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 소리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어깨가 작게 들썩이기를 반복한다. 인기까지는 몰라도 인지도는 꽤 생겼을텐데. 적어도 신입생 학생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민은 어렴풋이 선물을 챙겨주겠다고 자랑하던 제 후배를 기억해냈다. 아직 완성은 못했던 것 같은데. 민이 힐끗 리안을 훑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뛰어남지 않겠어요? 모든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나약해지잖아요."
민은 그래서 여유로울 수 있었다.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리는 낯짝이 미묘하게 권태로워보였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는 듯이 고개를 바로했다. "그렇지만, 전성기의 아버지를 넘어서고 싶다면 노력하는 이해가 되네요. 전성기가 지나면 목표가 영영 없어지는 거잖아요." ...보통은 바로 이쪽을 생각할텐데 깨달음이 늦다.
"아하, 저번에도 했던 거요? 안타깝네요. 곧 제 후배가 선물을 주겠다고, 이런. 이건 비밀로 해줘요."
민은 기억을 더듬는듯 입술 부분을 두드렸다. 민이 들었던 방송은 루인의 차례였던 것 같다. 제법 감동적인 이야기가 오갔던 걸로 기억한다. 잠자기 직전에 틀어 놓았던 터라 모든 기억이 확실치는 못했다. 민망한 기류가 잠시 흘렀지만, 민은 빙그레 웃으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MC대작 맞죠?"
민이 검지손가락을 보이며 말했다. "떠보는 건 그만합시다. 정말로 방송을 들었으니까요." 잘 만들어진 도자기 같은 웃음을 남긴채, 손가락을 내린다.
중은 사탕을 줄까 물어보면 도망친다는 언급을 듣자하니, 유일한 정상인일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이 든다. 다만 그 또한 추종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희망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어떻게 해도 당신처럼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이다. 지성인임은 확실하나 설득으로 빼돌릴 사람이 아니다. 그는 단언했다. 가문이 쌓아온 세월이 증명했다. 말과 사랑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건 동화 속의 이야기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죽음이 도사리고, 누군가는 꼭 피를 봐야만 평화가 찾아온다.
그는 이 일련의 생각에서 한가지 의문을 표한다. 그러면 어째서 매구는 굳이 추종자에게 명령해 '동화학원의 학생'을 공격하려는 것인가.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인가? 혹은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것인가? 부네라고 불렸던 여자가 이 학교 출신이라고는 하던데. 그 대단하다는 어둠의 마법사가 단지 그 치졸하고 어줍잖은 이유로 이곳을 목표로 잡았을 것 같진 않다. 그는 한가지 결론을 내린다.
무언가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숨기는 사실이 있을 것이다. 그는 미소를 짓는다. 참 우스운 일이다. 이젠 교수마저 신뢰할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는 것 아닌가. 원래부터 신뢰라는 것이 그에게 존재했냐만은, 공적인 신뢰마저 깨지게 생겼다. 그가 당신에게 나지막히 얘기한다. 목의 핏대는 가라앉고 다시 목소리는 속삭이는 어조로 변한다.
"가벼운 건 어쩔 수 없지. 아가, 내 가볍단 뜻을 이해하기엔 네가 참 순진하구나."
겉치레의 예의. 그 속에 담기지도 않는 의미. 그는 천천히 눈을 내리감는다. "아예 처음인 것보단 낫지 않은가." 그 말을 이후로 정적이 흐른다. 사탕을 넘겨주듯 그때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먼저 끌어 안았다는 사실이다. 당신을 안은 팔은 그대로이나 몸은 가볍게 뒤로 젖힌다. 쿠키를 물고 있었기 때문에, 입에 묻어있는 부스러기를 혀로 가볍게 훑으며 내리감긴 속눈썹 사이로 그의 분홍색 시선이 드러난다. 어스름한 새벽빛을 받은 선명한 분홍빛 눈동자가 속절없이 떨린다.
단지 누군가와 접촉했다는 이유로 속이 울렁거렸다. 머리가 아팠다. 평생 함께 했으나 신경쓰지 않으려 했던 두통이 점점 심해져간다. 순간 눈앞이 희뿌옇게 변하나 싶더니 그가 잠시 고개를 느릿하게 기울인다. 그의 분홍빛 시선이 호선을 긋는다. 현궁의 사신이 기묘하게도 성자의 미소를 짓는 것이다.
"아가."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메마른 입술이 당신의 입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을 맞춰보려 한다. 당신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머금으며 나지막히 속삭이려 했다.
"조금만 더."
흐트러진 목소리였다. 그의 본심이 드러나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당신은 아무것도 모를 사람이니, 그는 이리 말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을 마주하며 다시금 부른다. 아가, 하고.
"죽음이 머잖은 자에게 자비를 베풀어서라도. 응?"
그는 살아있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살아있는 것은 변한다. 맹목적인 것은 모조리 변한다. 엉클 톰은 아즈카반에 갔고,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믿었던 가문원은 자신을 지하실에 밀어넣고 문을 잠갔다. 살아있는 것의 애정은 모조리 퇴색되며 변한다. 그는 숨을 쉬며 살아가는 자신 또한 증오했다. 그래서 그는 죽어간다. 임종이 머지 않은 자였다. 수많은 인간에 의해 상처입은 눈동자가 속절없이 떨린다.
윤은 그저 픽 웃을 뿐이었습니다. 이런 면은 이매를 닮았다고 생각하기도 했죠. 자신의 얼굴을 감쌀 때도 재미있다는 양, 내려다볼 뿐이었습니다. 서투르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 편한대로 불러도 돼. 여기에 있을 부하들에게는, 미리 말해두지. '
가장 충격 받을 건 이매와 중이 분명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손등으로 펠리체의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렸습니다.
'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 일부러, 1학년 시작부터 이 모습이었고 신중하게 가문도 고르고 친절하게 대했는데. 신탁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그 전의 말도 걸려. ' 진짜 제갈윤도 어느 새, 평소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으며 윤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습니다. 자택의 감옥 안에 있는데.
주양은 잊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주단태라는 현궁 5학년에 재학 중인 이 불성실하고 경박하며 가벼운 언행을 보이는 여학생은 바로 위에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가 있었다. 조카를 제외하면 주씨 가문에서 막둥이라고 봐도 좋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단태는 샐쭉- 눈을 가늘게 뜨고 지그시 바라보다가 헤죽 웃으며 그 손에 머리를 부볐다. 뻔뻔하게도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18살이나 먹고 볼이 꼬집어지는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야. 달링." 자기도 한번 꼬집혀볼거냐며 느물느물한 목소리로 능청스레 중얼거린 단태는 그 말대로 주양의 볼을 가볍게 쥐었다가 놓았다. -주양이 피한다면 잡는 시늉만 했을테고.-
"달링, 달링은 이미 듬-직-한 사람이라서 더이상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데. 얼마나 더 힘내서 듬직해질 생각인거야? 응? 거기서 더 듬직해지면 나 다시 자기한테 반해버릴지도 몰라?"
옆구리를 쿡 찌르는 행동에 능청스럽고 능글맞게 굴던 주단태는 이크- 하는 반응을 보이며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낯간지러운 호칭 레퍼토리는 끊임없다. 자연스럽게 호칭을 바꿨다가도 다시 익숙한 자기야라던가, 달링이라는 호칭으로 바꾸는 건 역시 뻔뻔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는 주양의 말에 단태는 능청스럽게 헤죽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고 굳이 대답을 하지는 않았고 대신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기색을 보이자, 어깨에 부비는 주양의 머리를 휙휙 쓰다듬어준다.
"안그래도 주궁까지 데려다줄 생각이었으니까 상관없지만~"
손을 토닥여준 단태는 주양의 손을 자연스럽게 감싼 뒤에 걸음을 옮기다가 이어지는 말에 낄낄거리며 웃었다. 밤산책을 하는 이유는 딱히 없었기 때문에 주궁까지 가는 것 정도는 어려울 것 없었다. 게다가 어디서 들은 건지 머글 세계에서나 들릴 법한 안내방송을 따라하는 목소리 때문에 결국 웃어버린거나 마찬가지였다. 주궁까지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았으니까 조금만 더 걸으면 금방 도착할 것이다.
스흡, 하고 주먹을 쥐고 입을 닦았다. 이런 작은 미물에 쓰는것마저도 거부감이 들었는데 사람에게 쓰는거라면 어떤 기분일까. 레오는 가만히 버니를 바라보며 하는 말을 곧이 곧대로 듣고있었다. 우선은 저 사람의 마음에 드는 것이 우선이다. 잘하면 정보를 캐낼수도 있고 저주에서 방어하는 방법도 깨달을지도 모르니까. 아는 사람에 쓰게 될것이라는 말에 레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 아는 사람..한테..? ... 뭐, 좋아. 일단은.. 솔직히 말하면 그리 나쁜 경험도 아닌..것 같기도 하고.. "
반은 거짓말이고 반은 진심이었다. 어찌되었든 일단은 이 버니라는 선배의 환심을 사야했고 나는 너의 사람이다 라는 인식을 심어줘야했으니까. 캐내야할 정보가 많았고 배워야할 지식이 많았다. 레오는 스스로의 정신상태가 튼튼하며 선을 잘 지킬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괜찮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전부 내던지면되니까.
당신이 손에 머리를 부비자 주양은 한층 더 풀어진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째 동갑내기들 중에서는 이런 쓰다듬에 익숙한 사람이 꽤 많아보였다. 휘영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허나 오히려 좋았다.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행동은 지금의 이 상황에 더욱 몰입하기 충분했으며, 이렇게나마 동생 돌보는 기분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면 자신은 환영이었으니.
그런 기분을 느끼다가 볼을 잡힌 주양은 으에. 하고 웅얼거린다. 자신이 먼저 볼을 꼬집었는데 피하는 건 얄밉지 않겠는가. 친구한테라면 한번쯤 꼬집히는 것도 환영이라고 생각하면서 볼이 놓아지자 피시시 웃는다.
"어머어머, 그 정도일줄이야! 하지만 여보, 아무리 완벽하다고 한들 노력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그 빛이 바랜다구~? 계속 노력하면서 살아야지! 그렇게까지 말해주니까, 더더욱 노력해서 여보야가 또 반하게 해야겠는걸~"
꼭 그러지 않는다고 해도, 이 일상적인 모습이 끊어질 리는 없을테지만. 이것 역시 어디까지나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대화였다. 조금 차이점이 있다면, 역시 노력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는 마인드 자체는 진심이라는 것이다. 그 노력이 꼭 이 상황에 국한된 것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계속 이어나가야 자신이 멀쩡하지 않겠는가.
"역시 우리 여보는 친절하다니까! 그치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역시 마냥 바라고만 있는 건 어울리지 않잖아~?"
역시 이런쪽의 의사표현은 확실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주양 역시 마주웃었다. 잠깐동안 이어진 쓰다듬을 가만히 받으며 아까 당신도 대충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은 생각을 했다. 이거 은근히 기분 좋은 일이구나. 왜 손에 머리를 부비는지, 조금 이해가 갈것 같기도 했다. 주궁까지의 거리는 생각보다 짧았다. 길었던 밤산책의 여운 때문이려나. 그래도 이 정도면 오늘 하루도 알차게 잘 보냈다는 생각을 하며, 주양은 당신을 살짝 끌어안았다.
"고마워! 여보야 덕분에 심심하지 않은 밤산책이었어~ 다음에 또 밤손님으로 서로 만나게 된다면, 오늘처럼 오붓한 산책을 즐겨보자구~?"
뭐든 마무리짓기까지는 완벽하게,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주양의 생각이었다.
//좋아 그렇다면 슬슬 막레! 땃주 일상 돌리느라 수고 많았어! :D 늦지 않았으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땃주 쓰다담)
뭐라 부를지에 대해 그녀는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호칭이야 서로 알아들을 수만 있으면 족한거다. 그리고, 정말 특별한 호칭은 둘만 있을 때만 쓸 거니까. 당장 정할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하며 제 볼을 쓸어주는 손에 얼굴을 부빈다. 손이 스친 볼에 희미하게 열이 번져 연한 홍조를 불러일으킨다.
"어떻게냐고 물어도, 음..."
그의 질문이 뜻밖이었는지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 듯 보였다. 고민하는게 아니라 그래보인 이유는 가만히 생각하는게 아니라 자세를 고쳐 아예 그의 무릎 위로 앉고 있었으니까 그랬다. 한결 편하게, 어디까지나 그녀의 기준이었지만, 자세를 바꾼 뒤 금방 대답하는 걸 보면 역시 자세를 바꾸기 위해서 대답을 미룬게 확실한 듯 하다.
"아까도 말했잖아요. 신뢰하지 않았다고. 보여주는 것만을 믿지 말라고 누누히 듣기도 했구요."
보이는게 다가 아니다, 라는 말을 그녀식으로 꼬아서 해석한 셈이 될까. 물음에 대한 답은 그게 다였다. 물은 쪽이 되려 허무하지 않을까 싶을만큼 간단하고 직설적이다. 그걸론 말이 부족할까봐 약간의 설명을 보탠다.
"신뢰하지 않는데 어떻게 마음을 품었느냐면, 그건 본능이 이끌렸다고 해야겠네요. 처음 마주쳤을 때, 맨 처음 인사를 나눴을 때부터 어쩐지 심장이 술렁거렸거든요. 그러고보니 그 때였네요. 처음으로 갖고싶은게 생긴 순간이."
교수들에게 물어보라는 조언까지, 레오는 확실하게 들었다. 오늘 캔 정보들은 나쁘지 않았다. 그들 중 애니마구스가 있다는것. 그리고 '주인님'이라는 자가 아즈카반의 탈옥을 도왔으니 관련 기록을 찾아보면 누구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점. 그리고 크루시오는 어떻게든 막을 수 없다는 점. 그럼에도 레오의 머릿속엔 좋은 생각이 하나 들고 있었다. 어쩌면 그 마법을 카운터 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 아, 가기전에 마지막으로 하나만. "
레오는 지팡이를 꺼내 쥐었다. 가슴 속에 무언가가 불타는 느낌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불이 탈듯 타지 않을 듯 간질간질한 느낌. 레오는 먼저 문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문을 닫았다. 침을 꿀꺽 삼키곤 두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 크루시오, 한 번만 더 해보자. "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고 구역질이 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용서받을 수 없는 저주를 성공했다는 것에서 오는 쾌감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익숙해지는데 도움이 되어야한다는 것이었다. 레오가 생각하고있는 그 마법을 카운터치는 방법을 사용해보려면 먼저 이 마법을 쓰는데에 익숙해져야했으니까. 답지않게 레오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