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우리 여보야는.. 언제나 내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다니까~?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네..!"
막상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눈물나게 오글거렸다. 지금이라면 볼따구를 좀 꼬집어준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당근을 흔드는 것은 아니다. 단지 주양의 부끄러움이 버틸 수 있는 한계치를 넘었던 것이다. 어딘가 고장나버린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볼따구를 콕 꼬집어 살살 늘렸다가 손가락을 떼고. 또 볼따구를 늘렸다가 손가락을 떼고를 반복했다. 동화학원의 시간표 중에 호칭 연구하기 과목도 있었던가? 자신이 못 봤을 뿐이고 분명히 존재할거라는 생각이 당신의 호칭들에서 강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괜찮아. 다칠 것 같으면 우리 사감님이 멋지게 지켜주시거든! 그리고 뭐. 위험한 상황을 겪으면서 그런 영광의 상처 하나쯤은 있어줘야 좀 더 멋있게 보이는 거 아니겠어?"
이미 한번 사감님의 도움을 받은 전적이 있었다. 그 다음 단계는 순조롭게 공을 쳐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문득 수업 이후에 자신이 보았던 그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누구지. 대체 누구였기에 그 곳에서 지켜보고 있었지. 다음에도 비행술 수업을 듣는다면 같은 자리에서 그 사람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당신도 수업이 끝나고 돌아다니던 중에 그 사람을 보았을까.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전부 다 쏟아내기엔, 너무나 번잡스러울 것이 분명했다.
아.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았구나. 이번에도 마음이 앞서버렸다. 다시 얌전이 당신이 말해주는 설명을 귀담아 들으면서 집중했다. 조종 저주와 고문 저주를 같이 사용했다니. 상당히 창의적이라고 생각했다. 고문 저주로 저항할 의지조차 꺾어버리고, 조종 저주를 통하게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고문 저주만으로는 맨 정신으로 버티기 힘드니 조종 저주로 그 당시를 기억하지 못하게 만들어 아득바득 버텨내게끔 만드는 것일까. 씁 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 방법이라면, 졸업하고 나서는 직계 놈들도 방계 놈들도 옴짝달싹 못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후 마법부에 잡혀가 아즈카반에 수감된다는 너무나도 큰 디메리트가 있겠지만 자신이 누구인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전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려버리는 사람이었다. 그런 마법을 써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자신은 그 디메리트조차도 즐길 것이었다.
"음흠, 뭔가 여러 모로 대단하네~ 살인 저주에 대해서는.. 뭐. 그건 더 말할것도 없으려나? 말 그대로 제일 악질인 저주일테니까."
순식간에 사람 하나를 골로 보내버리는 저주. 허나 앞의 예시들을 생각해본다면 차라리 그건 얌전했다. 악질이라기엔 조금 애매한 면이 있었다. 순식간에 목숨을 앗아가는 것과, 맨정신이 붙어있는 채로 불구덩이에 던져진듯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저주. 둘중 무엇이 더 악질이냐 한다면 주양은 스스럼 없이 후자를 택할 것이었다. 이미 두번씩이나 크루시오를 연달아 얻어맞은 전적이 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머. 우리 여보야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뿌듯하네! 앞으로도 더 열심히 지켜줄게. 누군가에게 보호받는 것보다, 누군가를 지키는 것이 더 익숙하니까, 나는? 에이. 보호하는 데 조심이 어디 있어~ 방법이야 어쨌든 우리 여보만 안 다치면 그걸로 만족한다구."
설령 그 과정 중에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마저 지금 이 일상적인 상황극에 충실한 모습일 수만 있다면 상관 없었다.만들어진 관계로 자신이 얻어가는 기쁨만큼, 당신 역시 아찔하고 즐거울수만 있다면 그것보다 더 만족할만한 상황은 없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주양의 이상한 사고방식이 적용된 생각이었기에 아니다 싶은 부분도 없지 않겠지만.
"그러니까 여보도 가능하면 다치지 않기. 오케이~? 봐봐. 여보가 다치면 걱정할 사람이 한둘이 아닌걸! 대표적으로는 일단 내가 있잖아?"
"그러고보니 꽤 오랫만이지?" "그러게요. 부장님이 스파링을 저한테 걸어오는건 근 1달만 아닙니까? 근데 갑자기 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쓰고 싶어서." "규칙은요?" "단판, 그리고 무기, 마법 사용 금지. 마지막으로..... 패배를 인정하는 순간까지 간다."
케인의 우람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근육질과 대비되는, 마치 표범을 보는 듯한 날카로운 인상의 얄쌍한 근육이 대조되 보인다. 그러고보니 처음의 만남은 서로가 서로에게 주먹질 시비가 붙어서 였었지. 싸움의 이유는 까먹었지만 그들의 싸움은 어차피 이제 와선 거의 스파링과 같은 느낌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 둘을 바라보는 잭과 루인은 죽을 맛이었다. 말 그대로 주먹과 주먹이 오가는 싸움이고 사감한테 걸리면 징계 수준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치료 마법을 거는 건 그들이 해야할 것이었고, 저 둘이 친해진 계기가 주먹질로부터였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싸우는 수준은 말그대로 살벌하기 그지 없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리안이 천천히 고개를 들고 그대로 루인을 바라보았고, 루인의 숨을 가볍게 고르며 손을 들어올리자, 그 둘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한다.
"하아.... 그럼 양자 진지하게....."
숨 소리마저 죽어들고....
"승부!"
루인의 외침과 동시에 케인과 리안이 어깨를 맞부딪힌다. 서로에게 금방 주먹이라도 날릴 기세였지만, 이미 서로의 수를 알고 있다는 듯이 그대로 머리를 서로의 이마에 부딪힌다.
"힘은 안죽었구나! 케인!" "부장님의 주먹정도는 받아내려면!!" "그래!! 그래야지!! 더 제대로 된걸 보여달라고!! 내가 뭔가 더 보고 배울수 있게!!
케인의 오른 주먹이 거세게 날아든다. 턱을 노린 일권에 리안이 살짝 무릎을 굽혀 뒤로 빠지고, 그 틈새를 노렸던 케인이 그대로 왼손을 들이 밀어 그의 머리를 붙잡고 그대로 바닥에 찍어 누르려한다. 순순히 당해준다면 아마 그대로 그의 머리가 땅에 찍히고 마운트 포지션으로 들어갈 확률이 높았다. 거구로 찍어 누른다면 리안은 절대 빠져 나올수 없겠지. 이미 익스큐즈된 상황인걸 알고 있던 리안의 오른 주먹이 그대로 케인의 왼팔을 강타하고 그 충격에 케인이 이를 악 다문채 왼팔을 부여 잡은 뒤 그대로 리안을 바라본다.
물어보는 와중에도 케인의 주먹이 빠르게 휘둘러 진다. 무거운 일격 가운데 빠른 잽을 섞어 피하기 어려웠지만 무거운 일격은 피하면서도 계속 빠른 잽을 가드로 막아내며 리안이 품으로 파고 든다.
"100전 50승 50패! 승률은 반반이었다!" "그럼 부장님 1패 적립!"
리안이 품에 들어 올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케인이 크게 휘두르려던 훅 자세 그대로, 팔을 벌려 그대로 리안을 안아들려고 한다. 베어 허그, 리안과 케인의 체격차가 제법 있는 상황에서 이대로 베어 허그를 당한다면 큰 피해를 입으리라. 수 싸움, 말그대로 서로가 서로를 노리고 드는 수 싸움이었다. 지난 87전때 있었던 상황과 비슷하지만 변칙적인 상황에서 리안은 오히려 케인의 품안으로 파고 들며 명치를 향해 스트레이트를 휘둘렀다.
"크흐!" "!"
새된 소리와 함께 침방울이 튄다. 하지만 이 일권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은 리안의 예상 밖, 케인의 양팔이 거대한 덩굴마냥 그를 옭아 매었고, 그 엄청난 압박감과 함께 리안의 입에서는 괴로운 신음이 흘러 나왔다.
"으으으으!!" "젠장.... 그거 이전에 썼던 수법 아닙니까!! 이제 그만 포기하시죠!!" "느어..... 아직..... 안 끝난거 모르지!"
동시에 리안의 머리가 케인의 안면부를 강타한다. 하지만 워낙에 힘을 줬기 때문일까? 몇번의 박치기가 안면부를 강타하고나서야 힘이 풀린듯 그 둘은 그대로 거리를 벌릴 수 있었고, 이를 꽉 깨문 그들의 거친 숨이 서로가 서로를 향해 신호를 보내는 듯 싶었다. 다음이 마지막이지? 네, 마지막입니다!!
그는 손을 거둔다. 받아먹는 모습을 보고 하마터면 몸서리를 칠 뻔 했다. 살아있는 사람의 온기는 자신의 것으로도 충분하다. 손을 털고 가려진 눈을 손으로 짚으며 한숨을 쉰다. 자주 놀러온다는 말이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귀찮음은 보존 된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타니아가 떠나니 당신이 나타나지 않은가. 물론 타니아는 말이라도 통하는 아이라 애초에 비교할 것도 아니었지만.
"준다면 먹겠지만."
그는 고개를 기울인다. 예민한 눈빛을 치켜뜬다. 이어지는 말에 머리가 바삐 돌아갔다. 중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머리를 맴돈다. 당신을 데려왔다고 하면 교내에 추종자가 있단 뜻인가? 그의 분홍색 시선이 한참동안 고요히 당신을 응시한다.
"재밌는 사실이군. 기회가 된다면 소개시켜주게."
그가 웃는다. 미소가 입매에서 시작해 얼굴로 퍼져나간다. 죽기 직전 원없이 모든 것을 이룬 사람처럼 고요한 미소다. 타니아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비명을 지르며 넙죽 엎드리거나 도망쳤을 것이 뻔하다. 그가 이렇게 미소를 짓는 일은 필히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란 뜻이니.
"잠옷이네. 오늘은 나갈 일이나 손님을 받을 일도 없었거든. 그런데 자네가 들어왔지."
그렇다고 온 사람을 내쫓을 정도로 예민하진 않았다. 아마도. 저 멀리서 달링이 아가를 듣곤 빽 소리를 질렀다. 질투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달링을 돌아보며 괜찮다는 듯 손을 휘적인다. 그리고는 당신을 응시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