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 두 무릎이 바닥에 닿습니다. 딱딱한 바닥의 냉기가 무릎을 타고 흘러와, 차갑게 하루의 몸을 스치는 것은, 하루의 마음이 그만큼 흔들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침묵 속에서 일 분, 말을 삼키며 일 분, 이마에 느껴지는 냉기를 무시하고 일분, 말을 꺼내며 일분. 수 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유야는 하루에게 손을 뻗습니다. 몸을 일으키고, 옷에 붙은 먼지를 털어내고,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고칠 거울을 내밀고, 하루를 바라봅니다.
" 송로문宋櫓門은 고대 송나라 시대부터 이어진 무술 유파이다. 최초의 개문인은 만하벽이라 부르는 장군으로 송나라의 녹을 받아오던 장군이 정치 싸움에서 좌천되어, 이후 이루어질 전쟁을 대비하여 약자들을 받고, 무예를 가르친 것에서부터 그 유래가 시작되었다. 송로문은 그렇기에 약자를 지키고, 강자에게 대항하며, 전장에 나서고, 굳건히 버티는 법을 가르친다. 내 이름은 지유야. 송로문의 36대 문주의 대제자이며 소문주이기도 하다. 이 자리에서 약식으로나마 사제의 예를 맺고자 하나, 그 전에 스승의 연으로 그대에게 질문을 내리고자 한다. "
유야는 곧은 자세로, 풀어진 눈을 뜨고 하루를 바라봅니다. 거대한 정승이 하루를 내려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단순히 하루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인지. 올바른 사람이 맞는지. 아니면 잘못된 사람인지. 그것을 물어보기라도 하듯 그 눈은 하루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침묵이 이어지고, 정좌로 앉은 유아는 말을 꺼냅니다.
"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자가 자신보다 작은 몸을 가지고,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대적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대가 느낄 무력감을 이해한다고 하진 않겠다. 그러나 그 순간을 이해하고자 하겠다. 어째서 그렇게 느꼈는지, 그런 마음을 가졌는지, 그런 생각이 닿았는지, 그렇게 행동했는지. 그 모든 것을 묻기보다는 단 하나의 말로써 질문하고자 한다. "
말합니다.
" 그대가 걷고자 하는 길을 그대의 연자는 알고 있는지. 모른다면 어째서 그에겐 말을 하지 않았는지. 알고 있다면 그는 어떻게 말하였는지 묻고자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강한 힘을 주나, 뒤틀린 사랑은 그 힘을 연자에게 향하게 한다. 그대의 사랑이란 올바른 것이 맞는가? 그대의 사랑이, 연자를 힘들게 하지 않는다 확신할 수 있는가? 연자는 그대의 사랑 외에 그런 마음마저도 사랑한다 확신할 수 있는가? 아니라면. "
유야는 하루의 눈을 바라봅니다. 그 눈에 하나하나, 하루의 모든 것이 꿰뚫리고 있습니다.
" 그대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걱정이라는 방패를 들고 상대에게 목줄을 걸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
말합니다.
" 사랑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님즉, 내가 말한 모든 것이 맞다고 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내가 말한 모든 것이 틀린 것도 아님즉. 내가 묻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그대가 사랑하는 자를 왜 그대는 믿지 못하는지. 왜 그가 위험을 돌파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왜. 왜! "
그는 날카롭게 하루를 바라보며 호통을 내지릅니다.
" 왜 너만 그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묻겠다! "
유아는 그 호통을 마치고 천천히 하루를 바라봅니다.
" 살펴보라. 그대의 사랑이 구속은 아닌지. 그대의 걱정이 해약은 아닌지. 그대의 믿음이 강요는 아닌지. 그 모든 것들을 살펴 내게 답을 내어라. "
그리고 유야는 눈을 감습니다.
" 나는 무엇도 보지 않을 것이다. 무엇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저 네 말에 귀를 기울인 채. 그대의 말을 이해하고자 할 것인즉. 거짓을 고하여도 좋다. 진실만을 말하여도 좋다. 단. "
그는 짧게 말을 마칩니다.
" 내가 거짓과 진실도 구분할 수 없는 우매한 자가 아니라는 경고 한 마디만은 남기도록 하겠다. "
>>376 제가 진행에서 망념 20 쌓으며 검색했던건 키워드가 신이여서 망념 안 쌓으면 아무리 청월 도서관이라고 해도 아무 책도 안 나올 가능성이 있을것 같아서라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 예전 진행 보면 청월은 타 학교에 비해 도서관에 배치해놓은 책이 많은것 같아서 망념 소모 덜 해도 괜찮을겁니다...(아마)
절단이라는 의념이란 무엇인가. 무언가를 벤다. 자른다. 파괴한다. 그런 것들. 단순히 실체가 있는 것만이 아니라 버프와 공간 같은, 우리가 느끼지 못 하는 것들 혹은 실체가 없는 것을 잘라낼 수도 있다. 단순히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전투에서처럼 잘라진 상태를 부여하여 해당 부위를 약하게 만들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자른다는 '행위'와, 잘라진 '상태' 두가지 개념이 이루고 있는 것이, 절단이라는 의념이었다.
절단이라는 의념 속성은 행위와 상태. 그 두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그 두개가 합쳐진 개념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문득 검귀의 질문을 떠올린다. 처음 검을 든 그는 자신을 위해 검을 들었다. 그리고 게이트 속에서, 그 끔찍한 광경 속에서, 그는 친구를 지키기 위해 검을 들었다. 검을 휘둘러 벤 것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를 파괴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지금의 자신을 떠올린다. 그는 더이상 친구를 위해 무언가를 파괴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친구들과의 인연을 파괴했다.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유지하고, 자신을 위협하는 사람들은 가차없이 관계를 끊어낸다. 이제 더이상 그의 검은, 절단은 더이상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본질에 걸맞게 무언가를 파괴한다는 목적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무언가를 파괴하기를 바라는 것일까.
최근 색다른 감정을 느꼈던 이들을 떠올린다. 카사, 지아, 다림, 에미리... 자신은 그들을 더이상 끊어낼 수 없었다. 오히려 얽매이게 되었다. 마음대로 끊어낼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했건만 알고보면 아니었다. 분명히 원한다면 끊어낼 수 있어야 할텐데. 자신은 이제 누군가를 지키고 싶지 않을텐데.
" ...사실은. "
사실 누군가를 파괴할 목적으로 인연을 끊어내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인연을 끊어내었다는 것을 상기한다. 그리고 그 자신을 지켜내겠다는 마음은, 이내 번져서 다시 한번 친구를 지켜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비록 아직 예전과 같이 온전한 것은 아닐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