지, 여학생이고~"
전혀 그런 생각을 안할텐데 단태는 쓸때없는 말을 덧붙히며 걸음을 옮기는 펠리체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그래서 우리 자기는 어디가는걸까? 이미 동행해버렸지만 동행해도 되는 자리가 맞는거지? 달링? 하고 느물하게 이어지는 목소리는 역시, 능청스럽다.
//답레가 짧은 이유를 알았다. 나 주단태의 심리를 하나도 묘사를 안하고 있었다. 자꾸 짧은 답레를 줘서 미안하다.....o<-< 날 매우 치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