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쭈, 이것봐라. 안밀려? 레오는 주먹을 쥐고 더 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어둠속에 있을 무언가에게 이목을 끄는 것은 이쪽에서도 사양하는 바이다. 다른 기숙사의 학생들은 유령을 자주 보아서 괜찮겠다지만 기숙사 유령이라고는 없는 주궁이다. 그리고 이런 초자연적인 것들하고는 도저히 맞질 않는다. 어둠은 무서웠고 저 속에서 보이지않는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거나 갑자기 발목을 잡는다거나 하면 정말 그 자리에서 기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아까부터 꼬맹이 꼬맹이 하는데. 너 말이야, 키만 크면 단 줄 알아? 진짜 쳐죽여줄까? 키큰걸로 유세떨지마 진짜 쳐죽여버리기전에. 알겠어? "
만날때마다 으르렁대는 사이였기에 이 정도는 인사치레나 다름없는 말이다. 예상대로 청을 두고 단 둘의 시간이 되었다. 겉으로는 '그렇지. 그렇게 나와야지!' 하고 말은 했지만 속으로는 이 쯤에서 그만두고 잠이나 자자는 말을 듣고싶었다. 이 정도에서 그만둬도 괜찮으니까 집에 가고싶어졌다. 주양이 뒤를 돌아있는 잠깐의 시간동안 레오는 잠시 마음을 풀고 푸.. 하고 울상을 지었다. 지금이라도 그만두자고 얘기해볼까? 어쩌면 먹힐지도..?
" 어, 어어? "
혼자 갔다온다는 건가. 레오는 순간 숨을 헉 하고 집어삼켰다. 그렇다는것은 여기에서 혼자 기다려야한다는 것인데. 주양도 혼자겠지만 레오도 혼자였다. 조금의 빛이 있지만 음산한 분위기가 잔뜩 들고 바람소리마저 스산한 곳에서 온전히 혼자. 가능할리가 없잖아. 레오는 주양이 자신의 손을 놓을세라 꽉 잡았다.
" 가,가,같이 가주지 뭐! 혼자 갔다가 기절하면 난 계속 기다려야 되잖아. 그런건 내가 싫거든? 일단 저 쪽 복도 끝까지 가는거야. 거기까지 가면 누워있는 여자그림이 있어. 눈동자가 초록색인 여자그림. 그것부터 확인하러가자고. 어때? "
레오는 놓칠세라 손을 더 꼭잡아 자신에게 당겨왔다. 출발하더라도 같이 가는게 더 낫겠지. 이런 어둠속에서 혼자 기다리느니 같이 가서 이 녀석이 나가떨어지기를 기다리는 편이 낫겠지. 낮 시간에 돌아다녀 봤을 때 이 복도는 꽤나 넓고 길었다. 양 옆으로도 방이 여러개가 있었고 끝쪽에 계단통이 있어서 위 아래로도 갈 수 있었지. 차라리 그곳이 밝으면 더 밝을테니 거기서 기다린다고라도 해봐야겠다.
"어머나~ 놀라워라. 그만큼 자신 있으시다는 건가? 응? 어머. 뭐지? 어디로 갔을까나 우리 꼬맹이~"
남들이 보면 진짜 사이 안 좋아서 저러는거 아니냐고 오해할만한 모습. 허나 그녀들에겐 이것이 일상이었다. 주양이 당신을 못 보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한껏 대담하게 턱을 치켜올리고 있는 탓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이 대목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당신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겠지만, 지금만큼은 당신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 천장으로 눈을 돌린다면 그 순간 천장에서 목이 뒤틀리고 관절이 꺾인 채 기괴한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무언가와 제대로 아이컨택을 하게 될까봐.
그렇게 기싸움이 끝나고 청을 자신의 방에 내려놓는 순간은. 주양마저도 표정이 풀어졌다. 푹 자자. 잘자라 우리 청 하고 부드럽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목소리가 떨렸다. 지금은 주양 자신이 청이 되고만 싶었다. 아. 이대로 그냥 드러누울까. 다음에 하자고 하고 치일피일 미뤄버릴까. 허나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복도로 다시 나온 상태였다.
"ㅁ.. 뭐야! 역시 너도 혼자 기다리기 무서운 거지, 그치? 아. 아니, 역시 혼자 기다리긴 무서웠구나, 꼬맹이..! 내. 내가 너의 보호자는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특별히..!"
평소답지 않게 홱 당신과의 거리를 좁히면서 주양은 애써 뻔뻔한 척 해 보였다. 자신도 기다리는 과정에서 무서웠다는 걸 말해버렸다는 것을 깨닫고 급하게 정정하는 것은 덤이었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분명 지금 장소와는 멀리 떨어져있을 응접실에서 기척이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은 애써 무시했다. 그래. 그저 기분 탓이겠지. 이 늦은 시간에 손님이 어디 있다고. 어떤 정신나간 손님이 이 밤중에 응접실에서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하겠어. 그런 생각들을 하며, 그 사실을 넘겼다.
"하. 너. 너나 기절하지 마시지! 내가 이긴걸로 판단하고 그냥 그 자리에 놔두고 돌아갈거라고! 그 여자 그림, 지금 당장 확인하러 가 보자고..!"
그렇게 당신과의 거리를 바짝 좁힌 채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루모스 마법을 쓰지 못한 채 어둠 속으로 나아가는 것은 굉장히 아찔했다. 내기에서 주는 기분 좋은 아찔함이 아니라, 꽤 불쾌한 느낌의 것이었다. 그것 마저도 충분히 즐기는 것이 주양이었으나 지금 뭔가를 즐기기엔 두려움이 훨씬 앞섰다. 그래놓고 나중에는 엄청 염통 쫄깃한 감정 기복이었으니 한판 더 하자고 할게 뻔했지만.
".. 그. 생각보다 별 거 없잖.. 아? 너. 다시 돌아가도. 정말 괜찮을 거 같은데? 이 정도로 내가. 기절할 것 같다고 생각한거라니~ 대체 날. 얼마나 얕보고 있던 거야..?"
괜찮을 리가. 당신과의 거리를 조금 더 좁히면서 손을 꽉 잡는데. 아마 정말 그렇게 해버린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찍소리도 못 낸채 서 있다가 혼자 푹 쓰러져 다음날까지 그대로 기절해있을게 뻔했다. 지금 이 복도가 원래 이렇게 길었던가 하는 느낌이 들 만큼 그 그림까지의 거리는 괜히 멀어 보였다. 마치 에스컬레이터 위에 올라탄것처럼 마치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 느릿느릿하게 나아가고 있는 영향이 클 것이다.
"여자 그림이라는 거. 분명 있는 건 맞지..? 너가 너무 무서워서 헛것을 본 건 아니고?"
10세, 열살. 아직은 세상에 대해 모를 나이지만 그래도 그건 알 수 있었다. 어머니가 데려온 막내는 정말 작고... 작구나, 라고.
어머니의 태중에서 채워야 할 달을 하나 반이나 덜 채우고 나온 막내는 당연하게도 몸이 너무나 약했다. 갓난아기일 때는 몇번이고 숨이 넘어갈 뻔 하거나, 조금 큰 후에도 툭하면 열이 올랐다. 하루 중 깨어있는 시간이 반의 반도 되지 않았으며 그나마도 열에 들떠 누워있는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막내는 단 한번도 울지 않았다. 어릴 때인데도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하는게 그 때문이다. 나는, 아니 우리 넷은 막내의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아기라면 당연히 툭하면 우는게 정상일텐데 전혀 울지 않았다. 어머니 말씀으론 아주 작게 칭얼대기는 했다고 하셨다. 늘 곁을 지키던 어머니에게만 들릴 만큼.
막내에게 뭔가 병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 집안이 몸이 약한 태생도 아니다. 나를 비롯한 세 동생은 정상적이고 건강하게 태어나 건강하게 자란게 그 증거였다. 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이유를 모른다. 찾아도 찾지 못 했으며 유일하게 어머니가 이유에 가까운 사실을 알고 계시는 듯 했지만, 그것만큼은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으실거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모르는 일로 남겨두는 쪽을 택했다.
아무튼, 막내의 이상증상은 10년간 질리지도 않고 이어졌다. 그 탓에 한창 놀아야 할 시기에 놀지 못 하고, 많은 것들을 경험할 시간을 허비했다. 그런 막내가 안쓰러워 우리가 곁에서 지켜봐주고 싶어도 일단 나부터가 학교에 가야 했다. 동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번 학교에 들어가면 방학 때에나 나올 수 있었으니, 막내를 돌보는 건 온전히 어머니가 하셨다. 그래서인가. 우리는 자연스럽게 어머니께 부담이 갈 만한 일은 하지 않게 되었다. 아예는 아니고 최소한으로, 가능한 일으키지 않으려 했다. 그럼에도 사고를 치면 아버지가 대응해주셨지만 몹시 죄송스러움이 내 안에 남곤 했다.
10세, 열살. 내가 막내를 처음 본 그 나이가 막내의 나이가 되던 날. 나는 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동시에 백수가 되었다. 원래는 오러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문득 회의감이 들어 그만둬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이건 내가 하고 싶은게 아니라는 생각이 컸다. 내가 그런 선택을 해도 부모님은 아무 말도 안 하시니 길게 고민하지도 않았다. 그 결과 졸업 후 할게 없어진 나에게 돌아온 건 막내를 돌보는 일이었다.
"뭐라도 좋으니 가르쳐주렴. 글과 말은 배웠으니 그 부분은 걱정 말고. 이대로는 키도 잘 크지 않을 것 같으니 체력이나 기르게 해주려무나."
어머니의 말씀대로 당시 막내는 겨우 평균적인 체형을 유지하는게 고작인 아이였다. 이 때에는 낯가림도 있어 가족 외 사람에게는 맡길 수도 없었다. 나로서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잘 돌봐주지 못 했던게 미안한 것도 있어서 거리낌 없이 막내 돌보기에 임했다. 어머니 조언대로 밖에 데리고 다니며 걷게 하고, 몸을 움직이게 하고, 그동안 못 했을 경험들을 시켜주었다.
재학 중 내가 잠시 집을 떠났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 당시 얻었던 매의 깃털을 선물해준 것이 이 해의 막내 생일 때다. 작고 여린 몸을 지키는 부적이 되어주길 바라서였다.
이 때부터 2년 가량을 내가 맡아 돌보는 동안, 막내는 우리와 비슷하게 자랐다. 평균 키가 큰 집안의 아이답게 금방 쑥쑥 컸으며, 가르쳐주는 건 금방금방 익혀서 가르치는 보람이 있었다. 바깥 경험을 시켜주니 낯가림도 없어졌다. 그렇다고 타인에게 무작정 살갑지도 않았지만. 장난을 치면 자지러지게 웃고 가끔은 성도 낼 줄 아는 보통의 아이가 되었다.
그렇게 보였고,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끝까지 믿고 싶었다.
그러나 2년 뒤 블리스가 졸업한 해에 나는 막내를 가르치는 것을 관두고 집을 떠났다. 도망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에서 도망쳤는지는...
달리 할 것을 정하고 나간 건 아니다. 무작정 집을 나와 방랑길에 올랐다. 그저 집이 아닌 곳이면 어디든 좋았다. 그렇게 내가 떠난 동안, 남은 동생들이 내가 했던 것처럼 막내를 돌봤다는 걸 어쩌다 이어진 연락으로 인해 들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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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스"
저 때 파이 완전 무책임했어. 갑자기 사라져서 막내 한동안 우울해하는 거 달래느라 얼마나 애먹었는 줄 알아?
"헬리아"
그래도 너 졸업할 때까지 버틴게 용한거야~ 너였으면 절대 못 버텼어.
"블리스"
...인정하기 싫긴 한데. 그건 그렇지.
"델피니"
...... ...... ......
"블리스"
아, 이 XX 또 앉아서 졸아. 졸리면 들어가라니까. 난 몰라. 또 자빠져서 코가 깨지든 이마가 깨지든 알아서 하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