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심이가 잘근잘근 깨물던 손가락이 하루에게 붙들려 입술에서 떨어집니다. 그리고 살며시 고개가 들어 올려져 하루와 눈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춘심이의 걱정을 부정하지 않는 하루의 첫마디에, 춘심이는 잠시 걱정을 내려놓고 하루가 하는 이야기를 조용히 들었습니다.
"그 애들에게 우리가 오늘 시간을 보내면서 무엇을 했는지, 서로에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그래서 얼마나 즐거웠고, 또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솔직히 말해줄 수 있는 정도."
춘심이는 답잖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하루가 해준 말을 그대로 되뇌었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은 채로 엉덩이를 들썩거렸습니다. 만약에 춘심이가 땅을 딛고 서있었다면, 하늘 높이 폴짝폴짝 뛰었을 거예요. 그리고 한쪽 팔을 파닥거리며 푹신한 이불을 팡팡!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 하루는 천재야." "나, 이제 다 알았어. 이제 걱정 안 해."
춘심이는 조금 들뜬 목소리로 느리게 재잘대었고, 이내 하루를 마주 보면서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것이었습니다. 춘심이의 마음을 괴롭히고 불편하게 만들었던 못된 응어리를, 하루가 간단히 풀어주었기 때문이에요. 여태 혼자서 고민했던 것이 무색하게 느껴집니다.
"응. 알았어." "... 나, 기분 좋아."
춘심이는 잘 웃지 못해서 그렇게 대답했어요. 말은 조금 느리지만, 그래도, 그 목소리에는 설렘과 기대가 가득이었답니다.
장난스럽게 양팔을 벌려보이며 예쁜 칭찬을 늘어놓는 하루를 말없이 바라보던 춘심이는, 이번에는 이불 위에서 살금살금 뒤로 기어가 아까처럼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두 팔을 쭉 뻗어 바닥을 짚었습니다. 그리고 새침한 눈으로 하루를 바라보았어요.
... 와락!
이불에 바짝 붙인 엉덩이가 좌우로 살랑이는가 싶더니, 별안간 춘심이가 맑게 웃는 하루에게 달려들었어요. 춘심이는 하루의 어깨를 밀어서 자빠뜨리려고 그런 거였대요. 하루의 위에 올라탄 춘심이는, 옆으로 쓰러지듯 몸을 뉘여서 하루와 나란히 이불에 드러눕는 것이었어요. 푹신한 이불 위에는 두 사람의 어깨가 맞닿아 있었습니다.
하루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되뇌이는 춘심에게, 맞다는 듯 가벼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상냥하게 다시 한번 말을 들려줍니다. 그래도 춘심이 엉덩이를 들썩이는 것이, 자신이 해준 말이 마냥 효과가 없는 것 같지는 않아서 살며시 안도를 하는 하루였습니다. 안도를 하는 것도 잠시, 이내 웃음소리를 흘릴 수 밖에 없던 것이, 파닥거리며 폭신한 이불을 팡팡 때리는 춘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겠죠.
" 천재라니 조금 부끄럽네.. 그냥 자그마한 내 생각이었는데." " 그래도 걱정을 하지 않는다니 다행이야. 왠지 언니 안에서 해결이 된 것 같아서. "
조금 들뜬 목소리로 답해오는 춘심에게 하루는 그저 다행이라는 듯 상냥하게 미소를 지어보일 뿐이었습니다. 자신이 특별하고 뛰어나서 춘심의 문제를 해결해줬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그저 자신의 말이 춘심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추진력을 아주 조금 더해줬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는 자기 자신이 그리 특별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어쩌면 춘심보다도 더. 하지만 지금은 춘심이 그것을 굳이 알 필요도, 알 수도 없겠지만 말이에요.
" 언니의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아. "
자신을 보며 초롱거리는 눈을 한 춘심을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고개를 기울인 체 바라봅니다. 그녀의 고개가 기울어지자,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도 자연스레 한쪽으로 흘러내리며 자그마한 소리를 냅니다. 기분이 좋다는 말에는, 마치 자신의 일인것처럼 기쁜듯 두손으로 짧은 박수를 친 하루가 자신도 그렇다는 듯 말을 전해주는 것은 춘심이 조금 더 기쁘길 바라는 그녀의 바램이었을 겁니다.
" 어라? "
하루는 살금살금 뒤로 기어가는 모습을 의아한 듯 바라봅니다. 방금 전의 일로 좀 더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그저 하루의착각이었을까요? 그런 그녀의 걱정은 갑작스런 춘심의 행동에 가볍게 날아가버렸습니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춘심을 아슬아슬하게 받아낸 하루는 같이 푹신한 이불 위에 눕게 되었답니다. 몸을 던진 춘심이 옆에 나란히 누워 어깨를 맞닿게 되었고, 하루는 옆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천천히 고개만 돌려 춘심의 옆모습을 바라봅니다.
" 정말이지, 언니는 개구쟁이네. " " 그런데 저번에 봤을 때보다 더 예뻐진 것 같은데.. 비결이 뭐야? " " 역시 사랑을 하면 사람이 바뀌는건가? 응? "
하루는 개구쟁이처럼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슬며시 몸을 옆으로 굴려춘심을 장난스럽게 끌어안습니다. 그리곤 춘심의 품에 장난치듯 몇차례 머리를 비비적거리더니 궁금하다는 듯 짖궂은 말을 던집니다.
" 언니 연애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말 좀 해줘. " " 지난번엔 제대로 듣지 못해서 궁금하단 말이야. "
끌어안고 있던 팔을 살짝 풀러선 한손으로 춘심의 코 끝을 손가락으로 간지럽히며 장난스럽게 물음을 던진 하루는 기대된다는 듯 초롱초롱한 눈을 한 체 춘심을 바라보고 있을겁니다. 어느샌가 새하얀 이불 위에 선홍색 머리카락과 그것보다 좀 더 긴 새하얀 머리카락이 자연스럽게 뒤섞이고 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