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덕 씨도 좋아하시려나요" 늦지는 않았지만, 다림은 들고 있는 상자를 안전하게 들고는 조금 걸음을 바삐하며 카페로 향합니다. 그런데 문을 열자 보인 게 춘덕이와 맥스에게 기타를 휘두르려 하는 에릭을 보고는 에릭 씨를 빤히 쳐다보려 합니다.
"에릭 씨? 춘덕 씨 없으면 장사 어떻게 하시게요." "그리고.. 얘가 맥스인가요?" 진지한 물음입니다. 에릭 씨가 춘덕 씨 만큼의 요리실력이 있으면 모를까.. 라는 생각입니까?
"요즘 에릭 씨와 관해서 이런저런 게 들리긴 하니까요." 그리고 요즘 가장 잘나가는 카페 디저트도 들고 왔어요. 연구를 위해서는 먹어보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라고 답하며 들어올린 것은 사과를 이용한 디저트입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사과파이나, 사과조림을 듬뿍 넣은 케이크나..
"그럼 저는 잠깐.. 갈아입고 올게요." 모자와 치마 쪽으로 갈아입으려고 탈의실 쪽으로 쏙 들어갑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카페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사실 요 근래 울적한 일이 있기는 했다만. 심정과는 별개로 지갑은 냉정한 것이다. 갑옷을 구매하느라 여유있던 저금을 다 털어버렸다. 용돈을 벌기 위해선 역시 아르바이트를 해야되고, 아르바이트라고 하면 지금 당장으론 그 곳 밖에 없는 것이다. 가서 본의아니게 깽판을 친 셈이 되었으니 솔직히 날 어떻게 볼진 모르겠지만..... 아냐, 울적한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자. 어차피 마주해야되는 사람이라면, 좀 뻔뻔해질 수 밖에 없다. 나는 카페 앞에서 심호흡을 하곤, 문을 덜컥 열면서 밀고 들어갔다.
"아르바이트 하러 왔습니다! 점장!"
웃는 얼굴엔 침 못뱉는다고 했었지. 활짝 웃으며 들어간 나는, 점장이 기타를 너구리와 로봇에게 휘두르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엣, 되게 못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무기였나요?"
검사인 줄 알았는데, 둔기도 다룰 줄 알았나보다. 생각보다 능력있는 사람인걸. 마치 악기처럼 교묘하게 위장하는 솜씨도 제법이다.
네 숨이 섧다. 나는, 이렇게 말로 해줘야지만 네 속마음을 안다. 아직 우리는 서로의 눈빛만 보아도 모든 걸 알 수 있는 정도는 아니잖아. 네게는, 내가 실망감을 내비친 것이 몹시도 충격이었나 보다. 서로에 대해 잘 모르니 서로를 실망시킬 때도 있는 게 당연한데. 내가 지금, 눈이 풀려 사랑에 빠진 얼굴을 할 수 있었다면, 네게서 입술을 떼어놓은 것을 몹시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면, 너를 울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건, 마땅한 표정을 지어주지 못하는 내 잘못이 크다. 지금도 그저 담담한 눈으로 너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니까.
나는, 두 손으로 너의 뺨을 부드러이 감싸고, 엄지 끝으로 눈물이 흐른 자리를 지긋이 밀어 올렸다. 느리게 얼굴을 가까이해 네 눈가에 가벼이 입을 맞추었고, 다시 고개를 들고 허리를 꼿꼿이 펴, 네 머리를 내 품 안에 깊이 끌어안았다. 그리고 말없이 네 뒷머리를 쓸어주었다. 네가 흘리는 눈물과 함께, 네가 느끼는 설움이 얇은 블라우스에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가슴이 뜨겁고 끈적끈적했다.
"하루의 부하라니...어쨌건, 지난번에도 알바하러 왔다고 했잖아요. 의심병은 좋지 않아요?"
그렇다. 충격적인 사실. 연인과의 불미스러운 경험으로 심정이 복잡한 나는, 이미 신경써야 할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스트레스로 반바퀴 돌아 대담해진 것이다. 평소라면 어깨를 움츠릴만한 상황에도 나는 오히려 허리춤에 두 손을 얹고는 당당하게 대꾸했다. 거기에 눈 앞의 점장이 보면 볼 수록, 뭐라고 할까. 나의 글러먹은 인간을 감지하는 센서에 반응하는 느낌이다. 가디언넷에서도 그런 느낌을 줘서 친근하게 여기는 사람 있는데.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오랫만에 게시물이라도 올려볼까.
"악기라고 주장하실거면, 일단 불쌍한 너구리에게 휘두르지 마셨어야죠. 본인이 둔기처럼 쓰시곤...."
애초에 합격도 아니라는 부분은 자연스럽게 흘리곤, 마침 타이밍 좋게 온 다림씨에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알바하러 왔냐고 묻기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네. 라고 대답했다. 진실이니까 찔릴게 없다. 그리곤 무슨일이 있었길래 해고니 합격도 아니니란 말이 나오냐, 라. 무표정하게 추궁하듯 물어보는 그녀의 표정은 본래라면 '히에에엑...!!' 을 외치며 오들오들 떨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위력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미안. 최근 더 무서운걸 보고 오는 길이다. 따라서 나는 옆머리를 가볍게 손가락으로 빙빙 감다가, 사실만을 전했다.
"별 일은 아니고, 저한테 여성 점원복을 권유하시다가 의념기를 쓰시더라구요. 좀....아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