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하는 생각이 순간 스쳐지나갔다. 목욕도 하고 바람도 선선했고 달빛도 공기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오늘 또 새로운 친구가 생기기도 했고. 좋은 일일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레오는 그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답하며 이히히, 하고 웃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자신이 친구로 있어서 좋은 점은 또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보게된다. 그러고보니. 아, 생각하기 싫은게 생각났어. 울던 눈동자. 원망하던 목소리. 레오는 잠깐 미간이 구겨졌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젓고 다시 이히히, 하고 웃었다.
" 그리고 또.. 너도 누가 시비걸거나 괴롭히면 말해. 그게 누구던, 어디에 있던 내가 가서 쳐죽여줄테니까! 이건 진심이다? "
저번에 그 거리감이 이상했던 녀석에게도 했던 말. 레오는 잠깐 움찔했지만 이내 자기 손에 닿은 볼을 슬며시 만지작거렸다. 또 다시 이히히, 하고 웃은 레오는 잠시 손에 닿았던 그 온기를 기억했다. 레오는 놓았던 손을 다시 잡아 자기 볼에 가져다댔고 펠리체가 그러했던것처럼 잠시간 볼을 부비적대다가 자기 머리위에 손을 얹었다. 그래. 마치 그녀가 그러했듯이 짐승이 자신은 위험하지 않다고, 쓰다듬어도 된다고 말하듯이 그렇게.
" 그런 모습으로 기억해줘도 좋고,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미지로 기억해줘도 괜찮고. 뭐가됐든 내 친구로만 남아줘. "
내가 바라는건 그거 하나야. 레오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곤 미소를 지었다. 뒷짐을 지고 한 걸음을 앞서 나간다. 시간이 늦었으니 돌아가자는 말. 레오는 그럴까? 하고 말하며 뒤를 돌아 이히히, 하고 웃으면서 그럼 같이 돌아가자. 갈라져야 할 때 까지. 그렇게 덧붙이면서 옆자리에 섰다. 발걸음을 맞춰 걸었고, 걷는 동안 무언가 더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달이 너무 밝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오랜만에 눈이 번쩍 뜨이는 광경이었다. 귀여운 생물들이 정교한 춤을 추는 모습. 레오는 저도 모르게 두어 걸음을 더 다가가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자리를 잡고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한 마리 데려가서 키우고싶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전에 보았던 크날도 그랬지만 이 녀석은 더 귀여운 것 같아. 레오는 에헤헤 하고 웃으면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문카프가 사라지고 불길한 소리가 들린다. 교수님의 경계하는 모습. 레오는 뭐지? 하고 고개를 갸웃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저기 누가 오고있는것 같은.. "
말을 마치지 못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저주라면 잘 알고있다. 임페리우스 저주. 다른 사람을 뜻대로 조종하는 세뇌의 저주. 크루시아투스 저주. 온 몸의 세포가 불타는 고통을 주고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고문의 저주. 그리고 살인의 저주 아바다 케다브라. 그 중 두개가 눈앞에서 시전되었고 그 중 하나는 직접 몸으로 겪어본 것이었다. '크루시오'라는 말을 듣자마자 레오는 지난 날의 고통이 오버랩되었다. 숨이 가빠진다. 시야가 흐려진다.
" 히이- 히이이.. "
답지않게, 레오는 주저앉았다. 도망쳐야해. 저렇게 아픈건 감당할 수도 없고 두 번 다시 겪고싶지 않으니까, 도망쳐야해. 바닥에 주저앉아버린 레오는 천천히 몸을 뒤로 밀었다.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멀어지려했다. 주먹을 꽉 쥐어 바닥의 풀이 뜯겼다. 레오는 높고 거친 숨소리를 흘리는 수 밖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문카프들을 발견하고 그 춤을 구경하는 것까진 아무 문제도 없었다. 이대로 무사히 관전을 마치고 돌아가는 걸까. 기숙사로 가면 조금 놀자고나 할까.
그런 느긋한 생각들이 무색해지게 불길한 소리가 들려온다. 무언가 끌리는 소리. 옷이 끌리는 소리 같진 않다. 소리 다음은 악취, 그 다음은 흉측한 몰골의 불청객이 그 앞에 나타났다.
"선배!"
불시에 저주를 맞은 윤을 보고 그녀는 쓰러지는 윤의 몸을 받아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그와중에 누굴 감싼건가. 우왕좌왕 하는 상황 속에서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시체 같은 마법사를 본다. 어둠 속에서 금안이 시리게 반짝인다. 입김이라도 나올 듯 찬 목소리가 주문을 읊는다.
한참 춤사위를 벌이던 문 어쩌고가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 들리는 이 불길한 인기척 때문인건가? 심상치 않은 기운에 미리 머리를 묶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이 들어왔을 리가 없다. 그냥 숲도 아니고 무려 금지된 숲인데.
달빛 아래로 꽤 기괴한 마법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리 봐도 산 사람의 꼴은 아닌데도 움직이는 게, 설마 아까 길을 잘못 들어버려서 미쳐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을 주었다. 분명 뒤를 잘 따라왔으니 그건 아닐 터였는데. 그렇다면 저건 도대체?
"와~ 냄새 봐. 청이가 일주일동안 안 씻어도 너보단 향긋하겠다~"
말이 통할지 안 통할지도 불분명한 상대에게 도발을 거는 쓸데없는 짓을 하고서 지팡이를 들었다. 어지간하면 뒤로 내빼서 무기 사감님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겠으나 또 다시 주변 사람들이 저주 마법에 맞는 광경을 본 이상 가만히 있는 건 주양이 아니었다. 눈빛이 순간 희번득해졌다. 오냐. 저 모양을 하고서도 결국엔 어둠의 마법사란 말이지. 그렇다면 산 사람의 꼬락서니가 아니라고 해도 그냥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달빛이 찬란하게 내려쬐는 하늘 아래서, 신비한 동물들의 춤사위 뒤로 이어지는 혈투라. 꽤 아찔했다. 지팡이를 들고 자연스럽게 상대에게 겨누었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잠시간 인지부조화를 느낀 것인지 잠시간 눈을 끔뻑이지만 이내 상황이 이해가 된 것일까, 그는 순식간에 지팡이를 꺼내들고 숨을 골랐다. 괜찮아, 문제 없어. 그냥 저번과 같이 실수만 하지 않으면 된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숨을 내쉰 뒤 그대로 돌맹이를 들어 올린다.
"피안토 듀리(Fianto Duri)-잉고르지오(Engorgio)"
동시에 돌멩이를 던지며 지팡이를 휘두르자 돌맹이가 보통사람의 3배 크기의 바위로 변하였고, 그는 그 바위를 향해 한번 더 마법을 날렸다.
"봄바르다(Bombarda)!"
동시에 한번더 폭팔이 일어나고, 그 폭발을 추진제 삼아 바위가 둔중한 소리와 함께 마법사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후속타가 필요하다는 것일까, 그는 바위가 날아가는 것에 보조를 맞추며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혜향 교수님의 반응에 단태는 윙크를 했다. 자연스럽고도 뻔뻔스러운 태도였다. 문카프에 대한 설명을 듣던 중이였는데 불길한 기척이느껴졌다 싶었을 때, 문카프들이 자취를 감췄다. 뭔가 오고 있다는 결과에 이르고 단태는 만지작거리고 있던 지팡이를 빼들었다.
하필이면 이런 날에-라고 생각했디ㅣ. 백궁 학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들어봤던 금지된 저주가 단태의 귀에 꽂혔다. 임페리우스 저주. 뒤이은 건- 경험해봤던 고문 저주였다. 호기심에 반짝거리던 암적색 눈동자가 암암리에 가라앉는다. 단태는 아무 표정 없이 앞으로 고꾸라진 윤을 향해 지팡이를 움직였다.
"인카서러스."
.dice 1 2. = 1
통했는지 통하지 않았는지 확인할 정신은 없었지. 완화는 되었을지 언정 완전히 사라져버린 건 아니었으니까. "오늘이 보름이라서 다행이야." 무자비한 고통을 주는 고문 저주를 경험했다. 그런데, 그게 뭐. 주단태가 히죽- 웃었다. 피골이 상접한, 마법사를 향해 한걸음 내딛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