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봐봐. 신이 있었으면 일찌감치 내가 만났어야 하는 거 아냐? 이렇게나 열심히 하는데." - 퉁명스런 얼굴로, 신사 앞마당을 쓸며 혼자 중얼거린 말.
이름 : 카모리 니코 神守仁子
나이 : 18
외형 : 반에 한 명쯤은 있을 법 한 예쁘장한 여자아이. 곱고 흰 피부에, 허리까지 굽이치는 부드럽고 풍성한 갈색 머리칼. 아무렇게나 넘긴 것 같지만 사실은 적당한 길이로 다듬고 있는 앞머리를 살짝 걷어내면, 둥글고 큰 검은색 눈동자가 긴 속눈썹에 둘러싸여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적당한 높이의 콧대 아래로 부드럽게 다물린 선홍빛 입술과 꽃물이 든 듯 발그레한 뺨. 바라보고 있으면 가끔 토끼나 사슴이 떠오르곤 했다. 160cm, 53kg. 패셔너블보단 단정하고 깔끔하게 차려 입는 걸 좋아하는 타입.
성격 : 거절을 못 하는 것이 천성이었다. 그 덕에 주변에서는 ‘남들을 잘 돕는 착하고 성격 좋은 아이’로 인식되고 있었지만, 그것으로 인해 돌아오는 부담은 반갑지 않았다. 계속 착한 아이로 남으려면 그러고 싶지 않을 때에도 참고, 양보하고, 배려해야 했으므로. 하지만 그렇다고 손바닥 뒤집듯 제 속을 그대로 내보일 수는 없는 것이다. 돌변한 주변의 시선을 온전히 받아낼 용기 따위는 갖고 있지 않았다. 착한 아이 연기는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잘 웃고, 착하고, 배려심 깊고 귀여운 가식덩어리의 나 자신. 대신 학교를 졸업한 뒤의 자신을 상상하면서, ‘언젠간, 언젠간 다 되갚아 주마. 어른이 되어서 독립하면 언젠간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 테다.’ 하고 조용히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그래도 참을 수 없을 때에는 아주 가끔씩, 숨을 쉴 작은 구멍을 뚫듯이 몰래 소심한 일탈을 행하곤 했다.
기타 : - 지금까지 행했던 최대의 일탈은, 어릴 적 의식을 치루기가 너무 싫었던 나머지 도망쳐 신사 뒤쪽 숲에 숨었던 것. 물론 금방 잡혔다. 호되게 혼나 눈물을 쏙 뺐다나 뭐라나. 아직도 다음엔 제대로 도망쳐 주겠다며 이를 갈고 있다.
- 주로 행하는 일탈은 쓸어 모은 나뭇잎을 담아 버리지 않고 근처에 슥 밀어 놓는다던가, 아침에 등교할 때 토리이를 발로 툭(이라고 말하지만, 발끝을 갖다대는 수준.)치고 간다던가, 신께 기도드릴 때 기도가 아니라 몰래몰래 딴 생각을 한다던가.
- 좋아하는 건 길거리에서 막 사먹는 허접한 노점 타코야끼. 그 오징어인지 문어인지 알 수 없는 조그만 살과 잔뜩 밀어넣은 반죽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빈약한 맛이 좋다고 한다. 오히려 문어가 제대로 들어있으면 별로라고. 소스에 비해 마요네즈를 왕창 뿌리는 타입. 이외에도 길거리 음식이라면 뭐든 좋아한다. 야키소바라던가, 카키고오리라던가. 고급스런 입맛은 못 되는 듯.
- 마을의 토착신, ‘마모리가미’를 모시는 카모리 가문의 첫째 딸. 신사는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관리하고 있으며, 일단은 장녀 된 입장으로 무녀 노릇도 조금씩 하고 있다. 조부모님이 이야기하기로는 신력을 타고났다니 뭐라느니 이야기하는데, 도통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야 자신은 살아가면서 신이라는 존재를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는 걸. 자신을 이 신사에 잡아놓으려 하는 거짓말인지 누가 알겠는가. 될 대로 되라지! 신을 믿지 않는 자신의 입장에서 이런저런 집안일은 그저 귀찮을 뿐이다.
사실 나도 뭘 논의하면 좋을까 조금 고민중이긴 하지만 일단 가장 크게 정해볼 것은 두 사람의 관계도가 아닐까? 물론 세세하게 정할 필요는 없지만 마모리가미가 새롭게 임명받고서 3년이니까 아마 그때부터 활동을 했다고 보자면 아예 초면은 아닐 것 같거든. 마모루가 자신을 모시는 집안의 피를 이은 니코의 반으로 슬며시 전학을 와서 3년 정도 쭉 같은 반이었다는 것도 좋을 것 같고.. 혹은 조금 과거로 돌아가서 어릴 때 니코가 뭔가 위험한 일에 처했을 때 당시 견습으로 마을에 있었던 마모루가 신의 힘으로 슬며시 도와주고 사라지고 난 후에 나중에 정식으로 신이 되었을 때 니코를 알아보고 괜히 친근하게 다가오는 그런 것도 좋을 것 같고.
그러고 보니 왜 니코가 신을 믿지 않는가에 대한 설정을 풀지 않았구나! 간략하게 설명하면 어릴 때 개에게 크게 물려 다쳤을 때 신이 구해주지 않았기 때문, 이라는 것이 이유인데 :3c... 이걸 조금 변형해서 후자의 설정으로 바꾸어도 좋겠다 싶어! 원래대로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던 것을 그나마 마모루의 도움으로 한 군데 콱 물린 걸로 끝났다... 정도? 괜찮을까? :ㅇ
견습 시절의 마모루는 아무래도 견습이다보니 힘도 그렇게 강한 건 아니니까 완전히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아닐테니 그런 것으로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지만... 원래 설정이 그런 것이라면 굳이 그렇게 바꾸진 않아도 좋을 것 같아. 전임 토착신이 워낙 일을 잘 안해서 그런 일이 있어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을 마모루가 알게 되고 그에 대한 후임으로서의 미안함 때문에 이번에는 이것저것 좋은 일만 있게 해주고 싶어서 니코의 반에 전학을 가고 니코에게 친근하게 대한다던가..그런 쪽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
물론 그 설정도 괜찮긴 하지만 뭔가 초기의 설정을 바꿔버리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해서 말이야. 그렇다면 그렇게 가보자! 사실 이쪽이 마모루가 좀 더 적극적으로 신으로서 마을의 이런저런 사람들을 돕는 그런 느낌이 되기도 좋을 것 같았거든. 내 선배가 일을 안했으니 나라도 열심히 하자! 식으로 말이야.
아무튼 그렇다면 마모루는 니코가 뭔가 일을 하고 있으면 슬쩍 다가와서 도와주거나 하는 일도 많았을 것 같네. 어쩌면 얘 왜 이러나 싶은 생각이 박힐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첫 일상 같은 것은 역시 반에서 주번 일 같은 것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눠보는 그런 건 어떨까?
사실 더 이야기를 나눠볼 것이 크게 떠오르진 않네. 아. 맞아. 니코주는 무대가 되는 배경은 어느 쪽이 좋을 것 같아? 작은 도시 느낌도 있을 수 있겠고, 자연이 아름다운 산이나 바다가 있는 그런 곳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굳이 말하면 두 개를 섞은 느낌이 좋을 것 같긴 한데.
선배 뒤치다꺼리 하는 신입인 거냐구....(롬곡옾높) 와! 첫 일상소재! 좋다! 방과 후의 주번 두 사람! 원래는 차례가 아닌데, 누군가 니코한테 부탁해서 우연히 둘이 같이 주번을 하게 되었다던가.
그렇다면 완전 시골도, 완전 도시도 아닌 고즈넉한 느낌이 나는 좀 큰 마을? 웬만한 상가나 편의시설 정도는 갖춰져 있는. 대대로 모시는 토착신이 있다는 설정이니까! 너무 개발되는 것도 이상할 것 같고, 그렇지만 마을의 규모는 어느 정도 있어야 할 테고. 신사 뒤쪽으로 산이 하나, 마을의 바깥쪽에 작은 해안이 있어도 좋겠다 :D
사실 그걸 조금 고민하긴 했어. 내옆신의 메인컨텐츠 중 하나였으니까. 니코주의 생각은 어떤지 묻고 싶어. 일단 거기서 모티브를 따와서 만든 스레이긴 하지만 꼭 넣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지만 사실 의식이 진짜 예뻐서 있다면 두 캐릭터가 만약 정말로 연인이 된다면 넣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접속시간은 비슷할지도 모르겠구나. 물론 꼭 동접일 필요는 없긴 하지만! 좋아. 그럼 서로 편하게 가는 방향으로 가보자! 일단 첫번째 일상 소재는 정해뒀으니까. 그러고 보니 니코는 마츠리 같은 것은 즐기는 편이야? 뭔가 무녀 같은 노릇도 해야할 수도 있고 마을에서 쭉 살았을테니까 뭔가 또 하는가보다 그러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어떨지 궁금하네.
마츠리라고 하면 아무래도 길거리 노점의 향연이니까, 당연히 좋아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D 물론 의식같은게 있으면 귀찮아 할 테지만, 아직 학생인 만큼 조부모님과 부모님 중심으로 돌아갈 테니 그리 중요한 건 맡지 않을 것 같고. 이건 비밀인데, 언젠간 큰맘먹고 무녀노릇 내던지고 빠져나와서 노점을 전전할 예정이야(??)
먹거리에 완전 진심인 니코로구나! 뭔가 마츠리 있을 때마다 타코야키 사서 먹고 있을 것 같아. 다른 먹거리도 잔뜩 먹을 것 같고. 무녀노릇을 내던지고 빠져나오는 모습을 보면 마모루 입장에선 조금 심정이 애매할 것 같지만 아마 마음 속으로는 저렇게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할 것 같아. 사실 정작 마모루도 마츠리나 그럴 땐 일손 돕는다고 신사 밖으로 나와서 돌아다닐 것 같지만! 물론 의식때는 일단 신이니까 모습을 감추고 신사에 자리 잡고 앉아있을 듯 하고.
인간 음식을 상당히 즐기는 편이야. 과일을 제일 좋아해서 과일을 많이 먹어. 여름에는 수박을 자주 먹는 편이야. 물론 다른 것도 잘 먹지만!
그렇네.. 마모루 입장에선 말 안 듣는 딸래미 보는 기분이겠다 <:3c... 축제날 노점 사이를 걷는 두 사람의 모습을 상상하면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재미있겠다 :D! 조용히 타코야끼를 볼따구에 우겨넣고 있는 신사 딸(의식 드렸을 예정)과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신님(의식 받았을 예정).. 귀여운걸..?🤔
신사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 두 명이 신사를 빠져나온 셈이니 확실히 진실을 아는 이가 보면 어마무시한 광경일지도 모르겠어. 타코야끼를 볼에 집어넣고 있는 니코라니. ㅋㅋㅋㅋㅋㅋ 아앗. 너무 귀엽잖아. 다람쥐 같아!! 바로 옆에 마모루가 있다면 어딘가에서 음료를 하나 사와서 조용히 내밀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 의식 들였을 예정과 의식 받았을 예정. ㅋㅋㅋㅋㅋㅋㅋ 니코네 조부모님과 부모님에게 너무나 죄송하다고 마모루가 빌어야한다. 이건.
하지만 니코도 아무런 잘못이 없는걸! 신이 놀아도 된다고 하고 바로 옆에서 같이 노는데 마을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 물론 아무도 마모루가 신이라는 것을 모르지만. 그래도 신이 허락했으니 천벌이 내리거나 하진 않을거야! 혹시 알아? 일부러 사람들의 인식에 안 잡히게 살짝 힘을 쓸 수도 있는거고!
전임 신은 일을 게을리했지만 은퇴해서 신계나 다른 곳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을거야. 덕분에 마모루가 해야 할 일이 많지만 그래도 얘가 그것을 싫어하거나 하진 않을테니까.
일단 벌써 새벽 1시가 다 되어가네. 일상은 내일부터 천천히 돌려보는 셈 치고 선레 다이스라도 돌려볼까?
새학기가 시작되고 여러 날이 지났으나 아직 4월의 봄향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3년 전, 정식으로 이 마을의 마모리가미로서 지내게 되고 난 이후로 참 여러 일이 있었다고 생각하며 그는 창밖을 바라봤다. 오늘은 딱히 무슨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없었다. 즉, 오늘은 마을이 평화롭다는 이야기였기에 그는 안심하며 미소를 지었다.
같은 반 아이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슬슬 주번으로서 마무리 정리를 하며 자신도 나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실 주번이 하는 일이 그렇게 많은 것은 또 아니었다. 칠판 주변을 정리하고 가볍게 걸래로 좀 닦고, 너저분한 것이 있으면 정리하고 출석부를 교무실로 갔다주는 정도의 아주 간단한 일이었으나 묘하게 번거로운 일이기도 했다.
허나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하는 것이 싫지 않다는 듯 그는 가볍게 두 팔을 걷고 우선 뭐부터 할지를 생각했다. 한편 자신과 같이 주번인 학생을 찾아보려는 듯,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그 학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잠깐 자리를 비웠나 생각을 하며 그는 우선 오 분 정도만 그 학생을 기다리기로 했다.
"설마 도망치진 않았을테고. 물론 도망쳤다고 해도 별 상관은 없긴 한데."
어느 쪽이어도 크게 상관없다는 듯, 그는 고개를 올려 시계를 바라봤다. 천천히 초침이 돌아가는 시간을 바라보며 그는 괜히 팔짱을 꼈다. 참으로 여유롭게 주번 일을 마친 후 뭘 할지를 생각하듯.
급한 일이 생겨 가 봐야 하니 대신 주번을 맡아 줄 수 있겠냐, 하는 부탁을 들은 것은 니코가 막 신발을 갈아신으려 했던 때였다. 그런 건 미리미리 이야기하란 말이야. 짜증이 울컥 목구멍까지 솟아올랐지만, 불만을 삼켜 내는 데에는 이미 도를 텄다. 그래, 알았어. 대신 다음에 뭐라도 쏘기야. 지켜지지 않을 헛된 약속을 하고,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든다. 바이바-이.
채 들어가지 못 한 발뒷꿈치에 걸려 우그러진 신발 뒤축이 괜히 밉다. 그냥 이대로 집에 가 버려? 어차피 자신이 대타 이야기따윈 들은 적 없다고 시치미를 떼면 혼날 일은 없을텐데. 우두커니 선 채 발로 신발을 이리저리 밀며 장난질을 치다가, 한숨을 푹 쉰채 다시 신발을 거두어들였다. 그래서 나에게 득 될 게 뭐가 있겠니. 인생! 왜 하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탕탕거리며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심술궂다.
드르륵, 탕. 뒷문이 거세게 열리고 닫힌다. 어깨에 메었던 가방은 이미 아무렇게나 내려놓았다. 평소의 클래스메이트들이 보던 그녀와는 다소 동떨어진 태세. 거칠게 고개를 홱 돌려 교실을 살피고 나서야, 그녀는 누군가가 먼저 와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 마주친 검은 눈동자에 동요가 일렁였으나, 이내 잠잠해졌다. 잠시간의 침묵. 먼저 입을 연 것은 그녀였다.
“..미안해. 연락을 늦게 받아서.”
원래는 내가 아니거든. 애써 차분히 이야기하려 하지만, 목소리에 깃든 아주 약간의 동요는 숨길 수 없는 것 같았다. 어쩐지 최대한 눈동자를 마주하는 것을 피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
드르륵하는 문 소리에 이제야 왔구나 싶어 아직 일 분 정도 남아있는 시계를 바라보던 그는 문 쪽을 바라봤다. 허나 거기에 서 있는 것은 예상과는 다른 이였다. 놔두고 간 물건이 있는 것일까 생각을 하다 곧 입을 여는 그녀의 목소리에 그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게. 오늘 나랑 주번인 이는 네가 아니었는데. 카모리."
자신을 섬기는 집안의 피를 이은 여성인 그녀의 목소리의 동요나 눈을 피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다가간 후에 근처에서 멈춰섰다. 세 발걸음 정도 차이를 두고 앞에 선 그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미안하긴. 걔도 걔네. 미리 이야기하거나 했으면 좋았을텐데. 아무튼 기분은 괜찮아? 아까 문 세게 연 것도 그렇고 가방도 그렇고. 기분이 좋아보이진 않는데."
다른 건 몰라도 문을 거세게 열고 닫은 것은 적어도 기분이 좋을때 나올 행동은 아니었다. 그 행동으로 추측하건데 그녀의 기분이 그리 좋지 못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하며 그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러면서 그녀와 눈동자는 마주치려는 듯, 그녀의 시선이 향할 곳을 찾아 몸을 옮기며 그는 그녀와 눈동자를 맞추려고 했다.
"아무튼 무라카와 맞아. 무라카와 마모루. 일단 그렇게 시선을 안 피해도 괜찮아. 방금 전 그것을 이야기하거나 하진 않을테니까. 기분이 나쁘면 그럴 수도 있잖아? 아무튼 주번 일은 내가 혼자 해도 괜찮아. 카모리는 카모리대로 일정이 있거나 하지 않아?"
/나는 퇴근 후부터 쭉 쉬고 있는 중이야!! 아무튼 불만을 삼키는데는 도를 텄다는 말로 보아 주변 사람들이 니코를 어떻게 대하는지 확 느껴지는 것 같아. 아이고. 이 사람들아.
저벅, 저벅. 거리는 빠르게 좁혀져 온다. 마모루의 발걸음이 멈추면, 니코는 마모루를 올려다보는 모양새가 될 것이다. 알 수 없는 미묘한 무표정. 어색함인지, 경계인지? 마모루를 향하는 시선이 불규칙하게 깜빡인다.
“....바람이야.”
퉁명스레 대답하는 목소리가 잔뜩 기어들어간다. 오늘은, 그, 조금 피곤해서 그런 거니까. 통하지 않을 변명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다. 혹여 조용히 넘어가줄까 싶어 슬쩍 던져나 보는 것이다. 어쩐지 뺨이 홧홧해지는 것 같아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씩씩대며 계단을 올라오느라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물든 뺨을 가려 주기를 바라는 수 밖에.
“괜찮아, 익숙하니까.”
끈질기게 따라붙는 마모루의 시선을, 니코는 애써 떨쳐내려 했다. 갈 곳 잃은 눈동자가 이곳저곳을 맴돈다. 제 발 끝으로 갔다가, 칠판을 봤다가, 책상 모서리의 나무 거스러미를 따라 삐뚤빼뚤 선을 긋기도 하고, 시계 초침의 끝을 어루만지기도 하고. 그러나 마지막으로 니코의 눈동자가 향한 곳은 결국 마모루의 얼굴이었다. 이렇게나 시선을 맞추려고 드는데 끝까지 피하는 건 너무 무안하겠다 싶었던 것이다. 이어지는 마모루의 말에, 니코는 새초롬한 얼굴로 불평하듯 웅얼거렸다.
“...나, 그렇게까지 못되먹진 않았거든.”
그리고.. 혼자는 힘들잖아. 다시 맞추었던 시선을 내렸다. ㅡ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무서운 거야 <:3 친절한 마모루....... 흑흑..
그 부분으로는 더 말을 하지 않겠다는 듯이 그는 대답했다. 애초에 정말로 바람인지, 아니면 그녀의 기분이 나빠서 그렇게 된 것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깊게 따질 것도 없었고 그냥 그렇구나라고 넘기는 것이 제일이라고 판단한 그는 정말로 그 이후로는 그 관련 말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저 조금 붉어졌을지도 모르는 그녀의 뺨을 잠시 바라보다가 웃음을 작게 터트릴 뿐이었다.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닌데. 하지만 내가 여기서 더 거절하면 카모리도 조금 난처해질테니 알았어. 그러면 빨리 끝내고 돌아가자. 그렇게 오래 걸릴 일도 아니니까. 책상이나 교탁만 조금 정리해줄래? 남은 것은 내가 할테니까."
말을 마치며 그는 칠판이 있는 곳으로 우선 걸어갔다. 그 근처를 정리하면서 그는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꽤 고풍적이지만 적어도 TV나 라디오, 혹은 인터넷에서도 나온 적이 없는 곡인 것으로 보아 그냥 자신이 내키는대로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휘파람을 멈추면서 칠판을 바라본 상태로 그는 그녀에게 넌지시 말했다.
"힘들지 않아? 익숙하다고 말하는거.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 만인의 목소리를 들어줘야하는 신이라면 또 모를까."
그것은 명백히 그가 생각하는 신과 인간의 차이였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익숙하다고 말할 정도로 많은 일을 대신하게 되는 입장이 유쾌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조금 걱정스러움을 담았다. 그야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모시는 집안의 딸이니까. 다른 인간들보다는 조금 더 걱정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 힘들지. 여러모로 스트레스도 엄청날 것 같고. 마모루의 입장에선 아무래도 걱정될수밖에 없겠어. 진짜.
퉁명스러웠던 니코의 얼굴이 아주 조금 풀어졌다. 마모루가 장단을 맞춰 준 것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된 것 같았다. 비록 이어지는 작고 나직한 웃음소리가 다시 얼굴을 물들이긴 했지만. 그러나 그것도 아주 잠시, 구겨졌던 눈썹이 다시 올곧게 펴졌다. 다시금 돌아온 평정심이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제서야 멈췄던 이성이 일하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창 밖에서 교실을 한 번 살펴 보기라도 하는 건데. 잠깐의 부주의로 예상치 못 한 약점을 잡힐 줄이야. 물론 눈 앞의 남자아이는 타인의 약점을 잡아서 이리저리 휘두를 것 같은 타입은 아니었지만ㅡ원래 사람의 속이란 모르는 법이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해 봤자 무엇하랴. 혼자서 속앓이를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누군가 자신의 속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야.
니코는 그저 마모루의 눈치를 슬슬 보며, 그가 부탁한 대로 얼마 어긋나지도 않은 책상의 줄을 맞추는 일 따위를 깨작거리기 시작했다. 흥얼거리는 낯선 콧노래는 대체 어디서 배워 온 멜로디인지. 아니, 그런데 보통 열 여덟 남자애가 저런 노래를 흥얼거리나? 잠시 눈동자를 굴렸지만, 곧 누구에게나 취향은 있는 법이라는 걸 떠올리고는 그냥 그러려니 여기기로 한다.
“어쩔 수 없잖아. 딱히 거절해도 득 되는 것도 아니고ㅡ”
어쩌다 오늘 처음 제대로 말을 섞어 본 남자애랑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나. 어쩐지 치부가 드러난 것 같아 영 거북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네가 뭘 아는데, 반론하고 싶으면서도 꿰뚫어 본 듯 맞는 말이라 막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갑갑함. 그냥.. 나름의 사정이 있는 거야.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는 듯 제멋대로 얼버무리고, 니코는 잠깐 환기라도 시킬 요량으로 창가를 향해 다가갔다.
요란스럽게 덜컹대는 소리를 내며 창문을 열면 아직 서늘한 봄 공기가 목덜미와 머리칼 새를 스치고 지나간다. 운동장 그 어딘가를 시선으로 더듬으며, 마모루를 보지 않은 채 니코는 물었다.
“무라카와 군은, 신을 믿어?” ㅡ 답레 이어놓을게! 첫 만남부터 본성을 들켜버린 니코.. 어떻게 될 것인가. 오늘도 수고했어! 잘 자 마모루주<3
어쩔 수 없다는 그녀의 말에 그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물론 그렇게까지 해야할 이유가 있을까 싶지만 제 아무리 신이라고 한들, 인간의 자유의지에 간섭할 순 없는 일이었다. 마저 칠판을 정리한 그는 손을 가볍게 털며 어느 순간 열려있는 창가를 바라봤다.
"믿어. 보이지 않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고 난 믿어."
물론 믿는다고 하는 것에는 조금 어폐가 있었다. 자신이 신이고, 자신은 지금 이렇게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허나 지금의 자신은 인간의 모습으로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표현했다. 말을 마친 후 그는 전체적으로 교실의 모습을 바라보며 좀 더 정리해야 할 곳이 있을지를 살피면서 그녀에게 되물었다.
"그러는 카모리는 어떤데? 신을 믿어? 아니면 믿지 않아?"
자기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느냐, 아니면 부정하느냐. 어느 쪽 대답이 나와도 그로서는 크게 무슨 말을 할 생각이 없었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신을 믿지 않는 이들도 많았으니까. 무엇보다 그는 그 대답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자신을 잘 모를지 모르나 그는 그녀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토착신이 되고 나서 3년. 자신을 모시는 집안인 카모리 집안에 대해선 이것저것 전임 신에게 들은 것이 많았다.
"생각해보니 카모리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또 처음인 것 같네. 이 마을에 오고 3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앞으로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지내지 않을래? 물론 카모리가 싫지 않다면 말이야."
그렇기에 그녀하고는 좋은 관계로서 지내고 싶다는게 그의 바램이었다.
/이렇게 답레를 이어놓고 나는 출근하러 가볼게! 오늘 하루 좋은 일 가득하길 바래! 니코주!
마모루의 대답에 돌아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니코의 시선은 그대로 못박힌 듯 창 밖을 향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조용하게 내리깐 눈동자 안에 묘한 기류가 휘몰아치고, 단편적인 기억이 떠오른다. 신이 있었다면. 무의식적으로 어깨를 쥐었던 손에 힘이 빠진 것은 막 이어지는 질문을 듣고 난 뒤였다. 아. 짧은 신음과 함께 발작하듯 몸을 튼다. 찰나의 순간 마주친 눈동자, 이번에는 피하지 않은 채로 혼자 중얼거리듯 마모루의 질문에 답했다.
“어떨 것 같은데?”
그리고 그 말을 뱉은 것을 후회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마을 신사의 딸이라는 것쯤은 당연히 알음알음 들었을 텐데. 참 이상한 기분이었다. 대화하면 대화할수록 자신이 지금까지 겉으로 보였던 모습들이 산산히 부서지는 것 같아서. 마치 누군가 조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혹은 마법이나 저주라도 걸린 것처럼. 왜... 이렇게 꼬여가는 거야. 어쩐지 분한 기분이 들어서, 다시금 니코는 고개를 홱 돌렸다. 비밀이야. 안 알려줘. 괜히 먼지가 들어온다며 툴툴대곤 창문을 툭 닫는다.
“싫다고 하면 말 안 걸거야?”
요 3년 동안, 이런 식으로 말을 섞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가?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기억을 더듬어가며, 니코는 괜히 심술을 부려 툭 튕겨 보았다. 어쩐지 상대방이 자신을 알게 모르게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달갑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니코는, 니코의 말마따나 그리 못 되어 먹은 여자아이는 아니었다. 잠시 마모루의 반응을 살피고 나서, 덧붙이듯 툭 내뱉는 말.
“농담이야. 마음대로 해.”
사람 대 사람으로 이야기하는데 무슨 허락이 필요해. 창가에서 떨어져 나온 몸이 책상 몇 개 사이를 가로지르더니, 자신의 책상 위에 가볍게 걸터앉았다. 바닥에서 떨어진 두 발이 가볍게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