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니 뭐.. 그런.. 그렇겠지..? 그.. 그래! 쓸 수 있을 정도로! 뭐 상황만 맞으면!!!! "
레오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고 악을 썼다. 일단 이 상황을 넘기는게 중요하니까. 나중에 가서 쓰라고 했을때 안 쓰면 그만인 셈이다. 어차피 학원의 교수님들은 버니가 아닌 레오의 편임을 레오는 잘 알고 있었다. 나중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면 되겠지. 저기가 좋겠다는 말에 레오는 '어디?' 하고 되물었다. 귀곡탑의 문이 열리고 들어오라는 말에 레오는 히끅, 하고 딸꾹질을 해버리고 말았다.
" 어.. 어어.. 거기는 히끅, 들어가면 안되는데..? "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람. 어차피 금기를 배우려고 했는데 귀곡탑 따위가 무슨 상관이야. 레오는 짝짝 하고 제 뺨을 치고는 꾸물거리며 안으로 따라들어갔다. 크루시오부터 가르쳐준다고 했었지. '크루시오' 라는 말을 듣자마자 몸에서 거부반응이 느껴졌다. 살짝 소름이 돋았고 기분이 안좋아졌다. 레오는 지팡이를 쥐고 심호흡을 크게 하며 안으로 따라들어섰다. 음산한 소리가 들렸고 왜인지 모르게 분위기마저 뒤바뀐 기분이다.
크루시오가 무엇인지는 잘 알고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저주중 하나인 크루시아투스 저주. 상대방에게 온 몸의 세포가 불타는 고통을 주면서 흔적하나 남기지 않을 수 있는 고문의 저주. 그 고통은 직접 당해봐서 잘 알고있다. 그렇기에 어떻게 해서든 이것을 막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앞서는 레오였다. 비단 자신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이 저주가 날아들 때 그것을 막아낼 방법을 알아낼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게딱지를 두들기러 가기엔 아직 어떤 마법을 써야 더 효과적인지 감이 잡히지 않고. 그냥 굴러다니기엔 낭비되는 이 시간이 너무나도 아쉬워, 결국엔 반쯤은 자기 의지로 또 뭔가 할만한 일이 없는지 학교 게시판을 확인하러 나갔다. 이번엔 청도 대동하고 나왔다. 안 나가겠다는 것을 억지로 데리고 나온터라 표정이 영 뾰로통했지만 이 정도는 금방 풀릴테니 상관없었다. 그렇게 게시판 앞으로 가 의뢰 목록들을 살피니, 마치 머글들의 웹툰이라는 것에서 나오는 퀘스트 받는 용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제법 묘했다.
목록들을 쭉 살피다 눈에 밟히는 게 있었다. 의무실의 부인이 이래저래 곤란한 모양이었다. 대강 살펴보니 힘 쓰는 일인것 같은데 그렇다면 자신이 빠질 순 없었다. 이정도 왕복 쯤이야 주양에게는 손쉬운 일이다. 매번 내기에 힘을 쓰다가 드디어 뭔가 육체적인 일을 해 보이는 것이었다. 자. 뭘 할지 정했으니 허수아비마냥 맹하게 서 있어봐야 되는 건 없었다. 주양은 당과점으로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고, 기운차게 당과점 문을 열어젖혔다.
"안녕하세요! 몽고메리 부인께서 요청한 초콜릿, 대신 가져다드리러 왔습니다~"
당과점 주인에게 경쾌하게 인사를 하며, 몽고메리 부인이 주문했던 초콜릿 상자의 위치를 물었다. 아. 저것들이구나. 이런 간단한 일을 그동안 안 하고 있었다니, 자신도 꽤 게을러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가 더워 초콜릿이 금방 녹아버릴지도 모르니까, 얼른 가져다주도록 할까.
윤이 벗어나려고 했을 때 그녀는 이대로 놓아줄 생각이 없는 것처럼 그의 옷을 움켜쥐었다. 백마디 말 대신 보여준 하나의 행동은 희미한 집착의 기운을 띄고 있다. 상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민폐에 가까운 그것. 하지만 충분히 떨쳐낼 수 있는 정도였다. 그녀가 쥔 손도, 그 손에 담긴 기운도.
떨쳐내주길 바라는가, 까지는 알 수 없겠지만.
그녀는 대답을 다 들을 때까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윤의 머리칼을 살짝씩 건드는 손끝 말고는 꼼짝도 않았다. 눈을 거의 내리감은 탓에 눈 깜빡임조차 희미하다. 듣는 내내 아무런 동요도, 놀람도 내색하지 않던 그녀가 윤에게서 나온 물음에 겨우 입을 열었다. 짧은 한숨과 함께.
"일전에, 백호의 신탁을 들었어요. 그것을 가까이 하지 말아라. 그것은 너를 저편으로 끌고 가려 한다."
윤의 물음에 대한 답에 더해 자신의 그런 질문들에 대한 설명이라도 하듯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조금전과 비슷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떨릴 것만 같은 울림을 담고 있었다.
리안 : 아! 펠리체양!! 윤 형님의 손을 붙잡았습니다!! 이대로 직진하는겁니다!! 누군가가 그랬다죠! 여자는 행동력이 최고라고!! 남자인 제가 봐도 윤 형님은 최고의 신랑감입니다!! 그대로 부모님한테 데려가는겁니다! 지금 이 기세로 바로 붙잡는거에요!! 자고로 미남은 용기있는 여자가 전부 데려간다는 말이 있으니까요!!
말씀드리는 순가아아안!! 혼자 가지 말라고 합니다!! 이거 자기도 데려가달라는 신호죠!! 형님이 양심이 있다면 이거 뿌리치면 안됩니다!? 뿌리치면 하늘이 노하고 땅이 뒤집어져요!! 이거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바로 채가면 됩니다아아아아아아!!
지금 있는 초콜릿 상자는 3개. 그렇다면 망설일것 없이 전부 다 들고 가면 되는것이다. 남겨봐야 몇차례 더 왔다갔다 해야 하는 번거로움만 생길테니, 지금 남아있는것부터 빠르게 가져다주는게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여나 초콜릿 상자를 놓치거나 하는 일이 없도록, 단단히 꽉 붙들고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의무실을 향해 걸어갔다. 느리게 갔다가는 무더위에 초콜릿이 전부 녹아 못 쓰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으니. 이번에도 신속하게 의무실의 문을 열고서 주양은 상큼하게 웃으며 한쪽 눈가를 찡긋였다.
"오늘도 신속하고 정확한 주궁 서비스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 부인께서 부탁하신 초콜릿 상자 가져왔어요~"
택배사의 로고가 붙은 볼캡만 쓰고 있었다면 영락없는 택배기사로 보일 멘트를 치고서 한 팔으로 상자를 들고 다른 손으로 브이를 만들어서 눈 옆에 가져다댄다. 초콜릿 상자를 한 쪽에 얌전히 내려놓으며, 주양은 뿌듯한 마음으로 꾸벅 인사를 하고 의무실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