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및 카페테리아에서 하절기 메뉴를 개시합니다. 추가 메뉴의 가격은 기존 메뉴와 차이가 없으며 카페테리아의 경우 일일 판매량이 정해져 있음을 미리 알립니다. 빙수 및 파르페의 토핑이 별도 추가 가능하도록 메뉴가 개선되었습니다.
부활동 상반기 실적 제출 기간이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활동 중인 모든 부는 기한 내에 부활동 보고서를 제출하기 바랍니다. 기한을 넘길 경우 패널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최근 소모성 비품의 소모량이 비정상적으로 많습니다. 각 부는 자체적인 관리에 주의를 기울여주세요.
상담부에서 교내외 환경미화를 도와줄 사람을 구합니다. 자세한 건 각 교실에 배부된 안내문을 참고해주세요. (지난 이벤트 후속편. 자세한 내용은 이쪽 > https://bbs.tunaground.net/trace.php/situplay/1596248900/627) (후속편 현황은 캡틴에게 문의)
겉으로 보이기에는 아름다운 녹색으로 물들은, 풍경화를 보며 다홍은 아름답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그림에 묻어있는 광기를, 누군가의 집착과 누군가의 절규를 들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이면-광기-이 그곳에 있었다. 다만 그 그림이 그려진 배경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다홍은 현율에게 설명을 요구한 것이다. 질문이 아니지 않냐는 현율의 말에 다홍은 온화한 빛만 들어 있는 벚꽃색 눈동자를 내려접으며 눈웃음을 지어보였다가 피로가 꽤 쌓였을 거라는 말에 새삼스럽게 걸음을 내딛었다. 잠시 비틀거렸지만 곧 익숙하다는 듯이 소파로 걸어가 현율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래-.. 조금 지쳤을지도 모르겠어..”
기력이 소진되어버리는 탈진, 혹은 탈진에 가까운 느낌은 오랜만이였다. 소파에 앉아서 양팔로 앉은 곳을 짚은 채로 다홍은 눈 앞에 놓여져 있는 생수통을 가만히 바라본다. 어딘지 흐릿한 시선으로 그것을 응시하던 다홍은 손가락 끝을 가볍게 몇번 까딱이다가 생수통을 향해 뻗었다. 나긋한 로우톤이 맥이 풀린 대답을 내놓고 생수통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에 멈칫하며 그저 생수통을 쥐었을 뿐이였다. 대가. 죗값. 그 남자가 마땅히 치러하는 것들.
인과응보인가.
현율의 말이 이어지고 차곡차곡 쌓여지는 이야기들을 끊지 않고 다홍은 그 이야기를 들었다. 단지,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화가의 이야기를. 단지 누군가를 사랑한 대가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여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끝내는 스스로를 대가로 모순된 바람을 빌어버린 여자의 이야기를. 어리석은 이야기. 어렸기 때문에 안타깝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어리고도 어리석은 이야기구나.”
까드득- 다홍은 그제서야 쥐고 있던 생수통을 따고 물을 마셨다. 길고 긴 이야기에 대한 감상은 그것이 끝이였다. 그 감상말고는 내놓을 감상이 없었다. 길고 긴 이야기를 들으며 사색에 잠기기에 다홍은 지쳐 있었고 해묵은 기억들만이 떠오를 뿐이였으니까.
“그런 그에게 손을 내민 나는, 어리석은 짓을 하려고 했던 것이고.”
나긋한 로우톤으로 작게 중얼거리는 다홍의 목소리에는 후회같은 감정은 없었다. 감탄도 없었지만 체념에 가까운 어조였다. 충분하냐는 시선에 다홍은 벚꽃색 눈동자를 까딱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돌아보는 방향에 따라 흔들리는 당신의 검은 머리카락, 이내 자신을 올려다보는 특유의 미소의 주인은 당연하게도 기억 속의 당신이었다. 어떻게 몰래 다가오는 건 성공했는데. 당신을 놀래려 했던 건 아쉽게도 실패했구나. 설은 아쉽다는 눈치로 당신을 보다가, 노래를 흥얼거리던 때처럼. 음정이 담긴 목소리로 당신이 질문에 답하자 수첩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 작은 수첩에는 당신의 생각이 한가득 담겨 있지만. 그렇지만,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여전히 그림뿐이라. 만약 읽을 수 있었다면, 당신의 생각을 전부 알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하니 이마저도 아쉬워서. 설은 그런 실 없는 생각을 하다, 뒤늦은 인사를 받자 휘어진 당신의 눈매만큼, 설 또한 입꼬리 휘어 낸다. 귀엽다니. 어느 부분에서 그리 느끼는 건지 설은 알 수가 없어서. 궁금하다는 목소리로 묻는다.
"도대체 어디가 귀엽다는 거예요?"
고개를 갸웃해 보이며, 옆에 앉으라는 당신의 손짓에 따라 무릎을 굽혀 옆자리 가까이에 앉았을까. 당신의 말에 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여름은 이제 막 시작인데, 더위 혼자 무엇이 그리 급한지 일찍 찾아와 있는 것이었다.
"응. 많이요. 그러니 덥고 답답하고 그래서... 바람이라도 쐴 겸 왔는데. 여기서 선배를 다 만났네요."
오랜만에 보는 거 같아요. 이어 말하고서 설은 당신을 물끄러미 건너다보며 생글생글 웃는다.
긴 이야기였지만 그다지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에 따른 감상이 짧은 것도 당연하다. 어리고도 어리석은 이야기. 같지만 같지 않은 두 표현만으로 이루어진 한마디 소감에 현율은 피식- 웃었다.
"글쎄. 꼭 그렇지만도 않을 걸?"
웃음기 어린 그 말은 말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으나. 현율의 태도로 보아 그것까지 말해줄 의향은 없어보인다. 다홍의 의문을 풀기엔 앞서 했던 이야기로 충분하기도 했을 것이다. 벌써 반이나 마셔버린 생수를 조금더 마신 뒤 뚜껑을 닫아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손을 비우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부실 한켠으로 걸어가며 말한다.
"화가의 소망은 어리석다고만 할 수 없지만 확실히 다홍의 행동은 어리석었지. 결과를, 후일을 분명 알 수 있었음에도 행동했으니까. 그를 도우려 한게 어리석은게 아냐. 알면서 움직였던 것이 어리석지."
다홍이야말로 어리고도 어리석구나.
키득키득키득. 몇걸음 떨어진 곳에서 웃는 현율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 있는 듯 생생하다. 분명 다홍에게 등을 보이고 무언가를 찾고 있는데, 보이지 않는 얼굴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보이는 듯 하다. 잠시 뒤 현율은 웃음의 여운이 남은 듯한 미소와 함께 작은 상자를 들고 자리로 돌아온다. 역시나 검게 칠해진 정육면체의 나무 상자를 열자 검은 벨벳 쿠션 위에 놓인 황금빛 나비 브로치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번 일을 도와준 것에 대한 보상이야. 받을지 말지는 자유지만, 받는 편이 좋을 거라고 생각해."
상자를 놓고 소파에 앉은 현율은 선택권을 다홍에게 넘겨주고 살짝 손짓했다. 자 어서, 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하 아이템의 설명입니다.
망념의 브로치 : 전신이 금으로 이루어져 있는 나비 장식의 브로치. 일반적인 금 장식과 달리 무르지 않아 모양의 변형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염, 변색도 없다. 가느다란 사슬에 작은 보석이 달린 장식줄이 있어 착용시 방울 같은 소리가 난다. 외관상 화려하지만 막상 착용하면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다.
사용법 1. 브로치를 의복에 착용한 뒤 지우고 싶은 기억을 떠올리며 그 기억을 지우고 싶다고 강하게 소원한다. 진심일 경우 브로치에서 금빛 나비의 환영이 나타나며 그 나비가 날아가는 것으로 기억은 완전히 지워진다. 2. 타인에게 사용할 경우. 대상이 되는 타인과 손을 맞잡고 이마를 맞댄 뒤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이 경우 공통의 기억을 날리려면 둘이 같은 정도의 마음으로 소원해야 하며 마음이 맞지 않을 경우 이뤄지지 않는다. 단순히 타인만의 기억을 날린다면 1의 과정으로 충분하다. 3. 날아간 기억은 어떤 방법, 어떤 방식으로든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생수통 표면에 맺혀 있는 차가운 냉기에 정신이라도 차렸는지 다홍은 온순하고 온화한 눈매를 내려접어 눈웃음을 짓고 조금 뾰로통하게 대꾸했다. 삐쳤다-라는 표정이기는 했지만 눈운음 때문에 삐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미 의문을 푸는 건 앞서서 들은 이야기로 충분했다. 현율이 부실 한켠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며 생수통을 비워낸 다홍은 비어버린 것을 뚜껑을 채워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시간이 지나도 바뀔 수 없는 천성이라는 게 있는게지.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야.”
생수통을 내려놓고 양 손바닥을 마주하여 세모꼴로 세워서 무릎 위에 올려놓은 다홍의 목소리는 의외로 쉽게 현율의 말에 긍정의 답을 내놓았다. 후일을 알면서도 움직였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이었던가. 만약 거기에서 그를 구하기라도 했다면, 또 후회했을 것을. 제 선택으로 현율이 대가를 치뤘을 때 등줄기가 서늘해지던 그 감각이란-. 작은 상자와 함께 되돌아온 현율을 한번, 작은 상자를 한번 번갈아 바라보던 다홍은 한쪽 눈썹을 가볍게 슬쩍 치켜올렸다. 이게 뭐니? 하고 묻는 것처럼.
금색의 나비모양을 한 화려한 장신구를 보상으로 준다고? 다홍의 손이 브로치를 집어들었다.
“이걸 내가 받는 게 정말로 좋을 거라고 생각하니? 너는 말이야.”
화려해서 어울릴지 모르겠네. 브로치를 다시 상자에 넣고 뚜껑을 덮으며 다홍은 그것을 당겨 손에 쥐었다.
다홍의 말에 공감을 표하면서 무어라 말하려던 현율은 돌연 말하기를 관두고 입을 다문다. 그 한순간, 철의 가면 같은 미소가 사라지고 조금은 불쾌한 듯한 표정이 낯을 지나간다. 짧게 혀 차는 소리도 들렸을지도. 한껏 깔아내려진 시선은 흐려졌던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오며 다시 다홍에게로 돌아온다. 처음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수습된 표정이었다.
그 브로치를 다홍이 받는게 좋을 거라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대답에 앞서 어깨를 약간 으쓱인다. 그걸 왜 굳이 묻느냐는 듯한 몸짓이다. 가져갈지 말지의 선택권을 다홍에게 줬기 때문일까. 별걸 다 묻는다는 표정을 하고서 건성인 듯한 대답을 돌려준다.
"그 일의 보수가 그것이었으니까 그걸 줄 뿐이야. 받는게 좋을거라고 한 건 그 고생을 하고 아무것도 얻는게 없으면 좀 그렇잖아? 그런 의미야."
현율의 말투는 정말 그것 뿐이라는 듯 대수롭지 않은 어조다. 앞서 나왔던 물건들처럼 저것 역시 분명 보통 물건이 아니지만, 그걸 쓸지 말지, 어떻게 할지는 순전히 다홍에게 달린 일이니까. 그 부분은 건드리지 않을 것이므로 현율은 그 이상 말을 얹지 않는다. 그저 소파에 늘어져 작은 하품을 할 뿐이다. 예의 붕대로 휘감긴 오른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그럼- 일도 끝났고 할 말도 다 했고 줄 것도 다 줬으니까- 이제 돌아가줘. 난 좀 쉬어야겠거든."
지금만큼은 정말로 지친 기색으로 그렇게 말을 하곤 나가는 문- 부실의 문을 가리킨다. 배웅은 해주지 않을건지 소파에 늘어진 그 자세로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덧붙인다. 고생했어. 푹 쉬어. 다홍아.