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맞췄다. 레오는 한 걸음 물러섰다. 손에 쥔 돌을 내려놓고 다시 고개를 돌려 주변 상황을 돌아봤다. 분명히 같은 학생이었을터인데 정신이 나가있는 모양새였다. 임페리오라면 저런것인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할 시간 따위는 사치다. 레오는 지팡이를 꺼내 근접한 거리에서 마법사를 겨눴다.
셋 씩이나 저 마법사 쪽에 붙었다. 주양은 가볍게 혀를 찼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폭파 마법을 쓰기 더더욱 조심스러워진다. 더군다나, 마법사 쪽에 근접한 사람 중 자신과 인연이 깊은 사람이 무려 둘 씩이나 있었으니, 의도치 않았다고 해도 설령 오폭을 내버린다면 큰일이다. 미안해질 상황은 만들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게다가 이젠 또 다시 임페리오에 맞은 백궁 선배 쪽에서도 아군 공격이 이어졌다. 조종 마법이라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중간에 낀 채 양 쪽의 상황을 지켜보는건 꽤 갑갑한 일이었다. 저 빌어먹을 마법사는 왜 하필 써도 저런것만 쓰는가.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시선을 마법사 쪽으로 돌렸다. 일단 저 쪽을 끝장내는게 우선이다. 그대로 놔뒀다간 대체 얼마나 많은 임페리오와 크루시오를 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역시 근접전보다는 1.5선 정도의 중거리에서 안전하게 화력 지원을 하는편이 더 낫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지팡이를 바로잡고 마법사에게 겨누었다.
동작이 큰 공격은 내지른 뒤 빈틈도 크게 생긴다. 휘두른 다리를 거두는 그녀는 뭐 하나 더 맞기 딱 좋은 상태였지만, 마법사는 방어막을 치고 달려든 그들 중 누구도 아닌 또다시 윤을 노렸다. 같은 주문, 같은 저주로. 급하게 고개를 돌리자 윤이 학생에게 지팡이를 겨누는게 보인다. 좀전엔 머글 학생을 감싸던 윤이 자의로 타 학생을 공격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칫...!"
급하게 뒤로 몸을 빼 윤에게로 돌아간다. 헛발질을 한 탓인지 계속 흐르는 피 때문인지 몰라도 몸이 살짝 무겁게 느껴졌지만 그런다고 멈출 그녀가 아니었다. 자빠질 뻔한 걸 겨우 수습해가며 윤에게 접근해 손을 든다. 잠깐 옆구리를 짚었던 손엔 붉은 피가 한가득 묻어 그새 굳어가고 있었다. 그대로 손날을 세워 윤의 뒷목을 쳐, 완전히 기절시키려 한다. 혹은 정신을 차리게 하던가.
크루시오 주문을 받은 혜향 교수님에게 다가가며, 민은 겨우 비명을 삼켰다. 사실, 그럴 시간과 여력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민은 제게 절단 마법을 사용하는 윤을 향해, 정확히는 보이지 않을 그의 주문을 향해 외쳤다.
"포르테고"
그 일련의 과정이 물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럼에도 민은 썩 확신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야 그럴 것이 모의전을 할 일도 드물었고, 수업에서 배운 것 역시 이렇게 실전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나마 아버지가 그토록 닥달해서 연습한것이 이정도였다. 만약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디핀도를 맞닥들였다가 어떤 꼴을 볼지 생각만해도 끔찍했다. ...그래, 아직 끔찍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지. 민의 시선이 흔들렸다.
물리적인 공격이 빗나가버리자, 단태는 바닥에 발을 디디고 자세를 다시 바로잡았다. 임페리우스 저주가 한번 더 들리고, 고통에 찬 혜향 교수님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서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혜향 교수님이 한번 더 맞은 걸로 추측할 수 있었다.
절단 마법 주문이다. 누구를 향한? 아, 그래. 보름이다. 그러니 그쪽으로 시선이 돌아갈 일이 없지. 네 적에게 무자비하게 굴어라. 암암리에 가라앉은 암적색 눈동자에는 그 어떤 감정보다 선명하게 떠올라 있는 본성이 있었다. 광기라 일컫는 것이였다. 슬그머니 광기가 담긴 단태의 눈동자가 마법사에게 고정되었고 쥐었던 지팡이가 마법사의 목을 정황하게 겨냥했다.
죽었다고? 시체가 말하고 움직이며 사람을 저주한다. 통상의 상식을 벗어난 말이라,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고 의문어린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지독하게 풍기는 악취, 그저 심한 부상이 방치되어 썩어버린 것일 줄로만 알았던 그것이 사실은 정교한 조작으로 움직이는 상태였다고? 숙련된 어둠의 마법사에게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아는 것 하나 없는 상황에서도 이번 일의 배후가, 어렴풋이 짐작되기 시작한다. 정확히는 전적이 있으니만큼 학원에 이런 난동을 부릴만한 어둠의 마법사라 하면 그들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거지만.
"아, 차라리 모르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네요. 비위에 영……."
푸념하며 다시금 마법을 떠올린다. 투덜거리는 말투는 평소와 같았지만, 역시나 표정마저 평온할 수는 없었다. 전투 상황에 대한 긴장을 혐오감이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