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좋지 않다. 그저 기분 탓이라 여기기에는, 언제부턴가 괴이한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감각이……. 그것이 착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흐르다 멎어버린, 고인 피가 썩어버린 듯한 악취가 느껴진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반사적으로 지팡이를 꺼내들었지만 그것을 어디로 향해야 할지 알 수 없다. 그런 도중에도 누군가가 쓰러지는 소리만은 또렷하게 들려서, 신경이 바짝 곤두선다. 하마터면 저를 도와주려던 학생을 밀쳐버릴 뻔할 정도로. 다행스럽게도 혼란한 상황에서도 엘로프가 신경에 들어온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의 도움을 받아 엘로프는 목표지점을 제대로 조준한다.
"스투페파이."
썩은 내가 난다 한들 그것이 생사에서 벗어난 듯한 상태를 하고 있다는 것을 그가 알 리 없다. 저것이 과연 기절할 수 있을까? 당연하게도 지난번과 같은 수순을 밟을 수밖에.
민은 비명처럼 외쳤다. 임페리오니, 크루시오니 금지된 저주의 마법이란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민의 얼굴의 핏기가 사라졌다. 후들거리는 손끝에 겨우 지팡이가 잡혔다. 한계점에 다다른 것같은 이성과 다르게 손은 착실히 움직였다. 첼이 윤을 받아내는 것을 확인한 민은 혜향 교수님 곁으로 뛰어갔다. 혜향교수님의 앞을 가리며 지팡이를 겨누었다.
"스투페파이"
공격 주문은 놀라울만큼이나 쉽게 나왔다. 분명 머뭇거릴 것이라 평생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였다.
문카프의 춤사위를 흥미 하나 담기지 않은 눈으로 쳐다본다. 동물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이들의 사랑스러움이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겠지만, 글쎄다. 아까부터 등이 오싹거렸다. 마치 뭔가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 대다수 이런 불길한 느낌은 들어맞는 법이다. 그는 고개를 돌린다. 문카프가 이미 도망친 걸 보니 보통 겁이 많은 녀석들이 아니겠거니 했다. 한 쪽 다리를 질질 끄는 모습과..시취인가? 그의 코가 예민하게 반응한다.
"죽었군."
아니면 그 직전의 상황이거나. 그가 조용히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저 사람은 곧 죽을 지도 모른다. 그의 감이 확실하게 말해주고 있다. 어떻게 할까 구경하던 그가 임페리오 저주에 미소를 지었다. 환한 미소다. 그 마법사와 한 사람이 겹쳐 보인다. 어머니다. 그가 조용히 누군가를 향해 다가간다. 현궁에는 눈이 좋지 않은 학생이 있다. 팔을 조심스럽게 잡아주며 그가 홀로 중얼거렸다.
"살아있는 것은 맹목적이긴 하지만 언젠가 변하고 말지. 그렇지 않나?"
팔을 들어주며, 목표를 조준하도록 도와주려 한다. 그리고 그 시체에 가까워지는 자를 보며 고개를 기울인다.
"이 상황을 보고 잊지 말아야 하네. 현무는 죽음을 관장한다 하지 않나. 우리는 마땅히 이 상황을 인지하고, 죽음은 인간에 의해 비롯되는 법이네."
그는 지팡이를 들지 않고 검지를 들어 마법사를 향해 선을 그어낸다. 안 봐도 알 것이다. 그가 극에 달한 마법은 섹튬셈프라니 말이다.
바위 투척의 파편의 뒷편으로 그가 뛰쳐나온다. 애시당초 접근전으로 가자고 생각한 것일까, 그는 코를 찌르는 시체 내음에 인상을 찡그렸다. 애시당초 이 상황까지 오게 된거 자체가 우스운 상황이었다. 그와중에 한번 더 윤에게 마법이 날아간 상황, 그는, 상당히 짜증이 난 듯 이를 갈아붙였다. 그래 어디 끝까지 가보자 이거지?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이 기민하게 다가선다. 확실한 일격티 필요하다, 거리가 멀면 확실하게 노리기 어려우니, 작에게 공격을 맞는 한이 있더라도, 좀 더 확실히 급소를 노려야 한다. 하지만 상대는 시체, 그렇다할 급소가 없는 상황.
"그렇다면....."
그의 지팡이가 그대로 그의 팔 부근에 다가선다. 영거리 마법이라 실패하면 바로 반격 당하기 딱 좋은 상황, 하지만 일석이조다. 실패하면 자신에게 어그로가 끌릴 것이고, 성공하면 공격 수단을 봉쇄할 수 있다.
그럼 더 좋지. 온갖 마법들에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하게 지팡이를 다시 드는 마법사를 향해 단태는 들리지 않을 말을 재잘거렸다. 슬그머니 단태의 눈동자가 윤에게 향했다. 임페리우스 저주에 걸려서 포박하기는 했지만 저렇게 발버둥을 친다면 포박은 오래 가지 못할텐데. 임페리우스 저주를 푸는 방법이- 외부 충격을 가하면 풀린다고 했지. 저 치도 마찬가지일까. 단태는 자신의 지팡이를 돌려서 고쳐쥐고 바닥을 차며 마법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혹시 한대 맞는다고 쓰러지지는 않을테지?"
그럼 재미없어. 자기야. 주단태는 둔기로 사용할 예정인지 지팡이를 쥔 손을 마법사의 턱을 노리고 휘둘렀다.
무시무시한 주문이 오가는 상황속에서 민의 얼굴이 굳었다. 민은, 정말로 이 상황이 싫었다. 몹시 싫었다. 풍겨오는 죽은자의 향에 잠시 비틀거렸으나 쓰러질 정도로 정신이 갉아먹힌 것은 아니었다.
혜향 교수님이 일어난 것을 확인한 민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한발자국 뒤로 빠졌다. 교수의 안색을 살피는 민의 낯짝이 여전히 창백했다. 금방이라도 다시 쓰러질까하는 공포에 단단히 질린 것 같았다. 그러나 공황에 질린 얼굴은 금세 화로 돌변했다. 공포를 몰아내기 위해 선택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어둠속에서 민의 눈이 일렁거렸다. 민은 손을 상대에게 고정하고 다시끔 주문을 외쳤다.
이거 참. 루나틱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겠다 싶었다. 어둠의 마법사가 되려면 일단 광기를 탑재하는 것은 기본 옵션인가? 아니. 광기 이상의 무언가였을 것이 분명하다. 오로지 그것 뿐이라면 저렇게 움직이며 이상한 말들을 늘어놓진 않을 것이다. 배후가 있다. 그렇다면, 그 배후는.. 안 봐도 뻔할 것 같기는 한데.
아무리 그래도 저 지경인 상태로 움직이는건 참 악질이지 싶었다.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그. 임페리오 저주라는 것은 시체에게도 먹히는가? 하는 궁금증이었다. 직접 써본적이 없으니 알 턱이 없었다. 지금 꼴을 봐서는 그런것 같기는 한데 말이지.
"에라, 한방 더 맞아라~! 인센디오!"
말이 안 통한다면 도발도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더 뭐라뭐라 할 시간에 공격부터 하는게 낫겠다 싶었기에 다시 화염 마법을 사용했다. 끝내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버릴 그 때까지, 계속 한 없이 타올라라.
윤에게 포박 마법이 걸리는 걸 보고 움찔 했으나 이내 그게 옳았다는 걸 깨닫는다. 직전에 윤이 맞은 저주는 임페리오. 조종의 저주. 그녀는 버둥거리는 윤을 돕지 않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소름끼치게 옷과 살 찢기는 소리와 함께 도포 사이로 피가 튄다. 금새 다리 위로 흘러내리는 피를 보니 옆구리 부근이라도 맞은 걸까. 그러나 더욱 소름끼치는 건 그녀에게서 비명 하나 신음 한가닥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되려 도포를 벗어 바닥에 패대기치며 천천히 돌아선다. 들고 있던 지팡이는 묶은 머리에 꽂아 무슨 머리장식마냥 해놓고서, 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썩은 시체 같은 마법사를 응시한다.
"......"
낮게 몸을 숙인다 싶더니 쏜살같이 달려 그 마법사의 가까이 접근한다. 그녀가 뛰어간 자리엔 점점이 피가 남았다. 지혈도 치료도 관두고 뛰쳐나가 그 마법사의 허리를 날려버릴 작정으로 다리를 뻗어 휘두른다. 그로 인해 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마법사가 죽는다 해도 상관없다는 듯이. 아니 오히려 그러길 바라는 것처럼.
아수라장. 완벽한 아수라장. 지난번의 그것과 같은 아수라장. 레오는 다분히 겁을 집어먹은게 분명했다. 눈물이 바로 밑까지 차올랐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으니까. 모든게 너무나도 시끄러웠지만 이상하게도 레오는 삐 - 하는 이명과 같은 소리만이 들렸다. 처음으로 고개가 돌아가고 보인 것은 저주를 맞은 두 사람이었다. 윤이라는 사람과 교수님. 고통스러워하는것이 눈에 선명히 보였다. 그리고 펠리체. 이번에 새로 친구가 된 그녀가 당한것이 보였다. 고개를 한번 더 돌리자 처음으로 사귀었던 다른 기숙사의 친구인 단태가 뛰쳐나가는것이 보였다. 뿌득, 하고 이빨을 꽉 깨물었고 점차 이명이 가시기 시작했다.
" 그만하라니까.. 그만.. "
허리춤에 채워놓은 지팡이를 집었다. 정신이 나갈것같은, 마치 죽은듯한 텅빈 눈으로 비틀비틀 일어선 레오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들어 마법사를 겨눴다. 앞이 흐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귓전에는 삐- 하는 이명만이 들리고 있었다. 모든 세계가 자신을 제외하고 돌아가고 있는 느낌. 상황에서 완벽히 동떨어진 느낌. 친구가 아파하잖아, 친구가 뛰쳐나가잖아. 그러니까 나는 무시당한거잖아. 뿌득, 하고 한 번더 이빨을 꽉 깨물자 그제야 해무가 걷히는 기분이었고 주변상황을 오롯이 인식한 소리가 들렸다.
" 그만하라고 이 개새끼야!!! 쳐죽여버린다 너!! "
지팡이도 내던졌다. 그야, 친구가 뛰쳐나가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바닥에서 짱돌을 하나 집어든 레오는 단태보다 먼저 더 빠른 속도로 뛰쳐나갔다. 무시당하고는 살 수 없었기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