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리시는 거라니. 너무하네요.." 정말로 너무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쓸데없이 말 꼬아대기는. 농담이라면 안심하겠다는 말에 씩 웃지만, 그 표정이 어쩐지 도자기인형에 그린 것 같은 표정입니다.
"그렇죠.. 아직 범죄는 안 저질렀어요." 근데 암수범죄*고소나 고발되지 않은 범죄라서 문제잖아요? 같은 농담을 합니다. 익명 양이나 제게 한 걸 지금이라도 올려버리면.. 같은 생각은 하지만.. 진짜로 할 생각은 적어도 다림은 없습니다.
"자국은 안 남아도 더 이상하다니." 고수인 건가.. 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지훈이가 너무나도 끼부리는 느낌이라 그런 겁니다(모함임) 이상하게 나른한 느낌은.. 글쎄요. 그저 이 공간이 사람 사는 것 같지 않음이 흩어지는 느낌이라 그런가?
"안녕히 주무..." 그렇게 벗어나려다가 신속 S때문에 잡아채여서 같이 눕게 되면 조금 놀랍니다. 지훈이가 거의 바로 잠들어버려서 얼굴 표정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누군가가 잠을 자는 걸 보는 걸 즐기진 않지만. 가끔 관찰(그것도 잠버릇이 안 좋으면)도 좋지만요? 다림은 조심스럽게 빠져나와서는 적당한 이불을 덮어주려 합니다.
"자고 있는 사람을 두고 집중해보는 건 여러번이긴 했지만요." 어려운 일은 아닐 거에요. 그들에 비해서는 괜찮은 편이기는 했잖아요? 라고 빙그레 미소지으며 중얼거립니다. 하기야. 충동에 행동 직전까지 갈 만하지 않으니까요. 테이블에 놓인 노트필기들을 바라봅니다. 표정이 만일 밤이었다면 역광에 그림자져있었겠지.
하루는 춘심이가 소중한 친구이기 때문이라고 답해주었습니다. 그녀의 대답은 순수하고 솔직했으며 목소리는 차분하고 담담했어요. 살며시 몸을 일으켜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는 하루를, 춘심이는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와 얼굴이 가까워지자 낯을 가리는 강아지처럼 어깨가 움츠러드는 것은, 어린 남자애가 예쁜 여자애 앞에서 흔히 그러하듯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것이었어요. 하루가 춘심이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을 때에는 고개를 흠칫, 가느다란 어깨를 바르르 떠는 것이었습니다. 춘심이가 느끼는 감정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잘못을 저지른 느낌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요?
이어서, 하루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고아원에서 자랐고, 친구를 제대로 사귀기 시작한 건 학원도에 들어오고 나서부터였대요. 그래서, 그녀에게는 친구들이 정말로 소중한 존재이더래요. 그리고, 하루는 지금까지 춘심이와 친해지고 싶어서, 좀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매번 고민하고 있었대요. 새근새근 작은 숨소리만 내면서 얌전히 하루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춘심이의 눈망울이 그렁그렁해요. 여전히 무심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울음을 참는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어요. 코에서 나오는 가느다란 숨결이 촉촉하게 젖어있어요.
"...!"
언니라는 말에 하루를 바라보는 춘심이의 눈이 동그래져요. 한동안 숨을 쉬는 방법도 잊고서 눈을 깜빡거리기만 해요. 춘심이의 가슴이 크게 뛰기 시작했을 때쯤, 조용히 숨을 내쉬면서 눈꺼풀을 나른하게 내리감아요. 그리고 제 뺨에 얹힌 하루의 손등을 두 손으로 덮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까닥여 그녀의 손바닥에 제 뺨을 문질렀습니다. 춘심이는 이것으로 "마음이 전해졌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대신하고 싶었답니다. 춘심이는 하루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내려 제 허벅지 위에 얹어놓고서, 두 손으로 그녀의 손등을 살며시 덮었습니다. 그리고 하루의 눈을 피해서 시선을 내렸습니다. 춘심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조금 떨리지만 차분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나는 오빠만 셋이고, 어릴 때부터 남자애들이랑만 친하게 지내다 보니까 지금까지 동성 친구를 사귀어본 적이 없었어. 그 애들도 진짜 친구는 아니었고. 나도 너랑 비슷하게, 제대로 된 친구를 사귀게 된 건 학원도에 들어오고 나서부터가 처음이야. 그래서 아직까지도 동성 친구를 많이 어려워해. 여자애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어. 지금도 이렇게 너랑 가까이 있으면, 부끄러워서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단 말이야."
"그럼에도 너를 피하지 않는 건, 너를 동경하기 때문이야. 나도 너처럼 되고 싶어서. 너처럼 예뻐지고 싶고, 여성스러워지고 싶어서. 그러니까, 너랑 닮고 싶어서야. 그런 이유랑 별개로, 다정하고 상냥한 네가 좋아서이기도 해."
"사실, 복도에 걸려 있던 그림을 봤어. 그 아이는, 하루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지? 나에게는 내 남자친구처럼. 나도 하루가 정말 소중해. 좋아해. 좀 더 가까워지고 싶어. 근데, 너랑 어디까지 가까워져도 되는지를 잘 모르겠어. 그러니까, 그 애들에게 떳떳할 수 있을 정도가 어디까지인지를 나는 몰라서, 항상 고민하고 걱정했어. 그래서 너를 대하는 게 더 조심스러웠던 거야."
"... 바보 같은 고민이었을까?"
비스듬히 고개를 들어서 하루의 금빛 눈동자를 힐긋하던 춘심이는, 다시금 아래를 바라보았어요. 그리고 한쪽 손을 들며 입술을 작게 벌리고, 검지 옆부분을 앞니로 잘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