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이 의념을 자신의 몸에 불어넣어주는 것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내동댕이 쳐진 하루는 한순간 바닥을 구르며 거칠게 숨을 뱉어냅니다. 그런 와중에도 쓰려져간 동료들을 바라본 하루는 강대한 힘을 뽐내고 있는 엘로앙을 바라봅니다.
" 당신은 강해요.. 당신처럼 강해져야 누군가를, 어딘가를 지킬 수 있는 것이겠죠. " " 전 동료들의 희생을 헛되게 만들 수 없어요. "
에릭이 불어넣어준 의념이 신체를 강하게 해주는 것을 느끼며 심호흡을 합니다.
" ... 그러니까 포기하지 않아요. "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를 한데 모아 묶고는 움직일 준비를 시작합니다. 공격을 할 필요도, 그렇다고 무식하게 맞붙이칠 필요도 없다. 단지 몸이 움직일 수 있는 한도에서 가장 빠르게, 가장 영리하게, 강렬한 적의 공격을 피해낸다. 지금 자신이 해야할 것은 그것 뿐이라는 것을 마음 속에 새겨넣으며
두시간동안 샤워를 하니까 너무너무 개운합니다! 침대에 앉아서 이번에 보상으로 받은 알을 꺼내봅니다. 커다란 알에서 따듯한 온기가 느껴져요. 알에 귀를 대어 보니까 콩콩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아빠다리를 하고 앉아서 다리 사이에 알을 놓고 두 팔로 품에 꼭 감싸안아요. 엄마 새들이 알을 품으면 이런 느낌일까요? 알이 따듯해서 그런지 솔솔 잠이 오는 것 같아요. 머리맡에 놓인, 진화에게 선물받은 곰인형에 등을 기대어 봅니다.
조심스레 방 안에 들어선 릴리는 순간 흠칫, 하고 발밑을 살핀다. 혹시 문지방이나 다다미의 경계를 밟고 있지 않는지 보았는데, 다행히도 밟고 있지는 않았다.
‘시험인가?’
다다미 넉 장 반 이상은 다케다 신겐의 변소보다 넓고 육첩방은 남의 나라라는데, 이 방은 도대체 몇 첩 방이나 되는 것일까. 저 멀리 보이는 벽면을 의식하지 않으면 자칫 아득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앉을 자리를 안내받는 것이 와시쓰의 예절인데 지금은 아무도 나와 안내하는 사람이 없다.
“실례합니다. 입부를 상담하고 싶어서 왔는데요─.”
목소리는 빈 방에 울린다. 릴리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저는 1학년 서포터 오렐리 샤르티에입니다! 연금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입부를 상담하고 싶은데요!”
…… 큰맘 먹고 외쳤지만 다시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린다. 문을 열어젖히는 것따위는 더없이 손쉬운 문제다. 문제가 주어져 있다면, 얼마가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어려운 문제는, 주어져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문제다. 그런 것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이들이 자신이 시험받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덕분에 파멸을 맞는다. 릴리는 기민하고 민감하다. 시험을 알아차리는 것이 그녀의 힘이다. 그리고 알아차린 시련을 헤치고 나가는 것이 그녀의 시련이었다.
‘뭐야, 정말로 없나…….’
이런 당연한 추리로부터, 발상을 거듭한다.
‘당연히 부실에 아무도 없을 수는 있지. 부원이라고 해서 부실에 24시간 상주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나는 나중에 적당한 시간을 잡아서 다시 찾아오면 돼. 하지만, 만에 하나…… 정말로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장담도 할 수 없으나, 만약 이것이 시험이라면…… 내가 시험을 받고 있는 거라면…….’
릴리는 눈을 감았다.
‘…… 그 순간 물러나면 나는 탈락한다. 빈 방에서 삽질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무심코 물러나서는 안 돼. 운명이란 스스로 찾아가 따지지 않는 자에게는 나타나지 않으니까.’
눈을 감으면 오로지 검은색만이 보인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눈꺼풀에 드리운 그늘일 뿐이다. 태양을 바라보며 눈을 감을 때 눈 앞에 떠오르는 상은 붉은색이다. 안검 하의 모세혈관을 흐르는 피의 붉은색.
‘그들은 내게서 무엇을 검증하고 싶어할까.’
스스로 문제에 대한 풀이를 세우면서, 릴리는 입구 가까이에서 입구를 등지고,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앉는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도록 이끄는 운명은 존재하되, 그런 만남의 필요성을 검증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그들은, 나와 자신들의 조우가 『운명』이라고 부를 만큼,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하는 일인지 알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단순한 자기소개가 아니다……. 내가 만나게 될 만한 가치가 있는 인간인지를 증명하는 일이지.’
그리고 허리춤의 『마녀 지망생』에서 물이 든 약병을 하나 꺼내 흔들기 시작한다.
‘만약에 그냥 연금연단부의 사람들이 지금 이 자리에 없는 것뿐이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마주칠 운명이 아닐 뿐이다. 그러니, 기다려 주마……. 마침 못 만날 운명이었다면 만날 때까지 운명을 바꾸며 기다려 주마. 당신들이 내 능력을 목도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