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링의 목에서 끄르륵대는 소리가 난다. 이 크고 영리한 까마귀는 며칠 전 기분이 좋은 고양이가 골골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걸 또 배워 이렇게 하면 더 예쁨 받을 것이라 믿는 것이 분명한 행동이었다. 그는 소리내어 웃으며 얼굴을 파묻어 일어났던 깃털을 정리해준다. 이 영리하고 예쁜 아이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나. 그렇게 단란한 하루를 보내나 싶었더니 낯선 날갯짓 소리가 들려온다. 매다. 그것도 작은. 고개를 휙 돌린 달링이 불만스러운지 까옥거리는 소리를 낸다.
"달링, 괜찮아. 착하지. 길 잃은 아이인 것 같으니 공격하면 못써. 반갑구나, 아가. 여긴 어쩐 일로 왔니."
달링은 영리한 만큼 질투심도 강했다. 예쁨 받는 시간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분위기가 깨진다는 것 또한 확실하게 인지한다. 보라. 벌써부터 저 작은 매의 목을 움켜쥘 생각에 눈이 조류 특유의 광기로 물들지 않았나. 그는 달링을 품에 꽉 붙들어 맨다.
"달링, 피앙세. 윤기나는 내 여신아. 응? 내일 수업이 끝나면 하루종일 시간을 내어주마. 그러니 오늘은 눈 감고 넘어가주렴. 착한 달링. 사랑스러운 우리 달링.."
달링은 마지못해 수긍하듯 꾸물꾸물 몸을 비집고 나와 횃대로 휙 날아가버린다. 매는 찰나를 놓칠새라 입에 무언가를 물고 다가왔고, 그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젤리?"
포장 된 지렁이 젤리. 그는 자리에서 가볍게 앉듯 몸을 숙여 지렁이 젤리를 주워 올린다. 이 포장을 뜯어줄 사람을 찾기 위해 온 것인가 고민한다. 그렇지만 보통, 맹금류는 쥐의 가죽도 쉽게 뜯어 쪼아먹지 않나. 아마 가까이 오라는 뜻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한 걸음, 두 걸음. 가까이 다가가며 그가 매를 잠시 쳐다본다. 이렇게 보니 누군가 키우는 매임은 확실한데..
"어머. 이 정도는 여보야랑 나한테 기본 옵션 아니었던가~? 아주 약간의 진지함 앞에서 흔들릴 마음이었다면 애초에 이러지도 않았을거라구. 당연히 알고 있지! 아주 잘!"
무엇보다. 당신이 먼저 간단한 한 마디로 아주 살짝 경직된 분위기를 잘 풀어주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자신도 그 이상으로 독하게 굴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그럴 수 있느냐를 묻는다면, 절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주양 자신이 진심으로 독하게 굴어야 할 상대는 당신이 아니었으니.
자. 그렇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다시 이 만들어진 관계를 한껏 즐기는 것이었다. 분위기가 끊어지지 않고 잘 이어졌으니 그거면 되었다. 더 뭔가를 얹어봐야, 이래저래 복잡해지고 더 진중한 분위기가 될 뿐이었다. 또 다시 난생 처음 들어보는 수식어가 붙었다. 세상에. 작은 호박 아가씨는 또 뭐란 말인가.
"으. 근데 나는 하나도 안 작은데.. 그냥 호박 아가씨 하면 안 되는거야, 여보야?"
허니버니에 이어서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새로운 호칭이 추가되었다. 그래도 역시 이것이 지금의 이 관계를 즐기기에는 좋았다. 질릴 일 없이, 계속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면서 감정 기복을 확실히 느끼게 해 주는 일이었으니까. 그런 재밌는 일을 그냥 놔둘 순 없었다. 이전에 서술했듯, 비록 그런 상황 속에서는 이런 생각조차 뒷전으로 미뤄둔 채 이리저리 휘둘리기는 해도. 슬쩍슬쩍 무거워지던 눈꺼풀이 포옹이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되돌아왔다. 역시 편안함은 참 이상한 기분이다. 주양은 당신의 이야기에 산뜻하게 공감하면서 슥 웃었다. 설명할 필요 없는 관계. 맞는 이야기다.
"으음~ 여보야가 그랬다니 내가 진작 알아줬어야 했는데! 역시 내 흥미대로 움직이지 말 걸 그랬나? 맞아. 비행술 수업 들었지! 좀 이래저래 고생하기는 했지만 재미있었어~"
어쩌면 아는 사람이 곤 사감님 빼곤 없었다는 점이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블러저를 받아치지 못한 건 둘째치고, 파편을 이끌며 학생 사이를 종횡무진했으니, 분명 평판이 보기 좋게 깎였을 것이다. 그 과정 중에서 아는 사람이 자신때문에 다치기라도 했다면 더더욱.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들었다는 이야기에 반응하기도 전에 에반스 교수님이 결혼하셨다는 정말 뜻밖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주양의 눈이 잠시 휘둥그레졌다가, 곧 장난기를 한껏 머금었다.
"진짜? 헐, 완전 대박이다! 누구랑 결혼하셨을까나, 우리 에반스 교수님은~? 여보야. 나중에 나랑 같이 에반스 교수님의 결혼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않을래?"
한껏 앞서버린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누구랑 결혼했는지 들었냐고 물어보는 대신 당장 결혼 상대를 찾아내러 뛰쳐나갈것같은 기세로 당신에게 제안했다. 알아낸다면, 소노루스 마법을 써서 여기저기 알리고 다니겠지. 이미 장난기 심한 청궁 사람들이 실천했을지도 몰랐으나 그런건 개의치 않았다. 이런 희극은 알리는 게 좋다는 생각 뿐이었다. 물론 에반스 교수님의 성격 상, 그랬다가는 정말 울어버리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조금 주춤했지만. 일을 키우는건 전문이지만 규격 이상으로 커져버리면 수습이 심히 난감하다는 걸 알았다.
"금지된 저주! ... 저주? 아. 역시 저주라면 그것들이겠지?"
기어코 주체하지 못한 흥이 여기서도 터져나올 뻔 하다가 급제동을 걸었다. 차마 입 밖으로 내진 않았으나 금지된 저주라는 말에 떠오르는 게 있는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크루시오 하나만큼은 자신이 끝까지 기억할 생각이었다. 자연스럽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다시 그때를 떠올려보니 이래저래 상큼한 기분이었다. 목소리.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그 모습마저도 아직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남자 하나. 여자 하나. 남자는 상시 울고 있었으며, 여자는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어 많이 억울해했지. 언제 또 만날 수 있게 될까. 눈매가 가늘게 호선을 그린다.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한 번 낙인찍은 이상 절대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지 않을 테니까.
"꽤 유용했겠는걸? 그러면 그것들을 방어하는 방법도 배웠으려나? 아니면 아직 학기 초라서 간단하게 금지된 저주에는 뭐가 있는지 훑어보는 정도였다거나. 만약 방어하는 방법을 배웠다면 살짝 귀띔해줘, 여보야~"
자신은 그걸 듣지 못 했으니까. 놓친 수업 내용은 역시 친한 사람들에게 듣는게 좋은 일이었다. 수업 진도를 따라잡기 위해선 이 편이 훨씬 나았다.
그는 심약한 편에 들지 않는 사람이다. 시체를 대하는 직업 특성상 부검에도 여러번 참관했고, 현장에서 죽은 시체의 조각을 수습하기도 했으며, 직접 시체를 닦는 등의 일련의 과정을 걸쳐 관에 안치하는 일이 학생이 아닐 때의 본업이기도 하다. 가문 자체가 장의사 일에서 그치지 않고 요컨대 죽음과 가장 밀접한 가문이다 이 말이었다. 머글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을 지 모르지만 일단 머글보다 기술 발달이 늦고 여러 인식이 중세에 머무른 것 같은 마법사 사회에서 가장 강심장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은 난생 처음인지라, 그는 놀라 발을 헛디뎌 뒤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달링도 깍깍 소리를 지르며 경계한다. 그의 가문에 애니마구스가 있을 리가. 신경질적인 눈으로 올려다 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혀를 차며 아직 물기가 남은 머리를 쓸어넘긴다.
"그래. 자네는 아가라고 부를 입장이 전혀..아니군 그래."
그는 일단 젤리를 낚아채듯 하며 자리에서 느릿하게 일어섰다. 포장을 뜯기 전 힐끔 쳐다보는 것이 당신이 여기 왜 있는 지 모르겠다는 눈치다. 교정 안에 메구의 추종자가 있다. 그것도 그의 방 안에. 교수님께 말씀을 드리면 되는 일인가 싶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렇지도 않다. 괜히 귀찮아질 일이 생길 지도 모른다. 차라리 적당히 어울려주고 보내주는 것이 낫겠지. 저번처럼 했다간 이번에도 어머니께서 사람을 보내 입을 죄 꼬맬 지도 모르고.
그는 긴 손톱으로 능숙하게 포장을 뜯는다. 힘이 조금 들긴 했는지 드러난 앙상한 손등에서 힘줄이 잠깐 불거진다. 젤리의 포장을 여는 것조차 힘이 들 일인가 싶긴 하지만. 그가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속삭이듯 당신에게 면박을 주듯 입을 연다.
분위기는 풀렸으니 굳이 그것을 이끌고 갈 이유는 없었다. 분위기를 바꾸거나, 진실을 가리는 건 익숙했다. 주양의 말에 헤죽- 미소를 지으면서 단태는 느물느물한 목소리로 몇가지의 호칭을 더 덧붙혔다. "호박 아가씨라고 부르면 그건 자기에 대한 칭찬이 아니잖아?" 하고 느물하게 덧붙히는 것이 뻔뻔하다. 아주 뻔뻔하다. 주단태의 낯에는 분명 철판 하나가 씌워져 있는 게 분명하다.
"자기야~ 그게 자기의 수만가지 매력적인 장점 중 하나잖아? 나는 충분히 이해해. 내가 이해하지 않으면 누가 자기를 이해해주겠어, 안그래?"
이래저래 고생했다는 말에 단태는 주양의 얼굴, 정확히는 뺨과 턱 사이에 손을 대고 자연스럽게-혹은 뻔뻔하게- 이리저리 돌려서 관찰했다. 비행술 수업에서 고생했다면 혹시나 다쳤을 가능성이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다치지는 않은 것 같네. 다행이야. 달링~" 자연스러운 관찰과 뻔뻔스럽게 이어지는 느물느물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단태가 능청스레 히죽, 미소를 머금었다.
"반지를 끼고 오셨길래 물어봤지~ 말씀하시는 걸 보니 교수님들 중 한분인 것 같은데~ 오! 그럴까. 자기? 나도 거기까지는 물어보지 못했거든. 너무너무 궁금하지?"
이럴 때 보면 현궁이 아니라 청궁에 가는 게 맞지 않나 싶을지도 모르겠다. 알아낸다고 해도 여기저기 알릴 생각은 없었다. 에반스 교수님이 당황스러워하는 건 보고 싶었지만 울어버리시는 건 좀 여러모로 곤란했다. 안그래서 불성실하고 경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교수님을 울린 학생이라는 이미지까지 얹어지면 곤란했다. 단태는 걸음을 옮기면서 루모스로 불이 밝혀진 자신의 지팡이를 마치, 지휘봉이라도 휘두르는 것처럼 허공으로 흔들었다. 유연성이 없는 지팡이는 둔탁한 소음만 들려온다.
"일단 에반스 교수님이 금지된 저주를 사용하시지는 않아서 이론 위주로 하기는 했지만- 고문, 조종, 살인 저주 중에 저항할 수 있는 건 조종이야. 고문 저주와 살인 저주는 막을 방법은 없다~ 그리고 고문 저주는 시전자의 역량에 따라 그 위력이 증가하고~ 죽이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다~ 정도?"
고통은 익숙했지만, 크루시오를 맞았을 때의 고통은 이제껏 경험했었던 고통과 비견되지 않는 고통이였다. 그 무자비한 고통. 가늘어진 눈매에서 암적색 눈동자가 슬그머니 암암리에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