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기에는 딱히.. 그런 거는 아니라고 생각함. 일부러 내가 정보를 딱히 공개 안 하는 거는, 이제 어장이 어느정도 궤도에 앉아서 간섭하지 않아도 괜찮겠다 생각해서 그렇거든. 그런 상황에서 네 조언은 상대가 듣건, 안 듣건 정말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 괜한 참견이라 생각하지 말고, 내가 허락했다 생각하도 막 얘기해주면 좋겠어. 응. 그런 게 재미잖아? 남이 하는 거에서 에구구 하면서 훈수두는 할머니같은 기분이라 생각하라구 친구
그녀의 시선이 싸늘해졌을 때, 나는 무언가 잘못 되었단걸 직감했다. 훈훈하던 분위기는 또 다시 급속도로 냉각되고, 침묵하고 있는 그녀와 나 사이엔 뭔가 비틀림이 벌어지고 있단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내 애매모호한 대답에 별 다른 말 없이 방금처럼, 혹은 그것보다 더더욱 열중해서 달라붙어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아니면 당연하게도, 나는 조금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오히려 등줄기에 오한이 타고 흐르고, 진지하게 식은땀 한줄기가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는걸 느낄 수 있었다. 술에 취한듯한 열기가 꺼지고 나선, 이성이 밀물처럼 밀려들어온다. 나는 여기서 도대체 뭘 하는거지? 이게 진짜 연애란건가? 정말로?
"잠깐."
나는 드물게도 그녀를 밀어냈다. 그것도 단호하게. 심지어는 무심코 의념도 조금 썼을 정도로. 그리고는 잠깐, 스스로 느끼는 감정을 정리할 시간을 가졌다. 밀려오는 자괴감에 두 손을 얼굴에 짚곤, 방금까지 뭘 했나 진지한 자기 후회를 겪었다. 아무리 연애가 처음이고, 상대가 적극적이었다지만, 이건....아니. 그런건 다 변명이다. 그녀는 거절할 기회를 분명 줬다. 나는 그냥 거절하고 그녀를 밀어내는게 두려웠을 뿐이다.
"......"
웃음기 없는 얼굴로 나를 보는 시선과 마주한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다. 그녀가 아까 한숨을 내쉬었던 것 처럼, 나도 한숨을 내쉬었다. 가볍다기 보단 한없이 무거운 한숨을. 내가 인간 관계에서 실수하는건 한두번이 아니지만, 이번건 좀 심했다. 나는 그녀가 적극적으로 몸을 밀어붙인다는 이유로 사귀는데 동의 했던 것이 아닐터이다. 지극히도 거지같은 기분이다. 방금전의 나는 도대체 뭘 생각하고 있었던거지. 긴장을 넘어 어딘가에서 구역질이 올라오고, 꽉 막힌 가슴의 답답함에 숨쉬기가 어려워 결국 두 눈엔 눈물이 맺혔다. 결국 나는 참기를 포기하곤, 두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는걸 방폐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내가 잘못 했어. 그만두라고 하는게 좋았을 것 같아. 이럴 줄은 몰랐어. 그냥, 네가 원하는걸 다 받아주고 싶었어."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서투른 사람이다. 멋있음과는 거리가 아득하게 먼, 제대로 잘 풀리지 않는 인생을 살아온 사람. 그런 나를 좋아해준다고 해서, 나는 지나치게 힘을 줬던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무엇을 해줘야 할지 잘 모르고, 자신도 없다보니, 상대가 원하는 것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주면 상처는 주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그 안일한 생각이 불러온 참담한 결과에, 내 나약한 정신은 기어코 한계를 맞이했다.
이 진한 스킨쉽을 즐기며 후회하지 않을 한 때를 보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기분이 상한 그녀에게 능숙한 말로 달래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어느쪽도 하지 못해서, 즐기지도 못하고, 후회했으며, 무어라 말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체, 그냥.....서럽게 오열할 뿐이었다. 누군가 들으면 이마를 칠 정도로 한심한 이야기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냥. 횡설수설 변명을 늘어놓기 보단, 나는 그저 울음을 터트리는 인간이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