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면 무언가 잃는 게 있다 너무 잃고 나면 실패가 두려워지고 만다. 그것이 옳지 않은 방향이라고 해도, 결코 자신이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 자신이 완벽히 통제하고 있는 상황 속으로 들어가 나오고 싶지 않아질 때도 있다. 자신이 패배하더라도 그것까지 자신이 바란 일이라면 괜찮을 거라고. 그걸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없진 않을 것이다.
" 점장님한테 신뢰받고 있는 모양이네요. "
비아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AI 드론봇이 보여주는 메뉴를 보면서 자기 몫으론 주스에 치즈케이크, 에릭 몫으로는 적당히 이것저것 주문하려 했다. 취향을 모르니까 적당히 호불호 안 갈릴 만하게... 그리고 사람 적은 카페의 적당한 위치에 앉아서 얘기를 시작할 준비를 했을까.
" 먼저 제 소개를 하자면 저는 청월 3학년생, 온사비아. 성이 온이고 이름이 사비아, 인 신 한국인이에요. 쓰는 무기는 방패, 의념속성은 보석(寶石). "
처음 얘기는 신상정보부터.
" 최근 있었던 일... 은 많지는 않네요. 시험기간이니까 열심히 공부를 했단 거? 쉴 때는 평범하게 쉬었지만요. 특별한 일이 있었다고 하면... 정말 영웅 같은, 멋진 분을 만났다고나 할까요. 이분 얘기는 비밀이라서 자세히는 못 말해드려요. "
우연히 먼저 만났을 뿐이지 기밀이니까. 비아는 유노하라의 말을 떠올렸다.
" 언제나, 열심히 해야 하는 순간엔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해요. 언제나 노력한 만큼 잘 되진 않았지만요. 이번 시험도 간신히 진도를 맞춘 정도고, 그리 잘 보진 않았으니까. 전에 '파보나스의 체스 대결'이라는, 사실상 망가졌던 게이트에 참가했을 때, 그때는 정말 어떻게든 해냈었죠. 선생님들께도 그 점만은 좋게 보이고 있는 것 같아요. "
씁쓸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어두운 기색 없이, 알듯말듯한 미소를 머금으면서 찬찬히 이어나가는 말이었다. 이야기는 이후로 몇 개의 일화를 엮어 현재로부터 과거로 뻗어내려가고 있었다.
" ...내 좋은 친구 얘기는 아직 안 했었죠? "
그와 사비아가 만난 이유. 찾아가야 했던 이유. 물에 젖으면 주변의 빛을 굴절하는 섬유로 우산을 만들어서 비오는 날 목 없는 학생 괴담으로 악명을 높였던 제노시아 학생의 실물을 봤던 우스운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와 마찬가지로 덤덤하게 그렇게 물으며, 바로 말하지는 않고 뜸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