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의 오늘 풀 해시는 자캐가_숨이_찬다면 : 얘는 지금 말하는 걸로도 숨이 차서 그렇게 속삭이듯 말하는 거라서요. 🙄 그래도 가쁘게 숨쉬면서 아랫 입술을 꼬옥 물 것 같아요.
자캐에게_언제부터_이렇게_예뻤나라고_묻는다면 : 제 진단에 땃태가 온 것 같아요...정말 싫어할 것 같아요. 아마 연애를 한다고 해도 그런 말은 싫어할 것 같아요. 얼굴이 붉어져선 고개를 픽 숙이고 "그런 말 들어봤자 하나도 안 좋으니까 그만 하지." 라고 밀어내면서...
그가 찾아낸 물건은 라쉬가 예전에 쓰던 리쉬였다. 그러니까 개 줄. 이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면 지금부터 천천히 구상해볼 생각이다. 이걸 그대로 주는 건 정말 하면 안 될 짓이고. 개는 공 좋아하는데 고양이는 어떻지? 언뜻 듣기에 고양잇과 동물들이 끈 가지고 놀길 좋아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 있었다.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끈이랑 공을 적당히 합치면 꽤 괜찮은 게 나올 것 같은데…….
여기서 하나 되짚자면, 그는 손재주가 그리 좋지 않았다. 정확히는 힘조절을 잘 못 하는 편이다. 물건을 뜯어붙여서 무언갈 만드는 것이 분명 처음 목적이었는데, 만들어진 작품은…… 그냥 너덜너덜하게 뜯어진 무언가였다. 어떻게든 만들어낸 작품은 강아지용 터그놀이 장난감과 고양이 낚싯대의 중간 정도의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비록 한 번은 쓸 수 있을지 의심될 지경으로 너덜너덜한데다, 어쩌다보니 만드는 과정에서 줄에 꿴 테니스 공을 실수로 반 정도 쪼갈라버리기도 했지만, 아무튼 완성은 완성이었다.
라쉬가 그 결과물을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보고 있었지만 그것은 엘로프는 모를 일이다. 그는 완성된 흉물을 들고 리를 찾아갔다.
일없는 저녁, 기숙사 침대에 누워 설렁설렁 책장을 넘길 때만큼 평화로울 때가 또 있을까? 난 이보다 평화로운 시간은 달리 없다고 생각해. 리치가 있으니까 외롭지도 않구. 게다가 여긴 온전히 나 혼자 쓰는 방이니 다소 무방비한 차림을 하고 있거나 방정맞은 자세를 취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도 않지.
예를 들면, 야시시한 차림으로 폴댄스라던지? 아, 이건 어디까지나 예시일 뿐이야. 진짜 그러진 않아. 옷은 있어도 봉이 없는 걸.
집에서도 이렇게까지 자유롭진 못 해. 파이라던가 파이라던가 파이가 시도 때도 없이 방문을 두들겨대거든. 파이 말로는 방학 때 밖에 못 보니까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그렇다는데 솔직히 짜증나. 약속만 아니면 진작 몇대 걷어찼을거야. 진심 100, 아니 1만배 담아서.
팔락.
잠깐 생각이 집과 파이로 새긴 했지만 착실하게 책도 보고 있었으니까 새롭게 책장을 넘겼어. 무슨 책을 보냐구? 그냥 책이야. 두꺼운 표지에 새하얀 종이에 까만 글자가 빼곡하게 적힌 책. 펼친 페이지를 다 보면 넘기는게 맞잖아. 그래서 넘겼어. 다음 페이지도 한가득 글자가 있으니까 이걸 다 보면 또 넘길거야.
바각바각.
냐오- 냐오오오-
바각바각.
익숙한 소리에 시선을 돌리니까 사랑스러운 리치의 쭉 뻗은 등이 보였어. 문 앞에 앉아서 발톱으로 문을 긁고 있는 저 하얀 고양이 말야. 사랑하는 리치. 소중한 내 패밀리어. 나는 보던 책을 덮고 일어나 리치에게 다가갔어. 그 때까지도 문을 긁던 리치는 두 발로 선 채로 나를 보고 울었지.
냐앙!
리치의 높은 울음소리는 나가고 싶다는 의미야. 이대로 문만 열어줘도 괜찮겠지만 같이 나가기로 했어. 이리 온. 리치. 두 팔로 작은 리치를 감싸안고 방 밖으로 나가. 외출 준비를 하지 않았는데도 문턱을 넘은 나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었어. 뒤가 길어 걸을 때마다 나풀나풀 거리는 드레스는 나비의 날개 같은 느낌이었을거야.
늦은 저녁의 기숙사는 한없이 조용해. 다른 기숙사도 이럴까? 아니면 백궁만 이럴까. 그래도 이렇게까지 조용한 적은 없었던 거 같은데. 걸을 때마다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했던 적은 없었어. 아무리 늦었어도 이렇게 사람이 없지도 않았어. 적어도 내 기억에는. 하지만 이 분위기가 싫지는 않아. 응. 싫지 않아. 그러니 방으로 돌아가지 않아. 내 걸음은 계속 앞을 향해 나아가지.
차가운 바닥이 맨발에 닿는게 이렇게 좋은 거였나. 차갑지만 차갑지 않아. 이상하지만 이상하지 않아. 그래서인지 자꾸만 걸음이 빨라져. 자박이던 걸음이 점점 보폭을 넓혀 조금만 더 속도를 내면 그대로 날아가버릴 것만 같아. 내가 들뜨는 걸 느꼈는지 품 속의 리치가 가릉거려. 코끝으로 내 목을 간질이는 통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크게 소리내어 웃었어. 빈 복도에 웃음소리가 허하게 울려퍼지고 이내 사라지는게 너무 생생해서 무심코 눈물이 날 것만 같았지. 웃고있는데 어쩐지 슬펐어. 애절한 기분이었어.
자, 이제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조용해진 주변을 둘러보면 내 앞엔 후원으로 나가는 문이 있어. 올해로 4년째 보는 이 문은 어쩐지 위화감이 들어. 내가 아는 그 문이 맞는데 아닌 거 같아. 어째서일까? 위화감이 나를 머뭇거리게 했다면 리치가 그런 나를 떠밀었어. 꼬리 끝으로 내 팔을 살살 간질이는거야. 이 애교쟁이 같으니. 리치가 간질인 팔로 문을 열자 낙엽 한장이 눈 앞을 지나가네. 백궁은 늘 가을이니까 이상할 것도 없어. 지나치는 낙엽을 뒤로 하고 천천히 후원으로 나갔어.
그거 알아? 맨발로 젖은 낙엽을 밟을 때마다 푹푹 빠져드는 느낌이 들어. 늪으로 걸어들어가는 거 같아. 가을의 숲도 그래. 비슷한 색의 낙엽들이 깔린 숲은 들어갈수록 그 속에 잠기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착각 때문에 숨이 가빠지기도 하나? 어느새 숨이 턱끝까지 차서 걸음을 멈췄어. 딱, 후원의 한가운데쯤에서. 어느새 품 안의 리치는 없어지고 나 혼자였어. 그럴 터였어.
멈춘 순간 나는 순간적으로 이렇게 생각했어. 여기 원래 거울이 있었나? 왜냐하면 정면에 누군가 있었으니까. 답은 당연히 아니다, 였어. 왜냐하면 그녀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거든. 나의 새하얀 드레스와 정 반대인 칠흑의 드레스가 낙엽 위로 긴 자락을 늘어뜨리고 있었어. 검은 옷 위로 반짝이는 은발을 드리운 그녀는 나와 같은 금빛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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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입술이 말을 했는데 안 들렸어. 낙엽이 바스락거려서 그런가봐. 바람 소리가 너무 커서 그래. 다시 한번 말해주지 않을까. 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그녀도 가만히 있어. 못 박힌 듯 서 있는 그녀의 왼손이 살짝 움직였을 때 뭔가 반짝여. 반짝임은 시선을 끌지. 그걸 보는 건 자연스러운거야.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도 또한 자연스럽지. 길고 얄팍하지만 동시에 날이 바짝 선 그것이 새까만 나이프라는 걸 나는 어째서인지 미리 알고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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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다시 입술을 달싹이며 손을 들어올려. 나도 내 손을 들어. 그녀는 나이프를 든 왼손을 드는데 나는 지팡이를 든 오른손을 들어올리고 있어. 가문의 표식이 달린 나의 지팡이. 푸른 보석이 그 끝에서 옅게 빛을 내는게 그녀의 나이프 날이 서늘한 빛을 흘리는 것과 같아보여.
누가 천천히 실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느릿느릿 팔을 들고 관절을 굽혀 나이프와 지팡이가 가리켜야 할 곳을 가리키게 해. 내 지팡이가 어디에 어떻게 향하는지는 몰라도 그녀의 나이프가 어디로 향하는지는 보여. 검은 칼날은 서서히 안쪽으로 다가가 하얀 목에 가느다란 틈을 내. 그걸로 멈추지 않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날이 전부 모습을 감출 때까지 멈추지 않아. 아니, 반대편으로 날이 다시 나올 때까지 멈추지 않았어. 검은 옷에 붉은 색을 더하게 된 그녀가 입을 열자 나오는 건 붉은색 뿐.
그리고 떨어졌어.
떨어졌지.
낙엽처럼.
-
"......"
그녀가 눈을 떴을 때 보인 건 기숙사의 익숙한 천장이었다. 천장으로 보이는 색이었다.
잠 덜 깬 시야에 천장과 침대 주변에 두른 베일 커튼의 색이 잠시 섞이다가 원래대로 돌아간다. 흐릿하던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오고도 얼마를 더 가만히 있던 그녀.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가 천천히 손을 들어 제 목을 문지른다. 희고 매끈한 살결엔 아무런 흔적도 없다. 확신이 안 서는 듯 두어번을 더 문지른 뒤에야 옆으로 손을 툭 내려놓는다. 하. 짧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린다.
"뭐야, 꿈이었잖아..."
그것 뿐. 다른 말도 반응도 없이 그저 꿈이었다는 것만 인지하고 끝이다. 그 뒤엔 다시 눈을 감고 남은 잠을 청한다. 그대로 다시 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