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난국이다. 시체나 다름 없는 자를 가까이서 무력화 시키려는 학생 여럿, 겁에 질린 학생 여럿, 크루시오에 고통 받는 교수님, 두려움에 떨다가 참전하는 학생, 그리고 그 사이에서 그는 물빛 머리카락이 흔들리며 뒤로 넘어지는 걸 보았다. 이 일로 또 라온에 모두가 가서 요양을 즐깁시다 같은 대책이 나오면 자퇴서를 때려박든지 해야겠다 생각했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쉽게 되나?
시체인지, 혹은 시체에 가까울 지경으로 엉망진창이 된 것인지 모를 마법사가 돌연 발작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애당초 저 자가 나타난 뒤로부터 좋은 신호는 하나도 있지 않기는 했지만, 저것은 분명 좋지 않은 징조였다. 보통 극단적인 범죄자들은 저런 소릴 뱉은 뒤에 끔찍한 짓을 하기 마련 아닌가.
"엑스펠리아르무스."
처량한 한탄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곧바로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의 발원으로 지팡이를 곧게 향한다. 시취를 풍기는 마법사의 음성이 단말마의 비명처럼 들렸다.
주문이 막힌 것을 확인한다. 이름 모를 백궁 학생이 학생 회장을 쓰러뜨렸고, 혜향 교수님은 상황이 썩 좋아보이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당장 벗어나고 싶었으나, 그러기 위해서는 공격뿐이었다. 민이 다시끔 말하는 시체-적어도 보이기에는 그랬다-에게 몸을 돌렸다. 움직이는 소리라고는 도포끼리 사락거리는 소리뿐이었다.
그분, 주인님, 알 수 없는... 아니지, 정확히는 알아서는 안되는 말들을 늘여놓는 그에게 따로 질문은 하지 않는다. 답을 듣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민은 핏발선 눈으로 지팡이를 겨누었다. 메마른 손이 짐승의 발톱처럼 지팡이를 쥐고 있다. 우뚝 선 몸에서 팔 한자루만이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무감한 표정이 죽은 자의 것처럼 싸늘했다.
"페트리피쿠스 토탈루스"
민이 주문을 속삭였다. 잿가루처럼 흐드러지는 머리카락 사이로 빛나는 눈이 바람 만난 잿불처럼 타올랐다.
레라시오가 명중하는 것을 보고. 뒤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나 싶어 마법사에게서 잠시 시선을 뗀 주양은 뒤늦게 상황을 직시했다. 두 번 연속의 크루시오가 주는 고통은 어떤 것일지 잘 알고 있었다. 교수님의 슬픈 표정을 보며 씁 하고 입맛을 다셨다. 금지된 숲의 들어오기 전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조되는 모습에 마음 속의 뭔가가 짠해지는 기분이었다. 아아. 가엾은 우리 교수님. 불쌍한 우리 혜향 교수님. 이번 일으로 너무 큰 죄책감은 가지지 말아주셔야 할텐데. 자신은 썩 친절한 사람이 아니었다. 허나 교수님의 그런 표정 앞에서도 평소처럼 얄밉게 굴 만큼 독하지는 않았다.
다시 고개를 돌려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악에 받친 것처럼 질러댄 비명에 반응하기에는 몇 템포 늦었으나, 주양은 이를 드러내며 환히 웃었다.
"그 주둥아리에서 나오는 유언이 고작 그 정도야?"
지긋지긋한 주인 타령을 더는 못 들어주겠다는 듯 고개를 살랑 저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그 곡소리도 못 내게 될테지만. 끝까지 앞서 사용했던 화염 마법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자. 마무리는 어떤 불꽃으로 장식해줄까. 솔직히, 맘 같아서는 당장 저 혀뿌리부터 쥐어 뜯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어차피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라면 싹 사라지게 만드는 편이 나았다. 다시 지팡이를 마법사에게 겨누고 주문을 읊조렸다.
이렇게나 무시당했단 말이지. 레오는 지팡이를 쥐고 마법사를 겨눴다.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무섭지않다고 말한다면 거짓이리라. 하지만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미 제 친구가 다쳤고 레오는 무시를 당했다.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씩이나. 저 자가 고통을 받았으면 좋겠다. 고통에 타들어서 바닥에 구르는 꼴을 보고싶다. 온 사방을 구르며 구원을 바라고 살려달라는 말을, 그만하라는 말을 듣고 싶다.
" 크루ㅅ.. "
아냐,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레오는 숨을 거세게 몰아쉬었다.
" 봄바르다 "
지팡이가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마법이 사용되는 것을 본 레오는 그게 맞았던지 빗나갔던지를 신경쓰지 않는듯했다. 몇 번이고 무시당했다. 제 친구들에게 몇 번이고 시비를 걸었다. 레오는 그걸 참을 수 있는 위인이 아니었다. 저 자를 완벽히 쓰러트리면 제대로 낯짝을 확인하고 몇 대를 때려주어야 분이 풀릴 것 같았다.
손날은 제대로 들어갔다. 그녀는 기절해 쓰러지는 윤이 땅바닥에 닿기 전에 낚아챈다. 기절한 사람의 몸은 원래 무겁지만 지금은 그녀의 상태도 있다보니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주변을 돌며 삑삑대고, 저를 노려보는 하얀 담비를 시린 금안이 마주 노려본다.
"따라다니는 것 밖에 못 하는 주제에 시끄러워. 그렇게 소중하면 네 몸을 날려서라도 지켜보던가."
알아듣던 말던 식으로 백설을 향해 내뱉고 기절한 윤을 근처 수풀 혹은 나무 등치 뒤로 끌어다놓는다. 눈에 안 띄면 다시 저주를 맞을 일은 적어지겠지. 윤을 적절히 치워놓은 뒤 무심코 몸을 뒤틀었다가 찍, 하고 재차 찢어지는 소리에 혀를 찼다. 스물스물 번지는 감각이 새롭다못해 징그럽다.
그녀는 다시 마법사를 향해 돌아섰다. 주인님을 위해, 라고 연거푸 같은 소리를 외치기 시작한 저건 이제 시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혜향 교수의 살아는 있을거란 말이 들렸지만 무시한다. 저렇게 살아있을거면 차라리 죽는게 나을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 너의 그 주인님을 위해 죽어."
오직 한가지 생각으로만 머리를 채운 그녀가 다시 마법사에게로 달려든다. 주변에서 무슨 마법을 던지든 무슨 공격을 하든 개의치 않고 그 사이로 몸을 내던진다. 찢기고 터지는 와중, 빛이 형형한 금안과 힘주어 세운 손끝이 마법사의 목으로 향한다. 틈이 있다면 그 틈을, 없다면 제 손톱으로라도 살에 틈을 만들어 그 속을 쑤시고 뜯어 날려버리려 했다.
잡종도, 머글도. 그에게 잘 다가오는 얘기는 아니다. 당연하다. 그는 죽으면 모두 같은 시체일 뿐인데 무얼 경중을 재냐는 가문의 사람이었고, 이 가문은 마법사 전쟁 때도 죽음을 맞은 여러 마법사의 장례를 최선을 다해 지도했다. 누군가를 위한 선행은 그렇게 손가락질로 돌아왔고, 어느쪽이든 전부 혐오스러운 사람들일 뿐이라는 신념이 내려오게 되었다. 발렌타인 샬럿 언더테이커라는 사람은 그 신념을 교육받고 자랐다.
그렇지만 유달리, 그 가문의 사람들 중에서 혐오가 짙은 편이었다.
"그 주인을 비롯하여 너희는 모두 관에 멀쩡히 틀어박히긴 어려울 것 같구나."
그는 달이 뜨지 않은 날 죽은 남성의 시체를 끌어안고 울던 어머니를 떠올렸다. 마른 입술이 환히 미소를 짓는다. 다시금 지팡이를 조준해주며 그는 기어코 다른 손을 휘젓는다. 지팡이가 소맷단을 비집고 빠져나온다. 지팡이를 잡고, 겨누고, 그리고 휘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